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와 연극이 만났을 때
스크롤 이동 상태바
판소리와 연극이 만났을 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효된 소리와 울림의 정서

^^^▲ 아름다운 어울림을 시도하고 있는 서명희 선생님과 연극배우
ⓒ 뉴스타운^^^

우리 민족에게 소리란, 눈과 귀가 울리고 가슴이 떨리도록 흔들어놓을 수 있는 '울림'이다.

‘한’의 민족으로 알려진 우리에게 ‘한’은 단지 서러움이나 비애의 의미가 아니다. ‘한’스러운 곡조의 타령이나 민요에 사설과 극적인 요소를 붙인 판소리는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한’의 정서와 ‘흥’의 정서를 동시에 전하고 있다. 한반도의 땅에서 살아온 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떨림의 소리를 만나러 다음카페 "판소리와 연극의 만남(http://cafe.daum.net/vksthfl)"을 만났다.

카페 "판소리와 연극의 만남"은 국악인 서명희와 원형무대라는 연극극단의 배우들의 만남에서 출발했다. 극단의 공연을 통해 만난 연극배우와 서명희의 만남은 판소리와 연극을 '극'이라는 연장선에서 만나게 했다.

이렇게 시작된 만남으로 서명희와 연극 배우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수업을 통해 판소리 수업을 가진다. 얼핏 생각하면 현대적인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구지 고전을 배우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배우라는 선입견에 대해 원형무대 배우들은 "단지 연극배우이기 때문에 이들이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극이 아니었더라도 취미 생활로써도 배웠을 것이다."라고 시원스럽게 답변했다.

이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는 서명희 선생님 역시 이들을 통해 판소리에 연극의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공연을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판소리에도 극적인 요소가 있어서 그것을 더욱 부각시킨 공연을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다. 이러한 만남의 시도로 이들은 일요일마다 모여서 소리와 민요, 타령 등을 습득하며 새로운 장르의 창작을 꾀하고 있는 것.

특히 요즘은 판소리가 어려운 장르로만 여겨지고 있지 않다. 매해마다 열리는 “또랑광대”는 대중적인 판소리로 유명하다. 스타 크래프트, 고스톱와 같은 소재로 판소리를 창작해서 대중들에게 발표해 실제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소리꾼도 있다. 이렇듯 과감한 실험정신과 시도는 일반인들에게 어려운 장르로만 여겨진 판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원래 판소리는 옛부터 우리 민족들의 가슴에 있는 애환과 설움을 달래주고 함께 웃어주는 소리였다. 우리의 가슴 깊숙히 있는 소리를 끄집어내는 것이 소리꾼이라면, 그들의 소리에 장단을 실어주는 것은 서민들이다. 이러한 '어울림'이 바로 판소리가 종합예술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판소리는 일반인들에게 길고 어려운 장르로만 여겨졌다. 때문에 이들은 또랑광대와 같이 대중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시도를 반갑게 여기고 있다.

어떤 예술이든 대중화는 중요하며, 우리도 판소리를 몰랐을 때는 어렵게만 느껴졌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접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또랑광대”제라던가 인사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젊은 학생들이 하는 창작 판소리 역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이러한 시도는 끊이지 않고 계속돼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다고 생각해 선뜻 다가가기 힘든 판소리라는 예술을 문화로 즐기게 한 이들이야말로 판소리의 고유한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아름다운 어울림을 시도하고 있는 서명희 선생님과 연극배우
ⓒ 뉴스타운^^^^^^
이 밖에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리에 대한 선입견은 굉장히 많다. 사실 소리는 흥부가나 춘향가와 같은 고전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넓은 의미로 소리라는 것 자체를 보았을 때는 민요나 타령이 해당되므로 더욱 그렇다.

즉, 예전에 소리라는 것 자체는 특정 인물이 부른 것이 아니였다. 시장이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벌어졌던 소리판은 우리 민족들이 읊조리던 노래가 바로 오늘날의 소리이다.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불렀던 소리들이 오늘날 체계화돼 판소리가 되었을 뿐, 판소리는 '서민들의 소리'이다.

때문에 이들은 소리란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생활이나 대중의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사실 소리는 우리에게 낯설고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이올린이나 외국의 클래식을 두려워해도 판소리는 단지 우리 감정의 표출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판소리는 예전부터 우리가 가보지 못한, 감춰진 곳에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소리의 가장 중요함은 감정의 표출이다. 감춰진 곳에서 드러내는 판소리의 감정은 그것의 기본이며, 누구나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교 자체는 어려울 수 있어서 어설프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이 이끄는 대로 충실하게 표출한다면 판소리에 다가서는 것은 어렵지만은 아닌 일이다.

국악인 서명희는 발효된 음식처럼 "소리는 발효가 되어야 맛이 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배우는 학생들은 "소리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소리로 그림을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공부하는 과정"이라 했다.

모든 것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소박하게 말하는 이들은 ‘모든 걸 내뱉어내야 하는’ 소리의 과정과 열정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판소리의 대중화나 모두가 판소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지금 소리를 통해 그 과정을 배워나가고 있듯이, 소리를 몰랐던 이들 또한 이들과 함께 감정을 표출하는 법을 알게 되길 바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이 처음 느꼈던 떨림을 함께 공유하는 것. 그것은 처음 우리 민족이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기 시작했을 때, 그 울림을 발산했을 때 느껴졌던 희노애락과 일치하는, 우리의 고유한 정서다.

많은 사람들이 서양의 전통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어떤 이들은 우리 소리의 울림에 귀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아리랑과 같은 민요나 타령에서 끝없이 계속되는 우리의 한의 정서를 탓한다.

설움과 비애의 정서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가 아니라 문화, 예술이다. 한스러움을 흥하게 환원시켜 노래로 부르는 우리 민족의 정서다.

우리가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음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지켜야할 전통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리는 분명 옛민족과 현재의 선을 잇고 있는 우리가 간직한 고유의 메시지이며, 눈과 귀를 떨리게 하는 떨림이며, 가슴을 뛰게 하는 울림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