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부’와 ‘전쟁장관’ 탄생의 시대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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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부’와 ‘전쟁장관’ 탄생의 시대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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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남용은 노벨 평화상 수상을 그토록 염원하는 트럼프가 자처하는 ’평화의 중재자‘(peacemaker) 역할과도 크게 모순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존의 ‘국방부(펜타곤)’를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명칭 변경을 명령했다. 트럼프 특유의 인식이 ‘전쟁부’가 되며, 따라서 ‘전쟁장관’이 탄생하게 된다.

현대적인 군사 전략은 과거의 협의(狹義)의 의미에서 광의(廣義)로 바뀌고 있다. 전쟁을 수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평화유지, 재난 구호 등 ‘하이브리드 역할’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전쟁이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미국 내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도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어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특히 ‘전쟁부’라는 부처가 있으면,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는 민주주의로서 대외전쟁을 추구하지 않고 평화유지를 지향한다. 실제와는 다르게 미국은 크고 작은 많은 전쟁을 치러왔다. 특히 2개의 세계 대전을 거친 미국과 서유럽 나라들은 그러한 자세를 나타내기 위해 무력을 관장하는 정부 조직에 “방위”라는 이름을 붙이며, 애써 “공격”이라는 피해 왔다.

이번 트럼프의 ‘전쟁부’로의 명칭 변경은 그러한 평화 유지와 방위라는 개념을 망각한 것이다. 이미 세계 최(最)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에게 한층 더한 군사 강대국을 추구하는 ‘전쟁광’(warmonger)이라는 별명을 붙여줘도 어색하지 않다. 미 의회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전쟁부’로의 명칭 변경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는 국방부를 ‘전쟁부’로 변경하라는 행정명령에 이미 서명했다. 미국 건국 후 얼마 되지 않은 18세기부터 세계 대전 직후까지 ‘전쟁부’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트럼프는 “전쟁부 당시는 전승의 시대였다”면서 “방위뿐 아니라 공격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의 군사 기구 동향이 일상적으로 전쟁이라는 말과 함께 발신되는 것은 중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국민들도 국방부라는 말 대신 ‘전쟁부’라는 말을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된다. 트럼프가 그것을 노린 것 일까?

공식 호칭 변경은 미 의회의 입법 절차가 필요하지만, 국방부와 병용할 것이겠지만, 우선 ‘전쟁부’와 ‘전쟁(부)장관’으로 부를 것으로 보인다.

되돌아보면, 20세기 전반까지 미국과 서방 등에서 “전쟁”을 붙인 호칭은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대전 후, 트루먼 전 대통령은 “평화와 안전의 달성”에 이바지하자는 의미에서 개혁을 실시, 육해공군을 통합하는 것과 동시에 전쟁부의 호칭을 그만두게 했다. 유럽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방위”(defence)를 내건 것이 세계 대전 후의 큰 흐름이었다.

전쟁부 창설 200년인 1989년, 조지 H. 부시(아버지) 당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전쟁부는 이제 시대착오적이고, 호전적인 울림마저 있다. 전쟁을 억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 군의 목표에 비춰 국방부의 이름이 맞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분쟁이 지구촌 여기저기로 퍼지고 있는 최근의 국제 정세를 고려해도 전쟁부는 적절하지 않은 호칭이다.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는 트럼프 자신의 신조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이같이 호전적이고 온건하지 못한 호칭은 위협감을 높이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또한 ‘현대적 군대의 역할 변화를 부인”하는 호칭 변경이다. 현대적 군대는 단순한 전쟁 수행을 넘어 평화 유지, 국토방위, 재난 구조, 국제 협력 등 다층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전쟁부'라는 명칭은 이러한 다양한 역할을 축소하고, 과거의 전쟁 중심적 관점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 ’시대착오‘라 할 수 있다.

특히 조심해야 할 부분은 “부정적 인식과 이미지 악화”라는 점이다. '전쟁'이라는 단어는 폭력, 파괴, 갈등과 연관되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나아가 집단 학살(Genocide)이라는 이미지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명칭 변경은 공격적이거나 호전적인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며, 국제 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베트남, 이라크 등에서 무모한 전쟁을 벌였던 과거가 있다. 지금의 국제 환경이 불안정한 만큼, 방위에 관련되는 언행은 엄격하게 억제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대국(大國) 미국의 책무일 것이다.

트럼프를 들여다보면, 대외관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는 “미국 내의 현안에서도 자의적으로 군을 동원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불법 체류자를 색출하겠다며, 대규모 병력을 파견, 일부에서는 무차별적으로 체포 구금한다.

일례로 최근 벌어진 조지아주의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회사) 현장을 급습(Raid), 한국인 300여 명 이상을 포함 475명이라는 대규모 구금 사태까지 발생했다. 국내 정치적으로 보여줄 하나의 정치쇼(political show)라는 현지 언론들의 해석도 있다.

마약 밀수에 대해 군사 행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 외에 이민의 적발이나 시위 등을 둘러싸고, 현지 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부대를 전개. 얼마 전에는 시카고에의 강제적인 군 파견의 의향을 나타내, “왜 전쟁부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국제분쟁도, 국내의 분열과 치안도 주도면밀한 조율과 대화의 축적이 없으면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왜곡된 역사관과 무력 편중에 기초한 ’전쟁‘의 남용은 노벨 평화상 수상을 그토록 염원하는 트럼프가 자처하는 ’평화의 중재자‘(peacemaker) 역할과도 크게 모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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