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일화는 선거철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정치적 이벤트다. "연대냐 완주냐"의 기로에서 벌어지는 이 정치 드라마는 유권자의 주목을 끌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때론 결과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다시 불거진 이준석-김문수 단일화 논란은 오히려 우리 정치의 구조적 미성숙을 드러내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단일화는 표 계산의 기술일 수는 있어도, 정치의 본질은 아니다. 정치가 지향해야 할 것은 결국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선택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단일화 논의가 전략적 이해관계나 정권 재창출 혹은 생존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이는 유권자에 대한 신뢰 저하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단일화의 반복, 무엇이 문제인가
단일화는 단기적으로는 ‘승리’를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정당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정당정치를 약화시키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정당이란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정책 비전과 가치 체계를 유권자에게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는 조직이다. 하지만 단일화 논의가 거듭되면서 정당 고유의 철학보다는 "누가 이길 수 있느냐"만이 유권자 앞에 제시된다면, 정당정치는 그 자체로 신뢰를 잃는다.
이번 이준석 전 대표와 김문수 전 지사의 단일화 여부를 둘러싼 갈등 역시 그런 문제의 연장선이다. 양측 모두 분명한 정치적 입장과 노선을 갖고 있음에도, 그것이 아니라 ‘합산 가능성’이나 ‘표 결합력’이 주요 쟁점이 되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특히 젊은 유권자나 정치에 처음 입문하는 시민들에게 ‘정치란 이런 것이다’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단일화보다 중요한 정치의 신뢰
최근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단일화를 했을 때 ‘이기는 경우의 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화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이는 이념의 불일치, 지지층의 이탈, 신뢰 부족 등의 복합적인 요인 때문이다. 쉽게 말해 1+1이 반드시 2가 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1.5나 1.2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유권자들은 단순한 합산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치’만으로 정치를 재단하는 접근은 유권자를 도구화하는 셈이다. 정치적 연합이나 단일화가 실질적인 비전의 공유, 책임 있는 협의 없이 진행될 경우 유권자들은 오히려 냉소하게 된다. 결국 단일화의 효과보다, 신뢰의 손실이 더 큰 비용이 된다.
정치적 협박과 음모론의 자제 필요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특정 후보에 대한 음모론이나 흠집 내기가 언론과 온라인 공간을 통해 확산되곤 한다. 그러나 이를 정치 전략으로 삼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상대의 약점이나 과거 의혹을 무기로 협박하거나 압박하는 문화는 결코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들지 못한다.
정치인 개인이든 정당이든, 의혹이 있다면 사법 절차에 따라 철저히 검증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사안들을 정치공학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무례이며,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최근 제기된 일부 정치인의 재정 의혹, 정책 용역 관련 논란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진실은 수사기관이나 공공기구의 조사 결과를 통해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그것이 민주국가의 기본이며, 어느 한 개인의 정치적 생명을 넘는 공익의 가치가 걸린 문제다.
유권자는 ‘쇼’보다 ‘비전’을 본다
정치인은 결국 유권자 앞에서 평가받는다. 단일화 논쟁이든 후보 검증이든, 그것이 정당한 절차와 공개적 토론을 통해 이뤄질 때 유권자들은 그에 맞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이 유권자를 수동적인 ‘표’로만 간주하고 전략을 짜면, 결과는 늘 예측 불허로 돌아온다.
이제 우리 정치도 ‘비전과 신뢰’의 경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단일화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후보자들이 각자의 정책과 노선을 솔직하게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유권자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단일화, 즉 ‘정치적 통합’의 시작일 수 있다.
정치는 명분 싸움이다
정치는 결국 명분의 싸움이다. 설령 전략적으로 유리하더라도, 명분을 잃는 순간 정치는 설득력을 잃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유권자들은 후보 개인의 능력보다, 그 후보가 대표하고 있는 가치와 태도를 본다. 단일화 여부와 무관하게, 각 후보와 정당이 국민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어떻게 책임질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정치는 아직 성장통을 겪고 있다. 단일화라는 반복되는 이벤트에 기대기보다는,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성숙한 정치를 고민할 때다. 그것이 진정한 정치의 본질이며,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오래도록 지지받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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