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노인신문 전무이사의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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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인신문 전무이사의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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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대한 사랑과 정열, 병마와도 강하게 맞선다



새봄을 맞이하여 귀하의 건승하심을 기원합니다.

바쁘신 가운데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 고견과 성원의 서신을 보내주신데 대해 대통령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6공화국 정부가 출범한지 1년여 기간 중,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뜨거운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지난 시대의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자율과 개방의 참된 민주화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으며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어 냄으로서 우리민족의 위대함과 문화민족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한편, 북방정책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동구 여러 나라들과 교류를 확대해 나감과 함께 조국통일의 길도 한층 앞당길 수 있도록 그 여건을 성숙시켜나가고 있습니다....(중략)

귀하께서 그간 보내주신 조언과 격려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가정에 행운과 기쁨이 항상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 합니다. 1989, 3월 대통령 비서실장 홍성철



청와대에 국정전반에 대한 정책제시와 노인문제 등에 대한 충언을 하였던 엄주월 씨에게 보내온 청와대 답장내용이다.

1988년 8월16일에도 역시 홍 비서실장으로부터 선생님의 글을 대통령께 올려드렸으며 또한 관계비서관에게 적극 검토하여 정책입안에 반영토록 하라는 분부가 계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자주 좋은 말씀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성어린 서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가내 만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라는 답신을 받은바 있다.

엄주월(78)씨가 내놓는 편지복사 본이다. 대한노인신문을 펼치며 뇌출혈로 쓰러졌던 후유증으로 인해 아직 불편한 어투로 몇 년 만에 만난 당신누님의 아들들인 조카들에게 과거를 털어놓는다. 그러니까 생존하신 어머님의 형제 중 유일한 우리외숙부님이시다. 반가움에 말을 잇지 못하신다.

대전에서 육이오 때 외숙부는 의용군에 끌려갔다가 도망했다. 우리 집 다락에 숨어 있다가 후퇴하던 인민군에게 발각될 뻔했던 아찔한 이야기며. 우리 3형제와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많았던 외가의 재산이 사라진 얘기... 등 그러나 외숙의 언어는 겨우 알아들을 정도다. 고려대학교 법률학과를 1954년에 졸업했다. 육군정보학교를 나와 정보학교교수로 활동하다 일본어학원경영 등의 사업을 하다가 1990년 대한노인신문 전무로 입사하셨다고 했다.

대전에서 많은 활동을 하셔서 신문사로부터 상장도 받았다. 이제는 청주시 작은 빌라에 살면서 노후공통주택보수지원금을 시청으로부터 지원받아 열악한 주거개선사업도 하는 열정을 보였다. 뇌출혈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흐릿한 정신이면서도 보여준 열정은 대단하시다.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하신다. 백두산천지사진을 우리들에게 나눠 주시는 국가관이 남다른 분이시다. 초등학생인 나에게 시장에게 결재를 올리라고 소꿉장난을 하시던 대전 문화동의 복숭아밭 내가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이제는 미움도 사랑도 다 내려놓으시고 본인 건강만 챙겼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대한노인신문의 보이지 않는 힘이 곧 노인문제의 현실 해법이라고 강하게 말하는 외숙부의 어둔한 어투에서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을 느꼈다.

고령사회노인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80고령의 나이에도 집념을 불사르는 원로 언론인의 모습은 나에게 어느 유명한 언론인의모습보다 훌륭하고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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