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진규(趙珍奎)지사(1904~1941년)는 1904년 9월 15일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서 태어났다. 아들은 조용태 이고, 손자는 조금세, 조민제, 조찬제, 조신제 이다. 증손자는 조홍래 이다.
함안지역은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일어난 지역이다. 1919년 ‘함안읍 만세운동’, ‘군북시장 만세운동’ 등 독립만세 시위가 일어났고 1920년대 에는 ‘함안 형평사’ 신간회 함안지회 등을 통한 항일 사회문화 활동이 활발하였다. 또한 농민조합 등을 통한 반일 활동도 빈번하였다. 조진규 선생은 16세의 나이로 함안읍 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38세로 작고 할 때 까지 다양한 항일 투쟁을 전개 하였다.
1919년 3월19일 함안읍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시위군중과 함께 함안 경찰 주재소 및 함안 등기소 등에 돌을 던지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 후에 조선일보 함안지국장, 동아일보 기자와 지국장으로 활동하면서 함안형평사 창립 임시 의장, 함안 소작인 조합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일제의 착취와 탄압을 막아내고 주민계도에 앞장 섰다.
1924년에는 청년단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벌렸고, 1926년 ‘6·10 만세사건’때는 예비검속을 당하였다.
1927년에는 상해 독립단에서 경남대표로 선임되어 안재홍 지사와 독립을 논의 하였고, 이석근, 조한휘 와 같이 신간회 함안지회를 결성하고, 또한 농민조합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하다가 피검 되었다.
1931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당에 입당하고 1935년에 나진, 웅기 등지에서 노동쟁의를 주도한 혐의로 신경감옥에 구금되었다가 귀국하였으나 옥고와 울분이 병이 되어 1941년 8월10일에 작고하니 향년 38세이다.
조진규 지사는 2018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을 수여한다. 묘지는 칠원 무릉 선영 아래에 있고, 함안군민 들이 뜻을 모아 추모비 건립 위원회가 결성되어 1981년 4월 함안면 괴산리 고향입구에 ‘퇴우 조진규 지사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장손인 조금세 회장은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 및 운영위원, 대통령 자문 민주평통위원, 한국교총 부회장, 전국 시도 교총회장협의회 회장, 부산교총회장, 부산 사립교장회 회장, 동아고 교장 등을 역임 하였고 현재 학교바로세우기 전국연합 회장,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 부산공동 대표 등을 맡아 교육발전을 위해 NGO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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