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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중국 대학생의 용돈 장부중국 대학생들의 월 평균 용돈은 500위안 정도다. | ||
중국에서 대학 4년간 84만 위안(약 1억4천만원)의 용돈(花費)을 썼다는 한 청년의 당당한 이야기가 지금 중국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림으로 매월 우리 돈 300만원 정도 썼다. 서울 물가로 보면 "조금 쓰긴 했네", "뭐 그런 학생도 있겠지" 라고 넘겨 볼 일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의 신문과 인터넷이 이 청년의 용돈 이야기로 뜨겁다. 기자 역시 처음엔 "음!" 하며 읽다가 "어라?" 하는 대목들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보통 남의 일이라면 "메이 꽌시(沒關系)"라고 관계치 않으려는 중국인들이 한 학생의 용돈 이야기로 뜨겁게 달아 오르는 이유는 정녕 무엇인가. 뜨거운 이슈 속으로 들어가 본 즉 그것은 그 대단한 금액 때문이 아니었다. 그 학생은 1위안 단위까지 정리한 자신의 용돈 지출 명세 내용과 함께 인생관까지 밝혔는데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한 내용에서 중국인들이 다소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그럼 우리도 그의 용돈 이야기 속으로 따라 들어 가 보자. 27일 런민왕(人民網), 포털 소후(SOHU), 베이칭왕(北靑網) 등 중국의 10여 개 주요 매체들을 통해 일제히 소개된 리레이(李雷,23세,가명)라는 청년이 대학생활 4년 간 쓴 것으로 밝힌 용돈 항목을 간략히 추려 옮겨 보겠다. (환율은 대략 인민폐 1만 위안 당 170만원 정도로 환산된다)
교통비 8만768위안, 전화통화료 4만5600위안, 컴퓨터 구입 2만위안, 등록금 6만2800위안, 여가생활 4만위안, 유흥 14만4000위안, 여행 12만위안, 연애 15만위안, 담배 3만358위안, 의류 6만위안, 사고처리 1만 위안 등이었다.
연애비용과 유흥비가 좀 과하다는 생각 외에는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국과 중국의 소비패턴이 달라 중국에서는 이 금액 자체에도 충격을 받는 이들이 많다지만 그런 상대적인 격차 문제도 덮기로 하자.
여학생들에게 1만위안 짜리 가방을 선물했다느니, 연애비용이 가장 많았다느니, 휴대폰을 23개 갈아치웠다느니 하는 중국언론의 지적도 여기서는 일단 접어 둔다.
우선 지린(吉林)성 메이허커우(梅河口 또는 通化)시에 산다는 리레이는 부모를 잘 둔 케이스로 보인다. 1년 수입이 100만위안이 넘는다 하고 누나 셋은 시집을 갔으니 용돈으로 월 6천위안 이상을 받는다는 대목까지도 이해해 줘야 한다.
"그렇겠군" 하며 읽던 중에 기자가 "어라?" 하고 처음 충격을 받은 대목은 바로 여기서부터였다. 용돈항목에서 학습용품이나 도서구입 등의 항목이 '0위안'으로 적시되어 있었고 사회후원금으로는 '10위안'이 적혀 있었다. 정말 학용품이나 책을 단 한 번도 사지 않았을까는 강한 의문이 들긴 했다.
스촨 대지진 때는 한국여행 중이었다고 말한 그는 여행에서 돌아와 친구들이 후원금 내라길래 10위안을 냈노라고 말했다 한다.
'왜 대학을 가게 되었나?' 하고 물은 즉 그 청년은 "집에서 가라고 하니 그냥 갔다" 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 대답이 너무 당연한 말투로 들려 약간 놀랐다. 대학생활 중에 어떤 책을 읽었느냐는 질문에는 무협지와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대답했다.
