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각성의 바늘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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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위한 각성의 바늘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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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101>박노해 "이불을 꿰매면서"

 
   
  ^^^▲ 아내는 몸종이 아니다
ⓒ 우리꽃 자생화 ^^^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 청소에 고추장 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 달라 물 달라 옷 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근로자였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창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한때 우리는 아내를 나의 충실한 부하라고 생각했다. 한때 우리는 아내를 나의 충실한 식모라고 생각했다. 한때 우리는 아내를 나의 영원한 욕구 배출구라고 생각했다. 한때 우리는 아내를 나의 영원한 몸종이라고 생각했다.

한번도 우리는 아내를 서로의 충실한 벗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도 우리는 아내를 서로의 충실한 동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도 우리는 아내를 서로의 영원한 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도 우리는 아내를 서로의 영원한 동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그동안 우리가 보고 듣고 배운 것 모두가 그러한 가부장적인 배움 뿐이었으니. 그래. 그래서 시인은 어느날 문득 "이불 호청을 꿰매면서/속옷 빨래를 하면서" 그동안 그렇게 살아온 자신을 향해 "부끄러움의 가슴을" 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시인은 이불 호청을 꿰매면서 스스로를 향해 뼈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아내나 나나 둘 다 공장에서 뼈가 바스라지도록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건만, 아내는 "자정이 넘도록/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청소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아내에게 "그저 밥 달라 물 달라 옷 달라 시켰었"습니다. 하지만 "동료들과 노조일을 하고부터" 나 스스로가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를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아내에게" 그대로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습니다.

그리고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하나 둘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라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는 잔업이 없는 어느 날, 일찍 집으로 돌아온 시인이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다가 문득 터진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노동운동은 공장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바느질을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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