40살에 쿠테타 일으켜 22년간 화합으로 백제중흥 일으킨 무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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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무령왕' 표지^^^ | ||
소설 '무령왕'은 사마대왕의 출생으로부터 나이 40살에 스스로 쿠테타를 일으켜 집권하기까지의 과정으로 역사적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소설형식으로 재밌게 묘사해 그 동안 지루했던 역사소설과는 차별화를 둔다는 것이 역점이다.
무령왕은 당시로서 매우 늦은 나이인 40살에 쿠테타로 정권장악에 성공했으며 집권 후 22년간 화합과 통합을 바탕으로 백제중흥을 이룬 위대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 '무령왕'에서는 이런 그의 사랑과 야망은 물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소설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그동안 무령왕 일대기를 자세히 수록한 책이 없는 것에 비춰볼 때 무령왕의 전 생애를 장박사가 그의 왜5왕 시대 및 금석문 연구 성과를 소설화함으로써 무령왕의 생애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 장팔현 박사는 "일본에서 한일고대사를 연구하기 위해 칠지도 등 4세기부터 사마왕이 계체에게 우전팔번경을 보낸 6세기까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이에 무령왕의 큰 그림자를 보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소설을 통해 "무령왕은 서기 462년 6월 1일 일본의 각라도(各羅島-카와라노 시마)에서 탄생했으며 이후 한성(서울)으로 되돌려져 성장하다가 고구려의 잦은 공격으로 백제가 위험에 처하자 부왕인 개로왕이 왜국에 구원군을 요청하러 보내기 위해 당시 13세 이던 무령왕을 474년 다시 왜국으로 건너가게 했으며, 그곳에서 40세까지 백제 출신 이주민이 몰려 살던 나니와(오사카) 분국의 왕(백제 본국의 侯王)으로 지내다가 서기 501년 12월 곰나루(공주)로 돌아와 쿠데타로 집권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의 주된 뼈대와 근거는 장박사가 리츠메이칸(立命館) 대학원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을 기초로 하고 있다. 때문에 약 70%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살을 붙여 소설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소설 '무령왕'은 소설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전문 역사학자가 주(註)를 달아가며 역사적 고증을 거쳐 완성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즉 상상에 의한 완전한 창작품이 아니라, 한,중,일 역사서와 칠지도, 우전팔번경(무령왕이 계체에게 하사한 구리거울) 등의 금석문 연구를 토대로 작성됐다는 점에서 오히려 역사적 사실의 틀 안에서 소설형식을 취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표현이 옳다.
이 소설의 논점으로는 무령왕이 ‘삼국사기’ 기록처럼 동성왕의 아들이 아니라 오히려 나이가 동성왕보다 서 너 살이나 위인 사촌형이라는 점이다.
또한 무령왕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는 점과 정권을 잡는 501년 말까지는 왜국에서 지냈다는 점, 백제가 왜국내의 나니와와 히고국(쿠마모토) 등의 지역에 분국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송산리 6호분이 무령왕의 첫 번째 대부인(왕비)의 능이라는 점, 무령왕릉을 지키던 진묘수가 중국의 도교적 영향을 받았으며 처음부터 일부러 뒷다리 한쪽을 부러트려(중국의 전족(纏足)과 같은 생각) 능에 넣었다는 주장 등이 큰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두고 소설형식으로 마무리된 파격적 주장들이 백제사를 둘러싸고 새로운 논쟁거리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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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지역에 가지고 있었다는 점,--->지역에 분국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