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필자는 워낙 말수가 없는데다 발음이 부정확하고 성격이 활달하지 않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아야만 했다.
글 솜씨와 학력, 지능지수를 비롯해 외모도 웬만한 엘리트를 능가 했기에 필기시험 패스는 0순위 였으나 면접에서 걸림돌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서 전공을 살리기 위해 기독교 계통의 일을 찾아서 사역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장애인이라도 고용하는 기관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물론 나는 장애인이 아니다.
소위 말더듬이라고 하는 다소 언어전달이 부정확하긴 해도 사회생활 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만큼의 1급 장애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썩 같이 믿었던 교회서도(대형교회에서 운영하는 인형극이었고 현재의 극단에서 활동하기 이전에 면접을 보았던 곳)반응은 냉담했던 것이었다.
몸이 좀 불편해 보여서 이처럼 활동적인 일은 안될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차라리 활동적인 일을 하면 많이 나아지지 않겠냐고 대꾸했지만 결과는 no였다. 정말 기독교인이라는 게 후회 막심할 정도로 분노하던 무렵이었다.
지방이었고 해서 독립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극단도 커 숙식하는데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찰나 면접을 하던 단장님의 발언에 울화가 치밀었다.
성격이 좋은(?) 사람이었기에 망정이었지 이 과정에서 자칫 하다가는 주먹이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울분 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극단을 운영하는 사람은 목사가족이었다. 그래서 더욱 분함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최종학력까지 공개했으나 한번 안 된다면 안됐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다른 직업을 구하기 시작했다.
서울에 위치한 인형극 이었는데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러갔다. 예상대로 반응은 곤란하다는 말이었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메일을 계속 보냈다.
그래서 인지 나는 인형극단원으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으나 이전에 찾아 갔던 극단에 비하면 천차만별이었다. 교회 규모로 치면 순복음교회와 시골 미자립교회의 차이였다.
지금은 연극교실로 명칭이 바뀌고 활동을 재개했지만 입단초기인 2003년과 지난해 처럼 절정에 달하지 않아 나가는 날보다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을 정도이다.
그래서 부업으로 시작한 인터넷신문에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연말께 모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시민기자로 활동하다 정식 상근기자로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설, 칼럼 위주로(경우에 따라 문화생활기사도 많이 다루었다) 작성하던 나의 글이 계급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다. 그러나 막상 면접에서도 다를 게 없었다. 담당기자님도 나를 '독불장군'으로 인식한 것이다.
지금도 나는 집에서 열심히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나의 학창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곤 한다.
친구도 멀리한 채 학업에만 전념하던 그 시절이...
'그때 놀 때 실컷 놀아두면 좋았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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