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변명이다.
지난 4월30일 "대통령, 우리 대통령님!"을 첫 기사로 올린이래 66편째의 글이다. 달수로는 석달 일수로는 72일만이다. 휴일을 빼고 평균 1일 1 기사를 양산해 온 셈이다."기자가 쓰는 기사" 로서의 가치를 생각하고 쓴 글이라고 애시당초 여긴 것은 아니었다. 그럴 것이 이제껏 60평생 "기자"의 직함을 가진 적이 없었으니 기자로 글 쓰는 일에 대한 개념이 분명했을리 없었다.
내노라하는 기자들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을 그저 구경이나 해 온 주제다.
원래가 팔방미인적인 성품인데다 역마살이 낀 여행가로서의 기질, 공부하는 학습자로서의 존심, 세상을 달관한 듯한 경세가로서의 억지, 문학, 철학, 사상, 종교, 음악, 액터로서의 낌새, 정치, 행정가로서의 몽상, 이런 것들에 끼어 글도 쓰고 노래 부르고, 잘난체하며 짓고 까불어 온 터다.
엊그제 닥터,김이 이르길 "너희들이 IOC를 어찌 알아?" 정도는 아니더라도 "너희가 박기자를 어찌 알아? 꼭 눈에 띄게 대서특필 된 기자들만 폼잡는다더냐?"란 속내를 지닌채, 좌고우면해 온 것도 사실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며, 아는 것에 대한 앎 또한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지적 모순을 들먹이면서, 세상은 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라 치부 하기도 했다. 그러다 기회 포착에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녀석이람 출세를 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맹추는 민초의 그늘에 가려 유성처럼 사라진다 해서 하나도 서러워 할 것이 아니란 세상살이로 여기기도 했다.
전장에 나간 병사의 죽음을 통해 역사는 영웅을 탄생시키고, 헤아릴 수 없는 백성의 눈물어린 애환을 넘고넘어 정치가는 현실의 공간을 쥐락펴락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글의 법칙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왈가왈부하는 것이야말로 약자의 허울어린 눈물이라 갈파하는 만용을 발휘했다. 종교가 발전할수록 범죄는 양산되는 것을 보면서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은 지 오래다.
다양한 신이 공존하는 것이 세계이기 때문이다. 땅끝까지 자기내 종교만을 전파하고야 말겠다는 종교가나, 유일신이 태초에 그렇게외쳤다고 우격다짐하는 예언가를 두고. 바로 그것이, 그런 발상이야말로 인류의 비극을 반복시켜 온 근원적인 요인이라고 거품을 물기는 또 몇번이었을까?
시민기자란 무엇인가?
시민이 곧 기자라는 뜻이다. 시민이 기사쓰기를 직업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된다. 그 대신 읽는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는 사람이다. 시민이 글을 쓴다고 해서 다 기자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필요충분 조건인 그 멧세지의 속알엔 바이탈리티가 있어야 하고, 오리지날해야하며, 스페셜해야 되고 퍼스넬리티를 갖춰야 할 것이다. 시민이면 누구나 시민기자일리가 없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시민기자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생각, 그것이 나의 저변을 타고 올라와 손끝에서 춤 추며 표기된다는 그 일이 즐거워 취생시킨다는 사실 이외에 달리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오감을 통하여 들어오는 사실을 글자로 나타낸다는 그일이 하고싶어서 오금 쑤셔하는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지금은 달리 몰두할 일도 마땅치 않다는 제약도 있다. 문법을 안다고 할 수가 없고 문장력 또한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한 글자를 새기고는 손을 씻고, 다시 또 한글자를 새기고는 손을 씼으며 혼을 새겼다는 "팔만대장경"의 장인정신이 살아있을리 만무다.
