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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라지꽃야생화는 나와 같다. ⓒ dandelion.pe.kr^^^ | ||
세상에 살아 있는 것들은 다 닮았다고 생각한다. 식물과 동물도 근본적으로 닮았다. 그래서 들에 핀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꼭 나를 보고 있는 듯 하고 그들을 통하여 나를 알 수 있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인생을 배우는 것이다. 야생화는 마치 나의 선생이자 선배 그리고 부모와도 같다는 걸 느낀다.
'야생'이란 말에는 그야말로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의 그 상태와 성질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을 '근본'이란 뜻으로 난 해석한다.
절대의 눈속임과 가식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타협과 융통성의 부조리가 없다. 지금의 세상에는 길들여진 예쁜 꽃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예쁘게는 보여도 제대로 살아있다고 볼 수가 없다. 마치 인형이나 조화 같거나 포장된 공산품과 흡사한 느낌을…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막연히 길들인 모든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아무 곳에서나 잘 적응할 수 있는 꽃을 고른다거나 잘 죽지 않는 식물을 선택한다든가, 말 잘 듣고 아무나 주인대접을 잘하는 짐승을 최고로 친다든가, 더 나아가 자기 자식까지도 자기 식의 잣대와 평가로 성공적으로 커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된 어리석은 희망인가? 그렇다면 아예 생명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편한 일이 아닐까? 야생화는 우선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줏대가 있다. 살아있을 곳에서 살고 죽을 때에 죽을 줄 알고 꽃필 때는 피어야 하고 꽃이 질 때는 깨끗이 질 줄 안다. 못다한 미련이나 있는 것처럼 구차하게 살아가지 않는다. 더욱이 사람들의 알량한 사랑을 핑계삼아 아무때나 피거나 시도때도 없이 피어있지 않는다. 말 그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어찌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지않는 꽃에게 어찌 매력을 느낄 수가 있겠는가? 아무때나 피고 항상 피어있는 꽃이 어찌 고귀하게 보여질 수 있겠는가? 그들은 단지 인간에게 잠시 잠깐의 위안이나 줄뿐… 결국 다듬는다고 해서 다듬어 지지않는 것이 야생화이다.
그들은 보잘 것 없고 초라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이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을 볼 수 있는 눈을 얻게되고 소외된 구석진 곳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된다. 야생화는 바로 '나'이다. 외롭고 쓸쓸한 이 땅의 나그네이다. 그래서 일까 그들은 언제나 함께 모여서 살아간다. 또 그래야만 세상의 눈에 잘 띄고 아름답게 보이니까? 나도 그렇다. 그래서 늘 사람들과 어울린다. 소외되거나 외로워 지고싶지 않기 위해서다.
세상의 한 귀퉁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포기의 작고 초라한 나와 야생화가 함께 서 있다. 한줄기 작은 햇볕을 쬐고 있는 것이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우리들은 언제나 늘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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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밀꽃세상의 한 귀퉁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작고 초라한 나와 야생화가 함께 있다. ⓒ dandelion.pe.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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