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언덕 풀밭에 숨어있던 오이 찾는 즐거움
스크롤 이동 상태바
밭 언덕 풀밭에 숨어있던 오이 찾는 즐거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7월 제철 음식 ‘오이’(1)

 
   
  ^^^▲ <잘 익어 가고 있습니다. 어떤 오이가 맛있을까요? 쭉쭉 잘빠진 것요? 적당히 통통하고 조금 구부러진 듯한 오이가 맛있습니다.>
ⓒ 김규환^^^
 
 


한 여름 산길을 돌고 돌아 오리나 되는 먼 밭으로

산간 마을 뱀이 사르르 움직이는 듯 굽은 모양으로 산길 굽이굽이 돌아 집에서 오리(五里)를 더 가면 고구마 밭 옆에 논도 있고 밭도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지게를 지고 산엘 오르지만 도착해서 시냇물에 얼굴 적시며 세수 한번 하면 금새 식는다.

햇볕이야 따갑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 흐르던 땀도 식으니 해발 500m에 가까운 밭에서 일하는 건 여름에도 할 만 하다. 말이 밭이지 그게 산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화전(火田)으로 일군 논밭이라고는 하지만 멀어도 정도 껏 멀어야 되는 게 아닌가?

목화밭 주위에서 놀던 때

그곳에는 목화밭이 있었다. 봄에 심어서 가을에 꽃 한 개씩 따먹고 농사일 마치고서야 초겨울에 가서 면화를 거두던 그 먼 밭. 밭가에 옥수수가 빙 둘러서 띄엄띄엄 심어져 있었다. 산 쪽으로 호박, 오이, 동부콩 등 넝쿨이 각기 제 영역을 차지하고 살아간다.

학교 다니기 전에는 그냥 어른 따라나서 돕는 게 일이었다. 그러다 힘들면 폭포에 가서 맘껏 돌다와서 다시 하면 되었다. 이것저것 지게에 올려 주시면 지고 내려오면 그만이었다.

학교 다닌 후로는 여름 방학을 하면 날마다 따라 나선다. 놀러 가는 게 아니고 한 사람의 일꾼으로 가는 것이다. 논매고 밭 매며 밥도 끓이고 메기, 징거미, 가재, 다슬기 잡아 어죽(魚粥)도 끓인다. 같이 갔다가 단지 10분 일찍 내려올 뿐이었다.

 

 
   
  ^^^▲ <이런 오이를 심어서 넝쿨이 자라서 꽃이 피고 수정을 하여 열매를 맺어 세상에 선보입니다. 농작물이 자라는 거나 사람이 커 가는 거나 진배없습니다.>
ⓒ 김규환^^^
 
 


‘오이’가 ‘외’다

더운 여름 노란 아이 똥 같은 오이 꽃도 만발한다. 오이 꽃이 피면 오이냉국, '욋국'이 먹고 싶다. 오이를 한 글자로 하면 '외'가 되는데 어렸을 적엔 오이를 '외'라고만 불렀다.

“‘외’ 세 개만 따와라와~.” 하시며 손을 살짝 저어 말씀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선하다.
“엄마, 여기 풀숲에 ‘외’ 있어요.” 하던 말이 아들 솔강이 목소리를 들으니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외’도 박과 식물이라 호박과 마찬가지로 심을 때 퇴비를 듬뿍 넣어 주고 물을 잘 줘야 한다. 퇴비 등 거름기가 부족하거나 수분이 부족하면 한여름 더위에 지쳐 축 늘어진 내 그것과 닮아 잎사귀와 줄기도 그렇게 된다. 그러니 물과 거름은 필수적이다. 조건만 맞춰주면 거침없이 쑥쑥 자란다. 뱀 나올지 모르는 풀밭과 숲으로 마구 뻗어 나간다.

오이가 크는 걸 보면서 드는 여러 가지 반찬

노란 꽃이 필 때 ‘언제 저걸 따다 반찬 해 먹나?’하며 노심초사 크는 걸 걱정 했다. 그러다가도 사흘만 지나면 한 뼘이고, 두 뼘이고 자라 사람 즐겁게 해주는 재주를 지녔으니 대견했다. 꼭 아이들 크는 것 같다. 어린 나도 그 기쁨에 뙤약볕 아래서 오이를 따며, ‘좋다’ ‘오지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여러 개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면 실한 것을 볼 때나 자잘한 것을 봐도 기쁘다. 도톰하게 잘빠진 큰 것은 오이무침 만들어 먹을 생각, 오이지국 만들어 먹을 생각에 밭에서 먼저 침이 꼴딱꼴딱 넘어간다. 더 오래되어 쇠면 장아찌 넣어둘 마음이 앞선다. 늙은 오이 노각(老殼) 을 만나면 붉은 고추 썰어 넣고 무침 해 먹고 씨 받는 데까지 마음이 미친다.

