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헤란은 미국의 어려운 합의를 전쟁 승리로 포장했다. 이란인들에게 불가피한 결정이다.”
이란의 전쟁에 관한 미국과의 합의가 자신들의 승리이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상황을 BBC는 17일 이 같이 보도했다.
이란 지도부는 미국과의 새로운 양해각서(MOU)를 “후퇴가 아닌 저항과 승리의 결과(not as a retreat, but as the result of resistance and victory)로 포장하려 애쓰고 있지만 그러한 승리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BBC는 지적했다.
이란은 최근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경제는 심각한 압박을 받아 왔으며,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지지 기반 일부에서는 수개월 동안 워싱턴과의 어떠한 타협도 비난해 왔다. 이란 국내외에는 이번 위기를 외교의 기회가 아니라 정권 교체의 기회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바로 테헤란이 현재 거래를 성사시키려 애쓰는 ‘분열된 정치 지형’(divided political landscape)이다.
이란 고위 관리들은 이번 합의를 승리로 평가했다. 협상에서 이란 측을 이끌었던 모하마드 바게르 칼리바프(Mohammad Bagher Qalibaf) 국회의장은 이란이 ”최종 승리를 향한 긴 한 걸음을 내디뎠다“(a long step towards final victory)고 말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이란 대통령은 이번 합의가 잠재적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평가하며, 만약 완전히 이행된다면 이란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이란과 중동에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칼리바프 의장의 역할은 그가 페제시키안의 온건파 진영과 연관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의 공개적인 지지는 이 미국과의 거래가 이란 혁명수비대 내부에서도 더 강력한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란 지도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합의를 승리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이란을 항복시키지도 않았고, 이슬람 공화국을 권력에서 축출하지도 못했으며, 군사 행동을 통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종식시키지도 못했고, 이란과 헤즈볼라의 연계를 끊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란은 여전히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으며, 레바논이 협상 틀에 포함되어 제재 완화가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공식적인 설명은 이란 내부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이란 내부 강경파, 이번 합의는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 문서
강경파 의원이자 의회 국가안보위원회 부위원장인 한 인사는 해당 합의안 초안을 ”이란을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 문서“라고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협상단이 호르무즈 해협을 선박 통행에 다시 개방하지 말라는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지시를 무시했다고 비난했다. 그러한 비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체제 외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를 감독해야 할 기관 중 하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개월 동안 의회의 강경파, 정부와 연계된 언론, 그리고 매일 밤 열리는 친정부 모임에서는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들은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외교적 노력이 계속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미국이 군사 행동을 준비하는 동안 협상을 구실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 워싱턴과의 어떤 협상도 유화 정책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들 중 일부는 이제 잠잠해진 듯 보인다고 BBC는 전했다. 이는 국가 최고위층에서 추진 결정을 승인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단합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 경제적 압박이 거래 협상의 핵심
현재로서는 권력의 중심부가 협상을 거부하는 비용이 강경파의 분노를 감수하는 비용보다 더 클 수 있다고 판단했음을 시사할 수 있다. 바로 ‘경제적 압박’(Economic pressure)은 그러한 계산의 핵심 요소다.
이란 지도부는 이번 합의를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압박과 미국 및 지역 에너지 이권에 대한 공격을 포함한 군사적 지렛대의 결과로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 또한 테헤란을 이러한 상황에 몰아넣었다.
전쟁, 제재, 선박 운송 제한, 석유 시장 및 외화 접근성 감소, 그리고 매우 높은 인플레이션은 모두 이란이라는 국가와 일반 국민들을 압박해 왔다.
많은 이란인 가정에게 중요한 것은 이번 합의가 승리처럼 들리느냐가 아니라, 물가를 낮추고 또 다른 전쟁 발발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느냐이다.
미국 부통령 JD 밴스는 이란이 납세자들의 돈을 받지는 않겠지만, 약속을 이행하고 제재가 완화될 경우 수십억 달러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테헤란이 이번 합의를 미국에 대한 의존이 아닌 ‘투자와 재건을 위한 길’로 홍보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위험 요소는 분명하다. 양해각서의 세부 내용은 아직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으며, 협상은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 난항이 예상되는 앞으로 60일간의 협상
이란의 농축 우라늄의 미래, 허용되는 농축 수준, 검증, 제재 완화, 호르무즈 해협 및 레바논 문제 등 가장 어려운 사안들이 회담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중동의 불씨 이스라엘에 대한 불확실성도 존재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보도를 일축하며, 이스라엘군은 필요한 만큼 레바논에 주둔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의 행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너무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란-미국 핵협정 체결 직전에 이스라엘이 베이루트를 공격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명하면서도 네타냐후 총리와의 관계는 여전히 좋다고 강조했다.
테헤란에게 있어 워싱턴과 이스라엘 간의 이러한 가시적인 마찰은 유리한 요소이다. 이는 이란의 압력이 이스라엘 행동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증거로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마찰은 핵 합의를 취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작전을 계속한다면, 이란은 대응 압력을 받을 것이다. 만약 워싱턴이 이스라엘을 제지하지 못한다면, 레바논이 양해각서의 적용 대상이라는 테헤란의 주장은 곧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 현 집권층의 전쟁 승리 선언에 불신 존재
BBC 페르시아어 방송 시청자들의 반응은 공식적인 승리 서사가 고르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 청중은 이스라엘의 또 다른 공격에 대해 매우 우려해 왔지만, 합의 소식을 듣고 나서도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합의가 지속될 경우 이스라엘이 제대로 통제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미국의 군사 행동을 지지했던 또 다른 반정부 성향의 이란인은 미국의 공격이 이란의 정치적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무엇을 얻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희망은 통치 체제가 바뀌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통, 인플레이션, 그리고 경제에 더 큰 피해를 주는 것 외에 국민들에게 무슨 이득이 있었는가?“라는 질문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정부의 입장에 더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다. 한 청중은 이란을 승리자로 묘사하며, 이번 전쟁은 제재 해제가 ‘구걸’(begging)이 아니라 무력 사용(use of power)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이번 합의를 좀 더 신중하게 환영하며, 사람들이 더 큰 안심을 가지고 직장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일시적인 조치라고 생각하지만, 몇 달간의 숨 돌릴 시간과 평온이 필요했다.”고 그들은 말했다고 BBC가 전했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석일지도 모른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이번 협정을 불가피한 조치로 포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승리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란인들에게 있어 그 성공은 구호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 종식되는지, 물가가 안정되는지, 제재가 완화되는지, 그리고 지도부가 갑작스러운 사태 악화 없이 다음 단계를 잘 헤쳐 나갈 수 있는지로 측정될 것이다. 말의 승리가 아니라 실질적인 먹고사는 문제가 제대로 이뤄질지 여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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