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운/김병철 기자] 수원특례시가 내세운 ‘폭싹 담았수다! 시민의 민원함’은 이름만 놓고 보면 시민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선 행정처럼 보인다. 정조대왕의 애민 정신을 계승했다는 상징성까지 더해지면서 정책의 외형은 따뜻하고, 취지도 선명하다. 시는 앞서 100일 동안 1,658건의 민원을 접수했고, 이 가운데 86%를 해결했으며, 시민 만족도는 70%에 달한다고 홍보했다. 숫자만 보면 성과다. 그러나 행정의 성과는 숫자가 많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기자의 시선은 언제나 숫자의 바깥, 그리고 그 숫자가 만들어진 구조를 향해야 한다.
본보가 지난 4월 9일 기자수첩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민원을 몇 건 받았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많은 민원이 반복되고 있느냐는 점이었다. 시민 불편이 ‘민원함’이라는 이름으로 접수되기 전에 행정은 이미 그 문제를 알고 있었어야 했다. 도로 파손, 가로등 고장, 교통 체증, 보행 불편, 생활 안전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사안이 아니다. 시민이 반복해서 겪어온 불편이고, 행정이 현장에서 미리 살폈어야 할 과제다. 결국 민원함의 성과를 말하려면 접수 건수보다 먼저 예방 행정이 왜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따져야 한다.
이에 본보는 지난 17일 수원특례시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실제 완료된 민원은 몇 건인지, 단순 안내와 장기 검토 사안은 각각 얼마나 되는지, 시민 만족도 조사는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진행됐는지, 시민소리해결팀 신설에 따른 예산과 인력 변화는 무엇인지, 기존 민원 처리 체계와 비교해 처리 기간·해결률·재민원 발생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단순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수원특례시가 스스로 내세운 성과를 시민이 검증할 수 있도록 기본 자료를 요청한 것이다. 해결률과 만족도라는 숫자를 발표했다면, 그 숫자가 어떤 기준으로 산출됐는지 설명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행정의 책임이다.
정보공개법상 공공기관은 청구를 받은 날부터 통상 10일 이내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 사유를 알린 뒤 10일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법정 답변 기한에 여유가 남아 있다. 본보 역시 섣부른 단정보다는 수원특례시의 공식 자료와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그 사이 수원특례시는 다시 한 번 ‘성과’를 발표했다.
수원특례시는 올해 1월 15일부터 시작한 ‘2026년 상반기 폭싹 담았수다! 시민의 민원함’이 4월 24일 100일간의 운영을 마무리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에는 총 915건의 민원이 접수됐고, 분야별로는 안전교통이 25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도로·건설 235건, 도시·환경 143건 순이었다. 시는 시민소리해결팀을 신설해 민원을 매일 처리 부서로 전달했고, 실·국·소장과 구청장이 책임 관리했으며, 데이터분석 대시보드를 구축해 분야별·부서별·진행 단계별 현황을 실시간으로 관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애인종합복지관 내 휠체어 이용자 체중계 설치, 가로수로 인한 보행 불편 개선, 노후 가로등 관련 대체 조치, 교통 체증 구간 신호체계 조정 등 구체적인 사례도 제시했다.
겉으로 보면 행정은 한층 체계화된 듯하다. 전담팀이 생겼고, 데이터 관리 체계가 구축됐으며, 현장 확인과 부서 책임 관리도 강조됐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같은 질문이 남는다. 그래서 915건 가운데 몇 건이 완전히 해결됐는가. 몇 건은 단순 안내였고, 몇 건은 장기 검토이며, 몇 건은 예산·법령·관계기관 협의 문제로 뒤로 미뤄졌는가. 접수 건수는 출발점일 뿐이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접수가 아니라 해결이다. 민원을 받는 것은 행정의 기본이고, 실제 불편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발표에서도 “지속 관리”, “추진 중”, “구체적 설명”, “대체 방안 제시”라는 표현은 있었지만, 완료·미완료·검토·불가 사유를 구분한 구체적 수치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행정의 입장에서는 신중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시민 입장에서는 가장 불명확한 표현이기도 하다. 민원이 해결됐는지, 검토 중인지, 사실상 장기 보류인지 알 수 없다면 체감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생활민원은 더욱 그렇다. 시민에게 중요한 것은 “관리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됐는가”다.
도로 보수, 공원 시설물 정비, 노후 가로등 교체, 교통 체증 완화, 가로수 정비는 대부분 반복성 민원이다. 이런 민원이 계속 들어온다는 것은 행정이 시민 불편을 사전에 충분히 포착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민원함은 필요하다. 시민 목소리를 직접 듣는 창구는 분명 행정에 필요하다. 그러나 민원함이 반복되는 문제를 접수하는 통로에 머문다면 행정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민원을 잘 받는 행정보다 중요한 것은 민원이 반복되지 않도록 미리 고치는 행정이다.
