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악가 김대환을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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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음악가 김대환을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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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음악가는 삶과 음악이 일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조용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대환은 몰랐다. 그가 한때 조용필과 함께 공간사랑에서 프리재즈를 연주하던 그 재즈 트리오의 맴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대학도서관에서 수많은 책을 남독하던 때였다. 나는 그들이 함께 하는 공연을 본 적은 없었으나 공간사랑에 찾아가 본 적이 있었다. 대학 1학년시절이었다.

달랑 비둘기호 표를 들고 12시간이 걸려 찾아온 서울. 어머니의 친구 집에 무댓뽀로 며칠을 머물면서, 내가 서울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곳들을 다녀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은 날이었다. 인사동, 대학로, 종로의 르네상스, 종로서적, 서울대학, 경복궁과 국립박물관 그리고 공간사옥의 지하에 위치한 공간사랑이었다.

공연을 보지는 못했으나 특이한 구조의 소극장과 그곳에 놓여진 방석에서 아직도 느껴지던 사람들의 체취를 한참동안 느끼다가 돌아왔었다. 그 겨울은 참 눈이 많았었다. 서울거리는 온통 하얀색의 눈과, 그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검은 색의 물기로 가득했었다. 콘트라스트가 강한 흑백사진을 보는 강렬함처럼, 서울의 이미지는 그렇게 내 골수 속에 날아와 박혔다.

국철을 타고 옥수 역 부근을 지나면 한강에 겨울비가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강변에 내려 오랫동안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서울로 와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지방도시의 거리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이류 문화패들의 공연 포스트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 다짐을 되풀이 했다. 백조다방. 그 도시의 문화계 인물들이 모인다는 그 음악다방의 어둠 속에서 간간히 낮 익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것을 쏘아보면서 나는 다짐을 되풀이 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서울에 찾아왔다. 첫해. 지독히 바빳던 직장생활의 첫해에 나는 시간만 나면 공연장들을 찾아다녔다. 항상 잠이 모자라던 그 시절. 늦게 마친 공연을 보고 피로에 절은 파김치가 되어서 숙소로 돌아오곤 했었다. 버스 안에서 사정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침까지 흘리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면 사람들이 킥킥거리고 웃곤 했었다. 그리고 다시 새벽같이 출근을 해야 했지만, 그렇게 공연티켓을 하나씩 모아가는 것이 나에겐 더없는 기쁨이었다.

언젠가 한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던 김대환 씨의 연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트리오가 아닌 그의 단독공연을 보러갔었다. 티켓과 함께 받은 팜프렛에선 그의 연주 스타일이 파격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마침내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그때쯤엔 상당수의 프리재즈 공연들을 섭렵했던 나로서도 놀라운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의 공연은 독특하고 색달랐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의 깊이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엔 감동을 받을 만한 공연은 많이 있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삶의 모습 때문이다. 언젠가 대학로에서 한번 그를 본적이 있었다. 자그마하고 동그란 금테안경에 긴 머리를 하고 마치 검정 물을 들인 것 같은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있었다. 조용히 문예회관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는 그의 모습에서는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예술가의 긍지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럴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느 잡지에서 읽은 그에 관한 기사 때문이었다. 그의 기행에 가까운 삶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가진듯한 그 기사에서, 나는 그가 마음에 드는 찝을 사기 위해 전세금을 뺏다는 내용을 읽고 입가에 미소를 물었다. 재미있는 기행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만한 정도의 기행에 놀라거나 감탄할 이유는 없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수많은 기행을 벌이고 있었고, 그런 기행은 당시 유행하던 전위예술의 소재나 주제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중광스님의 기행도 익히 알고 있는 터였었다.

그러나 내가 정말 감동하게 한 것은 바로 그 아랫에 있는 기사였다. 그의 오토바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오토바이를 샀다. 할리 데이비드슨이었다. 그가 당시엔 한국에 희귀했던 그 오토바이를 산 이유는, 그 오토바이의 엔진소리 때문이라고 한다.

할리 데이비드슨의 엔진소리는 매우 저음이란다. 마치 북의 소리와 비슷하단다. 시동을 걸면 천천히 둥-둥-둥-둥- 하는 엔진의 소리가 땅을 때리기 시작한다. 속도를 내면 그 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톤은 조금씩 높아져 간다. 그렇게 그는 지면을 울리면서 바람을 앉고 세상을 헤쳐 나간다.’

당시의 내가 읽었던 잡지의 기사에 실렸던 글을 지금에 와서 정확히 기억해 낼 수는 없다. 위에 쓴 인용문은 당시 그 기사가 나에게 준 감동을 생각하며,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내가 다시 써낸 것이다.

어쩌면 그가 오토바이의 소리가 좋아서 할리 데이비드슨을 샀다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문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그런 식으로 그를 기억했고,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의 목록에 넣었을 뿐이다.

공연장에서 깜짝 놀랄만한 공연을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자신이 공연하는 내용 그대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것이 바로 세상살이 이다. 그는 북이 좋아서 손에서 피가 나도록 북채를 잡고 연습을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그는 오토바이의 엔진소리로 지면을 울리면서 세상을 스쳐지나간다. 그는 그렇게도 울림을 좋아하는 것이다. 자신이 공연에서 보여준 북의 울림에 대한 구도자적 모습을, 그는 자신의 삶에서 그대로 실현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를 진정한 삶을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를 그렇게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오토바이를 전혀 탈줄 모르는 나도 할리 데이비드슨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기사를 읽고, 예전에 본 영화 ‘이지 라이더’에 나온 그 오토바이가 다시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것을 타고 넓은 대지를 마음껏 달리며,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깊은 울음을 대지와 함께 울려대는 것은 얼마나 자유스러운 느낌일까.

김대환을 통해서 나는 영화 ‘이지 라이드’의 의미를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자유를 누리기 위해 그들은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었다. 김대환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했을까.

바람이 잠잠해졌다. 오랫동안 내 가슴을 맴돌며 나를 어디론가 내 몰아가던 그 그칠 줄을 모르던 열풍이 요즘은 한동안 조용하다. 그것이 언제 다시 불어올지 모르지만, 나는 차근히 하루의 삶을 살아가면서 준비를 한다. 언제 어떻게 바람이 다시 불어오든, 부는 방향에 따라 어디로든 떠날 수 있도록 서서히 준비를 한다. 나를 서울로,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삶에 대한 뜨거움으로 몰아왔던 삶은 이젠 또 어디로 나를 몰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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