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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에서 풀려난 로라 링(왼쪽)과 유나 리. ⓒ Reuters^^^ | ||
지난 달 8월 4, 5일 이틀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으로 북한에서 풀려난 미국의 두 여기자는 북한 국경을 잠깐 침범 후 다시 중국 영토로 되돌아 왔으나 무장한 북한 군인이 중국 땅까지 쫒아와 자기들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한국계 유나 리(Euna Lee)와 중국계 로라 링(Laura Ling)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커런트 TV"의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이 같이 밝혔다(이를 LA타임스 신문도 게재했다)
1일(미국시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신문 웹사이트에 공개적으로 올린 글에서 두 여기자는 북한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고 털어 놓고 자신들은 중국 영토에서 떠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두 여기자는 또 두만강의 중간부분에 있다가 중국 영토 쪽으로 재빠르게 되돌아 왔으나 무장을 한 북한 군인들이 자신들을 쫒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두 여기자는 “(북한)군인들이 우리를 추적했을 때 우리는 분명히 중국 영토로 되돌아 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두 여기자는 “우리는 지난 3월 17일 아침 5시에 중국과 북한을 가르는 꽁꽁 얼어있는 두만강에 도착했다. 그곳 공기는 신선했으며 주변은 고요했다. 당시 우리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태양이 수평선 위로 떠오르고 우리 안내자는 얼음판의 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그를 뒤따라갔다.”고 웹사이트에 적었다.
두 기자는 또 ‘우리는 커런트 TV 프로그램용으로 인신매매라는 잔인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엮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몇 주 동안 우리는 탈북자들을 여럿 만났고 인터뷰도 했다. 인터뷰를 한 탈북 여성은 가난과 억압을 피해 탈북을 시도했다고 말했고 그들은 중국에서 황량한 감방과 같은 곳에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필사적으로 탈북을 시도한 일부 사람들은 온라인 섹스사업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다른 탈북자들은 강제 결혼을 당한 처지에 있기도 했다’고 적었다.
이어 두 기자는 ‘외국의 저널리스트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한국계 중국인인 우리 안내자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우리를 인신매매의 루트로 주로 이용되고 있으며 밀수가 어떻게 이뤄지는 지를 알기위해 두만강으로 안내 했다’고 소개했다.
두 여기자는 당시 상황을 꼼꼼하게 소개를 이었다.
“(두만강)에는 국제적인 국경선도, 울타리도, 철책선도 없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안내자가 북한 측 강가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걸어가면서 깊고 낮은 한숨을 내 쉬었다. 이미 그는 북한 국경을 밟았다는 것을 안 것 같았다”면서 “전 날 밤 안내자는 검정색 휴대폰으로 북한에 있는 동료에게 취재목적을 알리는 전화를 걸었고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실패했다”고 전했다.
두 여기자는 이어 “그러나 안내자는 우리를 안심시키며 강 주변에 아무도 없는 땅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우리는 중국 영토를 벗어날 의도가 전혀 없었으나 안내자가 두만강 중턱에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불러 우리는 그렇게 따라 했다. 그러나 결국은 북한 측 강둑에 이르렀다. 그는 저 멀리는 있는 작은 마을을 가리키며 경계가 심하지 않은 국경을 통해 수만 명을 에스코트해 왔던 잘 이뤄진 연락망을 통해 중국으로 밀입국하기에 안전한 가옥에서 북한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줬다.
우리가 있던 곳에 대해 우리는 신경이 곤두섰다. 우리는 재빨리 중국 쪽으로 되돌아섰다. 얼음이 언 중간쯤에서 우리는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뒤돌아 봤다. 권총을 찬 두 명의 북한 군인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달렸다.
우리가 중국 땅으로 되돌아 왔을 때 북한 군인들이 우리를 추격해왔다. 프로듀서인 미치 코스와 우리 안내자 둘은 우리보다 재빠르게 달려 국경선을 넘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중국 땅을 밟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북한 군인들은 우리를 난폭하게 북한쪽으로 끌고 가 우리가 억류됐던 인근의 북한군부대로 데리고 갔다.
우리는 평양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140일 이상 억류됐다. 반복적으로 심문을 받았고 궁극적으로는 재판을 받고 12년 노동교화형을 받았다.
우리가 감금상태로 있는 동안 그리고 우리가 풀려난 후 명 주 동안 우리는 3월 17일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곳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지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집에 돌아 온 후 우리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경험담을 얘기할 준비가 안됐다.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우리가 체포당했던 상황을 설명하기를 원했다.
이 이야기를 개제하는 우리의 동기는 많다. 특히 우리는 언론인들은 어두운 곳에서 불을 밝히는 책임이 있으며, 침묵 속에 무시당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전할 책임이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 중 하나인 유나 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신념을 갖고 이 이야기를 녹여내고 있다. 또 로라 링은 수년 동안 세계 곳곳의 여성 착취에 관한 보도를 한 바 있다. 우리는 중국에서의 불법생활에 자칫 북한으로의 송환 위협에 처한 탈북자들이 실제 직면한 살벌한 삶을 일깨우기를 원했다.
또 우리는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활동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우리가 주로 접촉한 사람은 탈북자들의 세계를 잘 아는 서울의 천기운 목사였다. 천 목사 등 그들의 네트워크는 탈북자들을 중국으로부터 구출,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미국 등 다른 나라로 보내는데 도움을 주어왔다.
