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중동 국가 가운데 한 나라. 카타르(Qatar)를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초부유 현대 국가(ultra-wealthy modern nation)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인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Sheikh Hamad bin Khalifa Al Thani) 국왕이 74세의 나이로 서거하여 도하에 안장됐다.
셰이크 하마드의 사망 소식은 12일 아침에 발표되었으며, 그의 간소한 장례식은 수도에 있는 이맘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 모스크(Imam Muhammad ibn Abd al-Wahhab Mosque)에서 해질녘 저녁 기도 후에 거행되었다.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Sheikh Tamim bin Hamad Al Thani)를 비롯한 가까운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모스크 밖으로 운구했다. ‘셰이크 하마드’는 도하 북쪽에 위치한 루사일(Lusail ) 묘지에 안장되었다고 알자지라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 국왕(國王)이지만 백성(국민) 복지에 집중
알자리자는 “이러한 간소하고 소박함은 이슬람 전통과 일맥상통할 뿐만 아니라, 선대 에미르께서 삶을 어떻게 살아가셨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며, “그는 부의 화려함에 연연하지 않고 국민(백성)의 복지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18년의 셰이크 하마드의 통치 기간 동안 카타르의 국내총생산(GDP)은 24배 이상 증가했는데, 이는 주로 그가 막대한 가스 자원 개발에 집중한 덕분이었다. 그 결과, 약 312만 명의 인구에 불과한 이 작은 나라는 2006년에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이 되었다.
* 중동의 CNN 별명의 ‘알자지라’ 출범. 글로벌 영향력 커져
오늘날 카타르의 정치적 영향력은 전 세계에 걸쳐 있다. 카타르는 미국과 이란 간의 지속적인 분쟁을 포함하여 여러 분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
2022년 카타르는 FIFA 남자 월드컵을 개최했다. 셰이크 하마드는 개막전에 참석한 팬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1996년 중동의 시엔엔(CNN)이라는 별명을 가지는 ‘알자지라 뉴스 채널’이 출범했고, 이 채널은 몇 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네트워크 중 하나로 변모했다.
알자지라 미디어 네트워크의 총괄 책임자인 ‘셰이크 나세르 빈 파이살 알 타니’(Sheikh Nasser bin Faisal Al Thani)는 성명에서 “그는 이 위대한 미디어 기관의 설립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초석을 다진 선구자였다. 깊은 슬픔과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셰이크 나세르는 “그는 전 세계 진실의 등불이자 소외된 자들을 위한 목소리가 될 기관의 첫 씨앗을 뿌렸. 그는 비할 데 없는 결의로 이 지역의 언론 환경을 변화시켰으며, 언론은 사명이자 엄숙한 신의이며, 자유로운 언론은 반드시 수호되어야 할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 영구 헌법 공포, 여성의 투표권과 출마권 허용
* 중동의 ‘특별한 국가’
셰이크 하마드의 재임 기간 동안 2004년 카타르 최초의 영구 헌법이 공포되었고, 여성의 투표권과 출마권이 허용된 지방 선거가 도입되었다.
2013년, 그는 세습 아랍 군주로서는 드문 사례로, 당시 33세였던 아들이자 후계자인 셰이크 타밈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카타르 대학교 국제 관계 조교수인 압둘라 반다르 알 에타이비(Abdulla Banndar Al-Etaibi)는 셰이크 하마드(Sheikh Hamad)가 카타르를 “특별한 국가”(An extraordinary country)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카타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카타르를 평범한 나라에서 저명하고 특별한 나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그는 정말 많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LNG에 많은 투자를 했다. 덕분에 카타르는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고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 이집트에 대한 굴종 시대 종식 : 소국의 변신
*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무장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Being needed is safer than being armed)
셰이크 하마드의 업적은 단순히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 것에 그치지 않고, 카타르를 중요한 국가로 만들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작은 국가에게 있어 이는 일종의 ‘안보’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18년간 권력을 잡으면서 남긴 유산이었고, 그의 사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2013년 그가 권력을 이양한 나라는 그 크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회담을 갖고 수많은 대화를 중재해 왔다.
전환점은 바로 1995년 6월, 셰이크 하마드가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계승하면서 찾아왔다. 그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국가적인 신중함의 관습’을 끝냈다. 이 소국은 ‘이집트’에게는 복종이 생존 본능과도 같았다. 즉, 고개를 숙이고 강자에게 순종하며 기다리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른바 ‘플래터리 외교’(Flattery Diplomacy)로 국가 안보를 유지해 왔다.
