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규 선생은 1890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황문옥(黃文玉)과 허경순(許敬順)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7월 밀양의 노동야학에서 체조교사를 역임한 선생은 경술국치 후 일합사(一合社)를 결성하고 광복단(光復團)과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등 국내 비밀결사단체에서 활동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조직이 와해되자 선생은 중국 지린(吉林)으로 망명해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와 조선독립군정사(朝鮮獨立軍政司)를 결성하고 재무책임자로 활동했다.
1919년 2월에는 독립운동가 39명 중 하나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며 독립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알렸다.
육탄혈전으로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고자 1919년 11월 지린에서 의열단(義烈團)을 결성한 선생은 국내의 일제식민통치기관 총공격을 계획하고 1919년 12월 중순 경 먼저 국내로 들어와 거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거사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1920년 6월 일경에 붙잡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1926년 4월 옥고를 마친 후 선생은 청년운동 등 밀양지역 사회운동을 주도하였고1927년 12월에는 신간회 밀양지회를 설립하고 지회장을 역임했다.
1929년에는 신간회 중앙본부 서기장 겸 서무부장으로도 활동하였다. 국내외를 무대로 다양한 방략의 독립운동을 전개한 선생은 지병으로 1931년 9월 자택에서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독립기념관은 황상규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월 한 달 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의열단 결성장소 사진 등 관련자료 12점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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