 

 
   
  ^^^▲ <참 노란 오이꽃이 피었죠? 피자마자 암꽃에는 오이가 달립니다. 박과 호박도 마찬가지죠. 첫번에 선보일 때 잘 자라겠는가 보입니다.>
ⓒ 김규환^^^
 
 


작은 오이 따서 먹으면 주위가 온통 오이밭으로 보이는 착각에 빠져

오이 꽃 시들어 아직 탯줄이 남아 있는 듯한 작은 것은 따서 그 자리에서 그냥 베먹었다. 한 잎 두 잎 베어먹으며 풀 뽑고 베고 나뭇가지를 자른다. 혀를 쪼그라들게 하면서 입안을 상쾌하게 하는 마력을 지닌 오이 맛은 일품이다.

입안에 가득 고인 맛에 주위 밭을 온통 오이 밭으로 착각하게 하는 환각 현상까지 일으켰다. 오이 서너 개와 옥수수를 팍팍 꺾어 보자기에 싸서 돌아오던 날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산 정상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로 나머지 배를 채웠으면서도 결코 배고프지 않았다.

풀숲을 뒤져 오이를 발견하면 줄기 넝쿨이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히 따서 칡 잎에 살포시 감싼다. 겉에 까만 가시에 가까운 투실투실한 점이 많이 있는데 일단 따고 나면 부드러워 조그마한 힘에도 쉽게 상처받고 말아 눈물을 질질 흘린다. 그러니 조심스레 다스릴 수밖에 없다.

속시원함의 대명사 오이는 7월이 제철

예전에야 밭가에 호박 한 구덩이 오이 한 구덩이 번갈아 가며 두세 그루 씩 직파(直播)해서 심었다. 심어만 놓고 중간에 거름 한 번 더 해주면 여름 내내 즐겨 따서 먹는 최고의 음식이다. 오이는 속시원함의 대명사다.

움틔우고 무럭무럭 자라 초기 장마를 거쳐 7월 중순에 이르면 절정이다. 하지만 어디 이제 오이가 그런가? 사시사철 철모르고 나오는 터에 사람들은 세상이 편해졌다고 한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이 나빠지는 건 모르고. 못 먹는 게 없어서 즐겁다지만 정말 그럴까?

 

 
   
  ^^^▲ <오이 자라는 곳 옆에 수도 없이 꽃이 피었습니다. 이 농부는 오이 농사 잘 지었군요.>
ⓒ 김규환^^^
 
 


찬 성질 때문에 여름에 먹어야 몸에 이롭다

오이는 맥류(麥類)의 한가지인 보리와 함께 냉(冷)한 성질이 가득해 더위에 지친 몸을 식히고 탈진 직전에 있는 사람에게 수분을 보충하는 습성을 지녔다. 천성이 그런 것이다. 그게 자연의 순리다.

그러므로 겨울에 오이를 마구 먹는 것은 이미 차가워진 몸에 얼음을 더하는 것이니 뭐가 이롭겠는가. 이치가 그러한데 때를 가리지 않고 먹는 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이 좋은 오이도 여름에 많이 먹으면 배탈나기 십상이다.

여름에 먹는 오이는 안전한 건강식

장마가 끝난 7월 말에서 한 열흘 지나면 맛이 다소 떨어진다. 쨍쨍 내리쬐는 긴 해에 노출되어 가물어지면 외려 오이꼭지에 쓰디쓴 독성이 가득하다. 욕심내서 끝까지 먹다가는 그 쓰디쓴 맛에 입맛이 확 달아나고 닭 졸 듯 해롱해롱하던 정신마저 확 깨게 만든다.

생육 환경과 재배 방법에서만 보더라도 오이는 6월 하순에서 8월 하순까지가 적기다. 이 때는 특별히 온실을 만들 필요가 없다. 따라서 온실에서 자라지 않고 그냥 밭에서 자라므로 병충해에 약해질 염려가 적다. 그러니 농약을 덜 친다.

전반부에서 말했듯이 수분과 질소질 의존 정도는 다른 작물에 비교가 안되게 높다. 수분이 떨어지거나 질소 비료가 부족하면 순식간에 구부러지고 자라지도 않는다. 그러니 반대로 보면 그걸 막기 위해서 장마를 낀 제철이 아닌 바에는 농약과 화학비료, 물을 하루가 멀다하고 치게 된다.

결론으로 가장 안전하고 맛있는 오이를 먹으려면 제철을 지켜야 한다. 건강의 지름길은 제철 음식에 있다. 오이 많이 먹고 여름을 잘 나보자. 술에 채 썰어 넣어 조금 순하게 먹어보자. 싼 오이로 비싼 화장품 값 대신해 보자. 천연 화장품 아닌가?

 

 
   
  ^^^▲ <무쳐드리리까, 냉국만들어 드리리까? 싫다구요? 그럼 그냥 베어 먹으세요. 끝까지 드시지 마세요. 맛이 조금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제가 색다른 맛을 선보이겠습니다. 오이국을 한 번 끓여드리리다. 참 쫄깃쫄깃하고 전혀 다른 맛이 납니다. 쉰듯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나지요.>
ⓒ 김규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