셰이크 하마드는 이 논리를 뒤집었다. 영토나 병력 면에서 전략적 깊이가 부족한 국가는 지역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기에,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에 끼어 있는 반도를 이웃 국가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대부분의 소국 통치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중요한 사실을 파악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카타르를 규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바로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무장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Being needed is safer than being armed)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일은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카타르가 축적한 막대한 부(富)는 단지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진정한 업적은 그 부를 활용하여 이룩한 성과이다. 그는 세계 최대 규모의 비수반 가스(non-associated gas) 매장지인 노스 필드(North Field)에서 얻은 수익을 이용하여 국가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비수반 가스(non-associated gas)는 석유(원유)층과 함께 발견되는 ‘수반 가스’(associated gas)와 달리, 원유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가스 저류층에서 발견되는 천연가스를 의미한다.
* 국가적 원칙에 기반한 외교 전개
셰이크 하마드의 외교술이 단순한 자금력에만 의존하는 외교(chequebook diplomacy)와 차별화된 점은 ‘국가적 원칙에 기반’(national principle)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 훨씬 이전부터 카타르는 스스로를 “카바트 알 마디움”(Kaabat al Madioum), 즉 피억압자들, 소외된 자들의 안식처, 박해받고 추방당한 자들의 안식처로 여겨왔다. 이는 에미르 자심 빈 무함마드 알 타니(Emir Jassim bin Mohammad Al Thani)가 카타르에 피난처를 구하는 자는 누구든 보호받을 것이라고 쓴 “나바티 시구(詩句)”(Nabati verse)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바티 시구’는 아랍 세계, 특히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구어체 시(詩)를 뜻하는데, 고전 아랍어가 아닌 대중적인 방언을 사용하여 ‘삶의 지혜, 용기, 사랑, 부족의 역사’ 등을 노래한다. 카타르의 통치자들과 같은 지도층에게도 이 시는 문화적 정통성과 대중과의 소통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산이라고 한다.
셰이크 하마드는 그 계승된 정신을 현대적인 국가 기구로 발전시켰다. 알자지라는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a voice for the voiceless)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기존 방송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방송사가 되었다. 반체제 인사, 정치적 망명자, 그리고 이 지역이 묻어버리고 싶어 했던 운동 세력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은, 이 지역을 새로운 사회정치적 질서로 이끌고자 하는 혁명적 혁신가의 행보였다.
이로써 카타르는 특히 2011년 ‘아랍 혁명’ 당시 아랍권 여론의 흐름을 면밀히 파악할 수 있었다. 억압받고 약한 자들과의 연대라는 명분으로 셰이크 하마드가 다소 충동적으로 혁명을 지지한 것은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지만, 동시에 지역 전역에서 비난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카타르 국내에서도 셰이크 하마드는 해외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신념, 즉 사회는 개방적이어야 하며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이끌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통치했다. 그는 1999년 첫 지방 선거를 실시하여 남녀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2003년에는 국가 최초의 헌법을 제정했다.
* 아내와 비전 공유, 지식경제 구축 비전
* 어린 아들에 권력 재빨리 이양, 세상의 변화를 재빨리 감지한 선견지명
그가 아내인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Sheikha Moza bint Nasser)와 공유했던 비전, 즉 가스에만 의존하는 경제가 아닌 학교, 대학, 연구를 중심으로 한 지식경제(a knowledge economy)를 구축하자는 비전은 선견지명이 뛰어났지만, 처음에는 그 속도를 불신하는 보수적인 카타르인들 사이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추진했다.
그가 남긴 사회는 그가 물려받은 사회보다 더 자유롭고 해방되었으며, 1인당 소득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및 공공 서비스 측면에서도 지구상에서 가장 번영한 사회 중 하나로 꼽힌다.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안보학 부교수 안드레아스 크리그(Andreas Krieg)는 “2013년, 셰이크 하마드는 이 지역 군주들 사이에서 매우 드문 일을 했다. 바로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한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에 아들 셰이크 타밈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은, ‘변화의 물결이 몰아치기 전에 재빨리 적응’하는 그의 성격에 딱 맞는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크리그는 “그는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권력을 잡았지만, 세상이 더욱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자신의 유산을 다음 세대가 이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서 “셰이크 하마드는 카타르에게 주권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고, 체제가 우회할 수 없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 주었으며, 카타르에 정체성과 미래를 향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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