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의 서쪽 끝, 한경면 고산리의 바람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어느덧 인생의 ‘일흔’ 고개를 넘었다. 제주 고산초등학교 25회 졸업생들이 칠순을 기념해 떠난 2박 3일간의 충청북도 육지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지난 세월의 신산(辛酸)함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한 편의 드라마였다.
지난 4월의 어느 날, 청주공항 입구는 들뜬 목소리로 가득 찼다.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친구들과 이미 육지에 터전을 잡고 살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백발이 성성해진 모습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은 이들의 첫 목적지는 진천 농다리였다. 천 년의 세월을 견딘 돌다리 위를 걸으며, 이들은 자신들이 버텨온 견고한 인생의 시간을 되짚었다. 이어 초평호의 출렁다리와 충주호 유람선 위에서 마주한 충북의 산세는 제주 바다와는 또 다른 넉넉함으로 이들을 맞이했다.

이동하는 버스 안과 식사 자리에서는 끊임없이 ‘애기 꽃’이 피어났다. 칠순의 노신사, 숙녀들이 꺼내놓은 추억은 코끝 찡한 보릿고개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때는 부모님들이 다 일터로 나가시니, 밑으로 줄줄이 있는 동생들 밥 챙겨 먹이고 학교 가는 게 일이었지. 그러니 맨날 지각해서 벌을 섰어.”
한 동창의 회고에 곳곳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각생의 사정을 뒤늦게 안 선생님이 벌 대신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셨다는 대목에선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전기조차 귀하던 시절, 등잔불(호야) 유리를 닦다 깨뜨려 가슴을 졸였던 ‘사건’은 이제는 박장대소하며 나누는 안줏거리가 되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의 대화는 현실적인 지혜로 이어졌다. 혼기를 놓친 자녀를 둔 친구들끼리는 “우리끼리 사돈 맺으면 어떠냐”며 농담 섞인 혼사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이는 곧 여행길의 큰 웃음 포인트가 됐다.
특히 이번 여행의 백미는 버스 안에서 공유된 ‘인생 철학’이었다. 한 동창이 마이크를 잡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지만, 내 발로 걷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인생길은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다니자”고 외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식들에게 현금을 물려주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쓰고 즐기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는 말, 그리고 건강을 위해 걷는 습관과 취미를 꼭 갖자는 다짐은 칠순 동창들 모두가 공감하는 ‘제2의 인생 선언’과도 같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 대통령들의 휴양지였던 청남대를 둘러보며 이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스스로가 주인공이었음을 확인했다. 청주공항에서 다시 제주로, 또 각자의 육지 삶터로 흩어지는 발걸음은 여행 전보다 훨씬 가볍고 단단해 보였다.

고산초 25회 졸업생들의 이번 칠순 여행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온 고생이 헛되지 않았으며, 남은 생은 오직 나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걷겠다”는 힘찬 다짐의 현장이었다. 제주 고산리의 바람을 닮은 이들의 활기찬 행보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지길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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