수원특례시가 제시한 사례도 이런 기준에서 봐야 한다. 가로수로 인해 보행이 불편하다는 민원에 대해 담당 부서는 가로수 제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야자매트를 설치했다. 노후 가로등 교체 요청에는 해당 시설이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임의 보수가 어렵다고 보고, 인근에 별도 보안등을 설치하고 기존 전구를 철거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조치가 현장 불편을 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근본 해결인지, 임시 대응인지, 유사 민원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조치인지는 별도로 검증돼야 한다. 시민은 순간의 응급처방보다 지속 가능한 개선을 원한다.
시민소리해결팀 신설도 마찬가지다. 조직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성과가 될 수는 없다. 새로운 팀이 생겼다면 인력과 예산이 투입됐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이전보다 무엇이 나아졌는지를 수치로 보여줘야 한다. 처리 기간은 단축됐는가. 부서 간 떠넘기기는 줄었는가. 재민원 발생률은 낮아졌는가. 반복 민원은 감소했는가. 시민 만족도는 어떤 방식으로 확인했는가. 행정은 조직 신설로 평가받지 않는다. 결과로 평가받는다.
데이터분석 대시보드 역시 마찬가지다. 수원특례시는 민원 분야별·처리부서별·진행 단계별 현황을 시각화해 실시간으로 관리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시민이 알고 싶은 것은 시스템 구축 자체가 아니다. 그 시스템이 실제로 무엇을 바꾸었는지다. 데이터가 있다면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어떤 분야의 민원이 반복되는지, 어느 부서의 처리 지연이 많은지, 어떤 유형의 민원이 장기화되는지, 해결 불가 사유는 무엇인지가 드러나야 한다. 데이터 행정은 내부 보고용 화면이 아니라 시민에게 설명 가능한 근거가 될 때 의미가 있다.
수원특례시가 강조한 ‘현장 확인 원칙’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장 확인이 곧 해결은 아니다. 현장을 봤다면 원인을 분석해야 하고, 원인을 알았다면 예산·인력·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하며, 그 과정이 시민에게 설명돼야 한다. “현장에 다녀왔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시민은 현장을 확인했는지가 아니라 확인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묻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성과를 발표할 때는 빠르고 적극적이면서, 그 성과를 검증하기 위한 자료 공개에는 신중하거나 늦어지는 구조라면 시민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 정보공개 답변 기한은 아직 남아 있다. 본보는 수원특례시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그 답변은 단순한 자료 제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수원특례시가 내세운 숫자의 근거, 민원 처리의 실제 단계, 시민 만족도 산정 방식, 전담팀 신설 효과가 함께 설명돼야 한다.
특히 수원특례시가 ‘정조대왕의 애민 정신’을 정책의 상징으로 내세웠다면 더 엄격해야 한다. 백성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민원을 접수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왜 같은 불편이 반복됐는지 돌아보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는지 공개하며,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 체계를 바꾸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름은 따뜻할 수 있다. 그러나 행정의 신뢰는 이름이 아니라 결과와 설명으로 만들어진다.
행정은 숫자를 좋아한다. 몇 건을 접수했고, 몇 퍼센트를 해결했고, 만족도가 얼마였는지를 앞세운다. 하지만 시민이 기억하는 것은 숫자가 아니다. 비 오는 날 여전히 물이 고이는 골목, 밤마다 불안한 어두운 길, 출퇴근 때마다 반복되는 정체, 아이와 걷기 불편한 보도 위의 현실이다. 행정의 성과는 보도자료 문장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에서 증명된다.
‘폭싹 담았수다’라는 이름은 분명 따뜻하다. 그러나 민원을 담았다면 책임도 함께 담아야 한다. 시민은 접수됐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언제 해결되는지, 왜 늦어지는지, 무엇이 바뀌는지 알고 싶어 한다. 수원특례시가 답해야 할 질문은 결국 하나다. 몇 건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왜 같은 민원이 계속 반복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질 때 ‘시민의 민원함’은 홍보가 아니라 신뢰가 될 수 있다.
본보는 수원특례시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그 답변은 단순한 해명이나 형식적인 수치 나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시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홍보 문구가 아니라 실제 변화다. 몇 건이 완결됐는지, 왜 같은 민원이 반복되는지, 시민소리해결팀 신설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반복되는 생활민원을 줄이기 위한 구조적 개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필요하다.
민원은 행정의 성적표가 아니라 시민 삶의 불편이 드러나는 가장 현실적인 기록이다. 그 기록을 얼마나 빠르게 접수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책임 있게 해결했는가다. ‘폭싹 담았수다’가 진짜 시민 곁의 행정으로 평가받으려면 이제는 접수율이 아니라 책임의 깊이로 답해야 한다.
본보는 후속 보도를 통해 시민소리해결팀의 실제 운영 예산과 인력 구조, 민원 처리 단계별 세부 현황, 반복 민원 발생 지역과 유형, 그리고 장기 미해결 민원의 실태까지 보다 구체적으로 검증할 예정이다. 숫자로 포장된 행정이 아니라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가 있었는지, 그 본질을 끝까지 확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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