그렇다. 그러니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올턱이 없다. 적당적당히 칸수를 채우면 다 기사가 되는 줄 착각하고도 그것을 모르고 지낸 청맹과니다. 리플이 생기기를 바란 것 자체가 허황된 꿈인 것을, 혹시나 하고 몇번이고 클릭해 보곤 역시나 하며 부끄러워 돌아선 기자, 그 행태를 탐한 몰염치를 뉘라서 기자라 할 것인가? 뉴스타운의 일원이라 감히 내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아서라, 변명이 다 무엇이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한 시름 변명을 묻고 이백을 볼러 놀아나 보자. 도대체 무엇을 위한 기자의 변명인가? 변명 나부랭이 집어치고 훨훨 자유천지 에뜨랑제 되어 떠나는 것이 그 아니 좋겠느냐? 가나다를 불러 조용히 벗을 삼고.
가슴에 맺힌 얼씨 예 불러 문 여나니
나직히 숨결 골라 신명젼神明前 향 사르고
다소곳 몸맘 조아려 바치노라 이 한 곡
라일락 꽃 향기를 온 시공에 휘어 감고
마-파람 잠을 깨워 청운을 부르자니
바위 샘 산등성 돌아 해와 달이 맴돈다
사랑을 말로하랴 사위四圍는 정글인데
아슴한 눈目길로야 가위 질에 숭숭 보褓
자유여 깃발 처 들고 휘날려라 청춘靑春賦
차돌에 바람 들면 석돌보다 못한 것을
카랑한 목청으로 얼 깨우곤 되 나서서
타령 굿 천지에 가득 토해낸다 혼불 굿
파격을 드날릴제 품새가 따로 없다
하늘은 빙긋 웃고 말이 없네 예 오늘
가나다 다시 재우쳐 모레글피 꼽는다
한바탕 봄 꿈이리 엉킨 삶 티끌 자욱
그 한 꿈 부름이여 부질없다 하려나
시공時空의 강江가에 앉아 그를 저어 하노라
청춘의 한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랴
때 흐름 속절없이 앞을 지쳐 나갈 뿐
스러진 삶 일구나니 인터넷은 뭐랄까
꿈 속에 있음이여 꿈인 줄 모름 이여
흐름이 있음이여 흐름 길 모름 이여
언제나 한 깨움 얻어 꿈 흐름 밖 나려나
땅 끝에 넘나드는 작은 앎이 있다 한들
하늘 북 쳐 울리는 각성覺醒이 크다 한들
한 삶에 그 못 깨치면 그 뉘 산다 이르리
저문 해 등에메고 홀연忽然히 돌아 가는
먼지 속 어린인 양 어지러이 헤매 돌다
비로소 놀란 가슴에 한 줌 흙이 되는 삶
그 대는 저 물과 달 안다고 하겠는가
물 흐름 이 같아도 다한 적 여태 없고
달 또한 저와 같아서 줌도 큼도 없음을
바뀌고 달라짐이 무시로 섯 돌기로
백년 사 어이 한갓 덧없다 한탄恨歎하리
돌이켜 짚어 보는 뜻 한 삶이리 이 또한
새 숨결 한 가슴에 낭낭히 스며 나고
때 맞춘 식도락食道樂에 감칠 맛 핑글 돈다
입거니 벗을 것 하니 꿈 나라가 좋아라
이야기 주고받지 책 읽고 노래 듣지
땀 흘려 거둔 열매 고루 나눌 터밭 가에
보듬을 식솔이 가득 그 더욱이 좋아라
이웃에게 가는 정情 생동生動이라 유연柔軟일래
은은隱隱히 돌아들어 다시 피곤 진다 해도
생생生生히 보일 수 있음 그것 가이 좋아라
좋~을 씨구 옹 헤야~ 옹 헤야 좋~을 씨구~
무시로 뽑아 든 생각의 청진기聽診器로
복사판複寫版 이미지를 걸러 내 살피자니
고여 든 홍진紅塵 자욱이 겹겹첩첩 좋아라
무채색無彩色 캠퍼스에 얼룩배기 그림이든
무곡주無曲調 가락이든 처~억- 척 그려 내어
돌려볼 수 있는 정경情景 얼씨구나 좋아라
한사코 목청 높여 노래 불러 춤추고
때로는 유장悠長한 필드 누벼 구웃-샷
바람결 창공蒼空 머~얼~리 둥실 떠서 좋아라
좋~을 씨구 옹 헤야- 옹 헤야 좋~을 씨구-
어떻든 뉘 뭐라든 바로 지금 시작하곤
천하 유람遊覽 헤쳐 모여 떠돌아 든다 해도
무시무종無始無終 가 없는 윤회輪廻 거침없어 좋아라
가는 곳 줄줄 연줄 꿈 바라 사는 이 줄
혹여 엇나간들 신원伸寃이 다 무엇이뇨
다잡아 훌훌히 당겨 너털웃음 좋아라
보여서 보일 임 말해서 솔깃할 님
수수愁愁롬 없이 웃고 울어 줄 사람이여
그보다 더할 이 없으니 그럼그럼 좋아라
고락苦樂의 챗 바퀴를 어디 한번 불러보자.
