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藝謨, 다시 '口舌'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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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藝謨, 다시 '口舌'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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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영화 여배우 '못생겼다'비난받아

^^^▲ 산사수의 연정 주연배우 징추(靜秋)세련미는 없으나 스토리에 어울리는 매력있는 마스크의 여주인공이 '못난이'로 매도 당하고 있다.^^^
수 년 전 뉴스를 읽다가 외국으로 출장을 갔던 한 중국의 기자가 장이머우(張藝謨,57) 감독 때문에 창피함을 느꼈다는 대목에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중국 기자는 '외국인들이 장이머우의 영화 때문에 중국인들을 모두 가난한 사람으로 오인한다'는 적절한 이유를 들었었다.

한 예술가의 창작세계에 대한 평가에서 국가의 이미지와 체면을 우선시하는 것은 확실히 사회주의적 '앙가주망' 이데올로기의 소산일 수 있다. 당시 나는 장이머우 정도라면 그 자체로서 평가해 줄 수도 있지 않나는 애매한 의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장이머우는 확실하게 변절했다. 적어도 우리가 보는 한도 안에서는 그렇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연출 때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완전히 팽개쳐 버린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친 '3인칭 왜곡'이 된다. 장이머우는 베이징올림픽과 함께 자신의 조국의 중화주의 품으로 귀환한 것이다. 이렇게 말해야 '1인칭 진실'에 근접할 것이다.

'붉은 수수밭'(紅高梁,1988)과 '국두'(菊豆,1990), 그리고 '홍등'(紅燈,1991)을 거치면서 서민과 우울한 일상에 카메라를 너무 가까이 들이댔다는 죄로 장이머우는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예술가로 명성(?)을 날렸다. 중국 내외의 상반된 평가와 존재감의 격차가 그를 너무 어지럽게 만든 건 아닐까.

2002년 <영웅(英雄)>, 여기서 장이머우는 '화려한 실패'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그의 명성에 걸맞는 제작진들과 정말 폼 나는 대작을 만든다. 와호장룡의 제작자 빌 콩, 음악의 탄 둔, 그리고 리롄제(李連杰)와 장만위(張曼玉), 장쯔이(張仔怡), 전쯔단(甄子丹)과 같은 기라성들이 그의 카메라 앞에 포진한다.

진영의 화려함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기어이 그의 배우들의 어깨에 와이어(Wire)를 메달았고 붉은 수수밭이나 골목을 거닐던 장이머우의 분신들은 이제 더 이상 땅 위에 발을 딛지 않았다. 배우들의 느린 걸음과 미세한 감성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약을 거듭했다.

마침내 장이머우는 '와호장룡'을 뛰어넘는 영상미학의 도움닫기로 와이어를 타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이후 '연인', '황후화'를 제작하면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덕분에 그는 인민정치협상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결국 장이머우는 '집으로 가는 길'(我的父親母親,1999)로서 자신의 '집'에 귀가한 이후 다시는 이전의 모습으로 외출하지 않았다. 그런 그는 '베이징올림픽' 등을 거치면서 상업주의와 중화주의라는 두 가지 주제로 새로운 변신을 거듭하고 있었다.

급기야 변신 중이었던 장이머우는 2007년 영국의 영화 잡지 'TotalFilm'이 선정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100인에서도 밀려났다. 이미 예술인으로서 자신의 세계를 포기한 그가 거장의 자격을 잃은 데 대한 중국인들의 불만은 만만치 않았다. 이 또한 아이러니였다.

지금 장이머우는 다시 중국 영화계와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뜻 밖에도 이번 구설수의 테마는 새로 제작 중인 '산사수의 연정'(山?樹之戀)이란 작품의 주연배우로 발탁된 징추(靜秋)이다. 그 여배우의 면면들을 볼 때 청순한 연정을 주제로 한 스토리에 잘 어울리는 개성이 있고 결코 영화계에서 빠지는 얼굴은 아니다.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아이미(艾米)도 자신의 블로그에 여주인공을 비롯한 연기자들의 외모가 작품과 맞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리고 나섰다. 일부 네티즌도 "13억 중국인 중 그렇게 미인이 없느냐"며 "징추를 캐스팅한 것으로 국제적 망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과연 지금 비판받고 있는 것은 장이머우 작품에 출연한 여배우의 얼굴인가를 다시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장이머우는 자신 주변 여배우들과의 수많은 스캔들로 입방아에 올랐으나 이번 구설수는 왜 그런지 좀 달라 보인다.

혹시 그들은 개방화와 대국굴기의 거대한 물줄기를 거스르는 한 거장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그를 자신들의 대열에 합류시켰으며, 지금 와서는 '잃어버린 거장'에 대한 허전함과 애증을 구설수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2000년도 당시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보자. 그 무렵, 변절을 감행하기 직전에 장이머우가 생각한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대망의 새 세기를 향해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이상한 환상을 본 것인가. 아니면 이제 중국에서 '가난과 설움'이란 더이상 리얼리티를 가질 수 없는 싸구려 감성이라고 치부한 건 아닐까.

그 시기의 장이머우는 반체제 예술가의 스트레스와 고독감 하나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장이머우는 자신의 예술세계와 체제(현실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을 '미학적 거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통으로 인식했으며, 그 갭을 해소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미학을 파괴했던 것이다.

이제 장이머우는 없다. 그럼에도 다시 메가폰을 잡은 그의 신작에 대해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느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산사수의 연정'이라는 깔끔한 제목에 끌린 탓일까. 렌즈 속으로 붉은 수수밭을 응시하던 그 장이머우를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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