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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멀리 떠나요.”
훈이는 이렇게 대답하기는 했으나 다음 일이 걱정이었다. 여행을 떠나자면 백만 원 정도는 들어야 한다. 차를 빌려야 했고 호텔 잠을 자야 하기 때문이다. 석호 생각 같아서야 관광버스를 타고 아무데서나 잠을 자고 싶었지만 연지이가 그렇게는 가지 않을 것이 뻔했다. 모처럼 떠나는 여행을 그렇게는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돈을 구하는 방법은 우선 카드깡을 하는 길 밖에는 없었다. 훈이는 지갑 속에서 몇 장의 카드를 꺼내 바닥에 놓고 일일이 한도금액을 체크하고 있었다. 현금 서비스는 모두 받았고 한도 금액도 이미 초과하고 있었다. 훈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잠옷 바람으로 밖을 나갔다. 그리고는 벼룩시장을 움켜쥐고 방으로 들어왔다.
‘주민등록이나, 운전면허증만 있어도 대출’ 이라는 광고에 눈이 쏠렸다. 수화기를 집어 들고 물었다.
“여보세요. 돈이 필요해서 전화했는데요. 주민등록이나 운전면허증만 있어도 대출해 줍니까?”
“네, 인감증명 세 통과 주민등록 등본 세 통만 가져오시면 됩니다.”
훈이의 입가에는 웃음이 돌기 시작했다. ‘공연히 돈 걱정했잖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니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훈이의 아내가 일을 다녀왔다. 남편의 벌이가 시원치 않아 맞벌이를 하겠다며 친구가 하고 있는 식당에 나가고 있었다. 해장국을 끓이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야 했고, 밤 10시나 넘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식당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홀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이라서 집에 들어올 때는 종아리가 퉁퉁 부어올랐다.
아침에 일찍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기 때문에 남편이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를 알 리가 없었다. 집에 오면 피곤해서 떨어지고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밥을 해놓고 일터로 나갔다. 이렇게 일을 나간 지는 몇 년이 되었다.
한 달에 겨우 두 번 밖에 쉬지 못했다. 아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서랍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한 달에 백여만 원 받는 돈을 일부는 살림에 보태고 착실히 저금해둔 통장을 펼쳐보고는 남편에게 쏴 부쳤다.
“여보, 이 돈 파서 어디 썼어요?”
“아. 그 돈 참 잊어버렸네. 친구 보증 섰다가 봉급에 차압 붙인다고 해서.”
남편의 말이라면 열 마디 중에 단 한마디도 믿질 않았다. 남편은 총각 때부터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시집온 지 일 년이 되었을 때 같이 외식을 갔다가 난리가 났다. 아마 남편이 처녀를 건드렸는데 자취를 감추었다가 10여년 만에 만났던 모양이다.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장가를 갔어.”
하고 달려들었다. 남편이 멱살을 잡혀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보따리를 쌌다. 친정에 돌아와서 이혼 수속을 밟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찾아와 잘못했다며 무릎을 꿇고 빌어 억지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뒤로도 심심치 않게 집으로 여자들의 전화가 걸려와 싸움은 그치질 않았다. 아이들을 낳고 난 다음 남편의 행동은 달랐다. 아이까지 낳은 여편네가 보따리 싸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지 외박이 잦았지만 부인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말겠지 하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돈 어디 썼어. 말 한마디 하지도 않고 어디에 썼느냐니까?”
아내의 눈초리는 무섭게 빛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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