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성을 말한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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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성을 말한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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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4] 꿈을 팔아버린 아이들

^^^▲ 성은 감추어야 할 표현이 아닌, 사랑의 표현이다.^^^
“엄마, 나 살쪘나봐. 요즘 왜 이렇게 배가 나오는지 모르겠어.”

어느 10대의 소녀가 임신을 한 것도 모른 채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가정 시간 혹은 성교육시간에 졸며 들었던 것 같은, 내게는 필요없을 것 같던 이야기들이 이루어진 것에 소녀는 크게 당황했다. 임신 6개월이 되도록 몸의 변화를 느끼지 못 한 여학생은 그저 잠이 많아지고, 배가 나오는 것 같은 느낌밖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사연이라고 해야할지, 청소년들의 무지함을 탓해야할지 난감한 일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몸의 변화가 오도록 모른 것을 탓해야하겠지만, 보통 여자 성인들조차 임신을 늦게 알게 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누구의 탓을 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것은 소녀탓도, 부모탓도, 학교탓도 아니다. 성에 대한 무지, 금기시되어온 성에 대한 관념, 급격화된 성의 개방,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죄를 저지른 것은 아이들의 성에 필요한 실질적 지식을 가르쳐주지 못한 성교육 자체에 있다.

먼저 현재 성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기 전에,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의 성교육 사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서양의 성은 우리보다 훨씬 자유로우며 자아에 대한 적극적 표현의지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고조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성’을 받아들이데 있어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취하는데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성을 ‘사랑한다’ 와 ‘즐긴다’의 사이에서 퇴폐를 조장하는 것이라 보지 않는다. 순간의 쾌락, 순간의 사랑으로서의 성은 동양인의 관점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만, 서양인들은 그 순간에 충실한 것이라 생각하여 피임과 같은 임신을 예방하는 것 역시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서양의 여자들이 피임을 충실히 하여 임신을 하지 않는 것은 성적 퇴폐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사랑, 성에 대한 자신 나름대로의 책임을 지는 방법인 것이다.

이렇듯 서양의 성교육의 중점은 ‘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해라. 그런데 하려면 이것만은 꼭 해야한다’인 것이다. 따라서 성교육은 철저히 피임법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상당히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교육을 시킨다.^

우리 나라가 지금 초등학생들의 성문제로 많은 문제를 겪고 있듯, 많은 나라가 현재 성문제를 겪는 연령층이 낮아져서 곤혹을 치루고 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문제에 대하여 왈가왈부한다고 하여 그들이 한 모든 행위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선명하게 돋아나 어린 학생들의 과거에 지우지 못할 시간을 기록할 뿐이다.

우리나라 역시 앞서 말한 것처럼 성문제의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초래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어른들은 무조건 청소년들을 탓하며 그들에게 모든 문제를 떠넘기고 있다. 혼자서 고민의 길을 달리다가 지친 아이들은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거나 막다른 길 앞에서 서성거린다.

주저앉은 청소년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이지만, 그보다 더 먼저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함께 달려주고, 돌부리가 없는 길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어른이 꼭 해야할 일이요, 의무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교육을 하고 있는 지도자 및 교육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직도 성에 대해 풍기문란을 조장하는 것. 그래서 성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풍기문란함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무의식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가치판단과 해결의 정점을 그곳에 두면 안 된다. 이미 급격화된 서구화의 물결에서 아이들의 성관념이란 풍기문란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발현의 도구이다. 고지식한 옛 지식과 관념으로 어린 아이들을 대했을 경우 어느날 갑자기 “ 나 살쪘나봐. 자꾸 배가 부르잖아”와 같은 말을 들었을때는 어떻게 감당할 생각인가. 그렇다고 해서 물론 청소년들에게 성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장하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들의 관점과 의식이 변화해서 흘러가는 물결을 억지로 큰 바윗돌로 막으려하지는 말아달라는 당부이다.

꿈을 판다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다. 너무 이른 시기에 엄마의 꿈이 이루어진 아이들에게 생긴 생명은 절대 어린 소녀의 꿈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다. 생명 자체는 어떤 이유로도 엄마에게 장애가 될 수 없다. 다만 주변의 시선과 편견이 굳은 살처럼 박히는 것일 뿐, 생명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좌절해야할만큼 슬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단지 꿈이 변형된 것일 뿐이고 순간의 판단으로 그 꿈을 팔아버렸을 뿐이다. 변형된 꿈의 모습은 너무나 잔인해서 어린 소녀들에게는 꿈이라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어른들의 몫이 분명해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꿈이 변형되지 않도록, 너무 이르거나 늦지 않도록 함께 성의 바다를 헤쳐나가야 한다. 꺼지지 않는 등대불로 아이들이 가야할 바다를 밝혀주는 것이야말로 어른들이 일궈내야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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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 2004-11-30 15:11:20
어른들 성은 누가 않쓰나..
한번 봐야 하는데.

우리 어렸을때는 성이야기 말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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