다음이 더 문제였다. 자신의 소비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런 거야 아주 정상적이죠" 라고 답했다. 식구들의 도움으로 취업하기 위해 현재 실업자 생활을 전전한다는 리레이는 창춘시의 고급호텔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매달 용돈으로 받는다는 6천위안의 돈은 근로자들이 6개월 간 아무 소비도 하지 앟고 모을 수 있는 거액이다. 최근 조사에서 중국 대학생들의 평균 용돈은 리레이의 1/10도 안 되는 월 500위안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문제는 격차가 아니라 관점이다.
중국기자의 질문에 리레이의 어머니는 "따져 보니 한 6,7십만위안을 쓴 것 같다. 집에 남자 애가 걔 하나 뿐인데 나쁜 일만 안 저지르면 된다. 우리가 좀 벌 수 있으니 나가서 세상 유람했다고 치면 되지 않느냐"고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고 조글로미디어는 전한다.
사실 한 풀만 접고 보면 시시콜콜한 오렌지족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는 정도 아닐까. 우리도 그 시절 압구정동의 밤거리를 훑고 다니던 몇몇 젊은 사회부 기자들의 공로로 신문지상에서 많이들 읽었던 진부한 스토리이긴 하니까.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은 중국 네티즌들은 허탈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댓글에서 "부자가 3대 못 가는 중요한 이유 (富不過三代的主要原因)" 라며 이 청년의 태도를 꼬집었고, 또 다른 네티즌은 "중국청년의 실패한 유형(中國靑年人的敗類)" 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네티즌은 "도대체 80만위안이 무슨 개념인가? (80万是什槪念)" 이라며 상상이 안 간다는 반응이었고, "가문에 인물 났어! (一家人都是人才!)" 라는 식의 비아냥을 표현하는 이들이나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는 이야기군" 이라는 네티즌이 많았다.
이것이 지금 중국 청년사회의 현 주소이자 중국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인지부조화' 현상의 한 단초이다. 일전 기자는 대학 졸업 후 미취업 상태로 빈민가와 비정규 직장을 오가는 베이징의 이쭈(蟻族,개미족)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중국의 뉴-엘리트 빈민으로 불리는 그들의 생활비는 월 평균 200달러이다.
리레이나 개미족 이쭈, 양자 모두가 1980년도 이후에 출생한 이른바 '빠링후 (80後)' 세대이다. 팍팍한 사회주의를 경험하지 못하고 외동 자식으로 귀하게만 자란 그들을 중국인들은 '소황제 (小皇帝)' 또는 '소태양 (小太陽)'으로 애칭한다. 그러나 리레이와 이쭈가 가야 할 길은 이미 같을 수 없다.
자본주의가 성숙한 우리 사회 안에서도 '빈부 격차'나 '지니계수' 라는 어휘를 접하면 부자들은 시선을 돌리고 서민들은 싸늘하고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마련이다. 하물며 아직 이념 안에서만은 평등한 나라 중국에서야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원자바오 총리의 말처럼 지금 중국에서는 부의 분배가 최고의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이 안고 있는 빈부의 격차보다 더 큰 문제는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사회를 보는 관점의 공통 주파수 대역을 더 넓히기 위해 문화와 교육에 투자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자본주의에서 부의 양극화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하더라도 부자와 빈자의 관념 속에 있는 '자본'의 편차가 너무 벌어지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지금 중국의 시골길에 고급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 그들의 표정부터가 굳어진다. 우리 역시도 그런 계층갈등을 겪어 나왔지 않은가. 기자는 개인적으로 평등을 지향하는 중국이 자본의 팽창과 계층 간 화합을 조화시켜 새로운 이데올로기 사회를 건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3월 하순이지만 아직 중국 북방지역은 밤이면 영하 8도를 밑도는 한겨울이다. 문제는 요 며칠 전부터 중앙난방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리적으로 가장 위축되는 이 계절감이 바로 현 중국경제에서 느껴지는 양극화의 서늘함을 잘 말해주는 듯 하다.
이제 갓 사회주의 그늘을 벗어난 중국의 개미족들에겐 리레이의 용돈 이야기가 어떤 체감온도로 다가올 지, 그건 오직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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