그는 우리에게 우리의 안내자를 소개했고 중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을 제공해줬다. 휴대전화번호는 천목사와 그 연락망과의 접촉 방법을 알려줬으며 우리는 그 지하세계에서 누구에게든 위험을 주지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그가 지시하는 대로 따랐다.
탈북자들은 북한으로 되돌려진다는 공포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들과 그들이 소재하고 있는 위치 등을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했다.
우리는 탈북자들이 실제 일하고 있는 곳 혹은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그들을 만났고 탈북자들의 신상을 알려지지 않도록 그들의 얼굴을 화면에 담지 않았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한 여성은 자신의 프로필을 필름에 담아도 된다는 허락이 있었다.
우리가 얘기를 나눴던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빈곤과 식량부족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소녀는 중국에서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일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두만강을 몰래 건너온 후 그 소녀는 컴퓨터 일을 하게 됐지만 기대했던 그런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 소녀는 스트리밍 비디오를 통해 온라인으로 보여주는 인터넷 섹스 일꾼으로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북한 여성들이 점증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탈북자들은 인터뷰에 대해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중국에서의 자신들의 삶이 북한에 있을 때보다는 나은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또 천 목사를 위해 일하는 성직자가 운영하는 보육의 집을 방문했다. 그 집은 중국에서 강제 결혼을 한 북한 여성들이 낳은 6명의 어린이들이 있었다. 엄마들은 북한으로 송환됐거나 그들의 가족을 포기한 자들도 있었다. 어린이들은 아버지가 중국인들이었기 때문에 북한으로 송환되지는 않았다. 보육의 집은 그들에게 일반 가정과 같은 그러한 상황을 제공하고 있었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교육도 시키고 있었다.
우리가 체포되기 며칠 전에 우리 안내자는 상당히 조심스러워 했고 책임감을 느끼는 것같이 보였다. 그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인터뷰 주제를 보호하고 불필요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매우 신경을 썼다.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를 따라 두만강을 건너게 된 이유이다.
우리는 중국 땅으로 되돌아오기 전에 북한 국경을 넘은 것은 채 1분도 되지 않지만 우리가 깊이 후회하는 것은 단 1분이었다. 그날 우리는 함정에 빠져들었는지에 대해 아직도 알지 못하겠다.
되돌아보면 그 안내자는 이상하게 행동을 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두만강에서 출발지점을 바꿨으며 강을 건너기 위해 중국경찰의 복장을 했고 우리 생각에는 그러한 행동들이 보안상 사전 준비일 거라고 보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를 따라간 것은 우리의 결정이었다.
우리가 구금된 이후 우리 둘은 체포에 대해 극도로 반항심을 억제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다. 우리가 평양으로 오기 전 감금되었던 처음 며칠 짧은 시간 동안 소지품 검사를 받았다.
우리가 묵었던 방 밖에는 보초병이 있었는데 우리는 은밀하게 소지품 중에 증거가 될 만한 메모 노트를 입으로 삼켜버렸고 비디오테이프를 손상시켜버렸다. 매일 엄격하게 그리고 매일 심문을 하는 기간 중에 우리는 인터뷰 주제 및 취재원을 보호하는데 무척 신경 썼다. 그리고 천 목사를 포함해 우리의 중국인 이름 및 한국인 접촉선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우렸다.
북한 사람들은 위험 속에서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가족과 동료들은 우리를 보호하고 중국에서의 민감한 일들에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의 일에 대해 침묵을 유지했는데 천 목사가 우리가 체포된 사실을 공개적으로 기자들에게 말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천 목사는 우리들에게 두만강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사실 그는 중국에 있을 때 우리와 충분한 의사소통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계획을 잘 알고 있었다.
억류된 상태로 거의 5개월 동안을 보낸 후 우리는 북한 정부의 사면 승인사실에 안도했다. 우리는 계속 정신적 고통을 당했지만 믿을 수 없으리만큼 운 좋게 우리는 석방됐고 우리 가족들과 재회하게 됐다.
우리는 미국정부, 특히 국무부, 버락 오바마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앨 고어 전 미국 대통령, 그리고 커런트 TV의 동료들, 스웨덴 대사 매츠 포이어, 그리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 일행에게 영원히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석방을 둘러싼 여러 감정들을 적절히 표현할 수 없다. 한 순간 우리는 (북한에서의) 노동현장으로 보내질 뻔했고 우리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후에 우리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방으로 안내됐고 클린턴 대통령은 우리에게 인사를 보내며 집으로 가게 된다고 말해줬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준 많은 언론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우리를 지지하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석방을 촉구한데 대해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드린다.
석방 이후 우리는 중국과 북한간의 국경이 원조단체들이 드나드는 곳이며 많은 탈북자들이
더 깊은 지하로 숨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우리는 우리의 감금사태로 국경을 따라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과 활동가들에게 누가 됐다면 매우 미안한 일이다. 활동가들의 활동은 영감을 주었고, 용기가 있으며 아주 중대한 일들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고통과 불확실성을 견뎌낸 우리의 힘에 대해 질문을 했으나 우리의 경험들은 북한에서 살고 있는 많은 북한 주민들 혹은 중국에서 불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3일간의 재판의 결과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며 결국 우리는 기소됐고 불법 침범죄로 2년형을, 그리고 적대적 행위라는 죄로 10년형을 받게 됐다. 우리가 한 행동 무엇이 적대적인가? 우리는 북한에서의 억압과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감금 상태 때의 우리의 경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탈북자들이 형태는 다르지만 공포 속에서 살고 있고 지금 그들과 그들을 돕는 그룹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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