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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에서 방영중인 <해신>의 주인공 장보고 역할을 맡은 최수종씨 ⓒ 연합뉴스 | ||
어제 해상왕 장보고의 일대기를 그린 <해신>이 방영되었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장보고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보았는데, 왜곡된 내용이 몇 가지 있어서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장보고의 출생지이다. 드라마에서는 장보고가 전남 완도(청해진)라고 기술되어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해도인(海島人-섬 사람)이라고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그가 청해진을 설치했다고 그가 청해 출신이라고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리고 장보고가 당나라로 갈려고 할때,친구들이 따라가겠다고 하자, 장보고가 절벽 위로 애들 데려가 뛰어내리면 데려가겠다고 하자, 다들 주저하는데, 정년이 선뜻 뛰어내렸는데, 장보고가 구해주었다는 드라마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는 틀리다.
삼국사기 <장보고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 年復能沒海底 行五十里不咽1)"
(정년은 바다 속 50리를 헤엄쳐도 숨이 차지 않았다")
이런 기록을 보았을때 과연 정년이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죽기 직전까지 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기록일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드라마에는 그야말로 외딴 섬에 지나지 않는 청해진에서 당나라 비단이나 당나라 벼루같은 값비싼 물건들이 팔리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진골 귀족이나 왕실에서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이런 값비싼 것을 귀족도 아닌 섬 사람들이 사서 사용한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지적할 것은 염장의 출신이다. 염장이 진짜로 해적 출신이었다면 장보고가 그를 믿고 술을 대작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八年 春 淸海弓福 怨王不納女 據鎭叛 朝廷將討之 則恐有不測之患 將置之 則罪不可赦 憂慮不知所圖 武州人閻長者 以勇壯聞於時 來告曰 “朝廷幸聽臣 臣不煩一卒 持空拳 以斬弓福以獻” 王從之 閻長佯叛國 投淸海 弓福愛壯士 無所猜疑 引爲上客 與之飮極歡 及其醉 奪弓福劒斬訖 召其衆說之 伏不敢動"
(해석- 8년(846) 봄에 청해진 궁복이, 왕이 자기의 딸을 맞아들이지 않은 것을 원망하여 청해진을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조정에서는 장차 그를 토벌하자니 뜻하지 않을 우환이 있을까 두렵고 그냥 방치해 두자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었으므로, 근심하고 염려하여 어떻게 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무주(武州) 사람 염장(閻長)은 용감하고 굳세기로 당시에 소문이 나 있었는데, [그가] 와서 아뢰었다. “조정에서 다행히 저의 말을 들어 준다면, 저는 한 명의 병졸도 수고롭게 하지 않고 맨주먹을 가지고서 궁복의 목을 베어 바치겠습니다.” 왕이 그에 따랐다. 염장은 거짓으로 나라를 배반한 것처럼 꾸며 청해진에 투항했는데, 궁복은 장사(壯士)를 아꼈으므로 의심하지 않고 불러들여 높은 손님으로 삼고 그와 더불어 술을 마시면서 매우 즐거워하였다. 궁복이 술에 취하자 [염장이] 궁복의 칼을 빼앗아 목을 벤 후, 그 무리들을 불러 달래니 엎드려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인용자료:디지털한국학)
장보고가 반란을 일으켰어도 신라 조정에서 감히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염장이 자신만만하게 제거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은 장보고가 염장을 믿었다는 증거가 된다.
물론 사극에는 허구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당연하나, 그 사극은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일 뿐이다. 역사가 없는 사극은 사극으로써 존재가치가 없으며, 그것을 사극으로 인정할 수 없는 법이다. 역사적인 고증을 하면서 재미있고, 유익한 드라마를 만든다면 태조왕건때 누렸던 전성기를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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