아-더-메-치 ( 아니꼬움, 더러움, 메스꺼움, 치사함 )
한恨타령이 피멍으로 소쿨져도
밑 바닥 치고 나서면 오냐오냐 그립다
그래 모습 살펴보자 고생苦生안에 숨은 고苦를
찡그린 초로상草露相이 얼~켜 들고 설켰어라
녹피鹿皮에 갈왈曰일세는 너를 일러 부른 말
질시- 멸시 -방황에다 실의- 갈등- 절망일제
가난- 질병- 고뇌- 타박, 불화- 치욕- 회의로다
고독- 환멸- 울적이면, 실패 -파탄- 등창 탄다
울분- 고통- 회한일고, -불평- 불만-불행 난다
고난- 참담- 슬픔- 애통, 궁벽 -낙심- 풍파 치면,
역경- 원한- 허무투정에 참담억장 무너진다
에 해~ 라 상사 뒤야 네 몰골이 애통하다.
제아무리 신神이 내린 선물이라 그러지만
추한 얼굴 그 뿐이람 어디 인생 살겠느냐,
어서 저리 물~렀거라. 새님 양지 나가신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열린 하늘 햇볕이 화사로다.
만화방창萬化方暢 좋을 시고 어서 오라 고운 얼굴
볼수록 득의만면得意滿面 기세 마냥 양양揚揚이다
용서-화해-기쁨일면 환희- 희망- 영광일세,
건강- 서기瑞氣- 만당이면 낭만- 기품- 자랑이라,
신우神佑- 보람- 감동- 성공, 감격- 행복- 자유 본다,
어~얼 씨구 저~얼 씨구야~ 지화자 좋~을 씨구
평화- 박애- 은혜 세상, 사랑-협동- 자비 심어,
질서- 정의- 진리 닦고, 풍요만개- 만족 얻세
봉사- 나눔- 친화하면, 대화- 융성- 천당 있다
,
창조- 베품-화려 누리, 경이- 믿음 -흔쾌로다,
온화- 긍지- 복락 누려, 온고지신- 광명정대
감사로다 우리 내님 어~화둥둥 얼~씨구나
무릇 한 삶 물길 가에 고즈넉이 자리한 뜻
다듬고 또 닦아내 앞 뒤 좌우 차고 일어
아나바다(아낌, 나눔, 바꿈, 다시 씀) 섬뻑베어 늘 구비 펴오리
나서면 그대와 나 한 울품에 우리님
홀로서 둘세넷다 떠돌다 얼싸안고
종당從當은 뉘 편짝엔들 들을레라 평형심平衡心
애오라지 생령生靈 빛 무궁無窮한 저~ 강천江天에
청춘 얼 일편一片기상 일떠 올려 환호할제
하늘 골 큰 한 우레가 심전心田 띠를 흔든다
좋~을 씨구 옹 헤야 옹 헤야- 좋~을 씨구
얼씨구 좋~을 씨구 저~얼 씨구 좋~을 씨구
둥그 데 덩~ 실 좋~을 씨구
어께 춤이 절로 난다
어화- 두웅~둥 좋~을씨구 지화자 둥~실 좋~을씨구
에헤라~ 좋~을 씨구 천년만년 좋~을 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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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라, 변명이 다 무엇이냐? 이하에서의 사설만 없었다면 그나마 좋은 기사가 되지 않았을까싶네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마음을 얻는다는 면에서요. 마지막 사설은 이 기사에서는 그야말로 사족입니다.
기사는 자기 배설을 위한 것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비록 칼럼이라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