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우리 궁궐 이야기 <창덕궁3>
스크롤 이동 상태바
역사속의 우리 궁궐 이야기 <창덕궁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궁궐의 기본적인 개념과 그 이해 (하) - 학술 마을지기 순천님

^^^▲ 국왕의 침전으로 이용되던 경복궁의 강녕전. 일제때 헐렸다가 1995년에 복원됨^^^

3. 침전 (寢殿) (= 내전 (內殿))

임금이 항상 익선관에 곤룡포 차림으로 편전에만 머무를 수는 없었습니다. 임금도 엄연히 한 사람이기에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생활은 해야 할 공간이 있어야 했고, 그래서 그렇게 마련된 임금의 기본적 생활 공간이 바로 침전, 혹은 내전이라 불리우는 곳이었습니다.

임금의 침수 (잠), 수라 (식사)를 비롯한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이 신임하는 최 측근을 불러놓고 주요 현안들에 대해 깊숙하게 의논을 벌이던 곳이 바로 침전이기도 했습니다.

침전은 임금과 임금의 배우자인 왕비의 공간이며, 임금이 공식적인 업무를 위해 편전에 나가게 되면 왕비의 공적인 공간으로 바뀌게 됩니다. 왕비는 임금의 후궁을 비롯한 내명부를 관장해야 했던 까닭에 이곳 내전을 공식적인 공간 겸 사적인 공간으로 이용하여 내명부의 기강을 다스리고 사적으로는 남편이자 군왕인 임금을 내조하는 일까지 도맡았던 것입니다.

물론 임금과 왕비는 함께 잠을 자지 못하고 별도의 공간에서 잠을 잡니다. 임금은 동온돌, 왕비는 서온돌인데 정 함께 자게 될 경우에는 풍수상 길한 날을 골라 함께 자리를 펴게 됩니다.

또한 침전은 대부분 용마루를 얹지 않습니다. 임금을 상징하는 것이 용이고 용이 용을 짊어지지 않는다는 까닭에 용마루를 얹지 않지만, 이 이야기 또한 분명하지 않습니다. 현재 경복궁의 강녕전, 교태전을 비롯해서 창덕궁의 대조전, 그리고 창경궁의 통명전 등이 이러한 공간으로 쓰이던 대표적인 전각들인 셈이죠.

^^^▲ 지금은 헐리고 없는 창덕궁의 동궁 건물인 중희당. 19세기 동궐도의 모습^^^

4. 동궁(東宮) 및 대비전 (大妃殿)

임금을 흔히 만인의 우두머리에 비유합니다. 이렇게 중요시 된 임금도 세상을 뜨게 되면 그 뒤를 왕의 아들인 세자가 계승하게 되는데, 차기 왕이 될 세자가 머무를 공간이 궐 내에 있어야 했고 그 공간은 임금이 있는 동쪽에 마련되었습니다.

세자를 동궁, 혹은 춘궁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다음 보위를 계승할 세자의 위치가 동쪽, 즉 현 왕의 뒤를 이어(해가 서쪽으로 짐을 비유) 새롭게 떠오르는 해임을 상징하는 동시에 봄이 찾아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때문에 비유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자가 머물 공간으로는 세자가 공부하는 장소와 세자 내외가 머물며 생활하던 공간이 있으며 세자와 관련한 시강원 이라든지 익위사등 부속 관청들도 모두 동궁에 속해 있었습니다.

동궁으로는 경복궁의 자선당과 비현각, 창덕궁의 중희당, 그리고 창경궁의 시민당 등이 여기에 해당되던 건물들이었습니다. 다만 중희당과 시민당은 모두 파괴되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 세자만을 위한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왕실의 웃어른을 모시기 위한 공간도 궁궐내에 별도로 마련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대비전이었고, 대비들은 이곳에 머물며 임금 내외를 비롯한 왕실 인사들의 문안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또 왕위를 물러난 왕을 위해 별도의 궁이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초기에 태조를 위해 정종 - 태종이 각각 궁궐을 짓고 덕수궁이라 하였고, 또 태종을 위해 세종이 궁궐을 지어 수강궁이라 하였습니다. 또 궁궐을 지은 것은 아니지만 고종을 위해 순종이 경운궁 이라는 이름 대신 부왕의 만수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앞서 나온 덕수궁이라는 이름을 올렸는데, 지금 경운궁이 덕수궁이라 이름 붙여진 것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따라서 덕수궁이라는 표현은 올바른 명칭이 아님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성종때에는 살아 계시는 세 분의 대비를 위해 수강궁 옛 자리에 궁궐을 크게 지어 지금의 창경궁을 세웠는데, 수강궁 및 덕수궁을 건립한 것이나 창경궁을 세운 것 모두 살아 계시는 웃어른들에 대한 공경이자 지극한 효심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밖에 궁을 짓지 못할 경우 특별히 대비를 위한 공간을 짓게 되는데, 현종때 창덕궁에 건립된 집상전 (현재 헐리고 없음) 이라든지, 정조가 모후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혹은 고종때 대원군이 신정 대비 조씨를 위해 각각 자경전을 건립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습니다. 다만 자경전은 살아계시는 모친, 혹은 조모에 대한 공경의 상징이라는 점을 알아 두실 필요가 있겠습니다.

말이 좀 길어졌나요? 궁궐의 기본적 이야기를 하는데도 밑도 끝도 없이 관련된 이야기만 계속되네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죠.

^^^▲ 왕실 가족들이 주로 이용하던 후원의 일부분. 창덕궁 후원의 주합루와 어수문^^^

5. 기타 - 후원 및 부속시설, 궐내각사

이렇듯 궁궐에는 왕실의 가족들이 머물러야 할 공간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후궁들의 처소라든지,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대장금>에 등장하는 나인들이나 상궁, 혹은 내시(환관) 등과 같이 왕실 가족들의 시중을 받드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공간도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왕실의 권위를 강조하고자 역대 선왕들의 어진(초상화)를 모시고 제를 지내는 진전(선원전), 왕실의 초상 (국장)을 모시기 위해 별도로 마련된 혼전이 있어야 했고, 왕실의 가족들이 바쁜 여가를 한가로이 보낼 수 있도록 궁궐 뒷편 산림 속에 정자를 조영하여 후원을 조성하기도 하였는데, 현재 청와대 자리로 쓰이고 있는 경복궁의 후원이나 창덕궁 및 창경궁에서 공동으로 활용하던 후원이 모두 그런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또 궁궐은 왕실과 관련된 사람들만 머물렀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때에 따라 조정 신하들이 임금을 찾아 뵙고 나랏일을 논의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각 관청의 신하들이 머물며 업무를 돌보던 공간도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마련된 공간이 궐내 각사라 부르는 여러 관청들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eP 2004-11-24 12:03:51
창덕궁#이고시오 창경궁#이고시오 역사의 현장을 지도에서 확인하려면
등록되어 있는 eP를 마우스로 클릭하세요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