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호박넷, '고 윤장호 분향소'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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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호박넷, '고 윤장호 분향소'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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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하사 희생 헛되지 않도록 최선 다하겠다" 다짐

^^^▲ 고 윤장호 하사 호박넷 분향소^^^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 앞에서 현지 테러단체의 소행으로 보이는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 한국군 병사 윤장호 병장이 사망했다. 베트남전 이후 해외 파병군이 교전이나 테러로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 테러로 전사한 고 윤장호 하사의 유해가 2일 성남공항을 통해 오늘 아침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 윤 하사의 유해는 빈소가 마련된 분당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고 오전부터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오후 들어서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더욱 많아졌다.

"자랑스럽고 훌륭한 고 윤장호 하사의 고귀한 희생 충심으로 애도"

한나라당 대선 예비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는 고 윤장호 하사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며 "윤 하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오전 국군수도통합병원에 마련된고 윤장호 하사 빈소에서 윤 하사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 "효성과 애국심, 국가관이 너무도 투철한 젊은이였고, 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한 청년이었다"며 이같이 위로했다.

박 전 대표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정말 우리 국민 모두가 가슴이 아프고 슬픈 날로 하늘도 울고 있다"며 "자랑스럽고 훌륭한 고 윤장호 하사의 고귀한 희생을 충심으로 애도한다"고 거듭 밝혔다.

또한 박근혜 전 대표가 운영하는 '호박넷(대박사랑방송국)'에 사이버상 최초로 분향소를 차려 윤장호 하사의 넋을 기리며, '사고내용'과 '윤장호는 누구'인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에 '호박넷' 회원들이 명복을 비는 조문을 하고 있다.

^^^▲ 故 윤장호 병장의 생존 사진^^^
[사고 내용]

故 윤장호 병장님이 돌아가신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체니 미 부통령을 죽이려고 일으킨 자살 폭탄 테러에 끼어서 아쉽게도 돌아 가신겁니다. 탈레반(?)저항세력이 부통령을 죽이려고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 하였는데. 거기서 잘못되어 윤병장님께서 돌아가신겁니다.

[윤장호는 누구]

“(아빠, 엄마) 여기 위험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구 6개월 동안 건강히 있다가 갈 테니까 그때 봐요~. 그럼 나중에 전화할게!”27일 폭탄 테러로 숨진 윤장호(27) 병장이 아프가니스탄 파병 직후인 2006년 9월 29일 부모님께 보낸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故 윤장호 병장은 효심이 깊고 공부도 잘하는 청년

아버지 윤희철(63 부동산 중개업)씨와 어머니 이창희(60)씨의 2남1녀 중 막내로 1980년 9월 21일 태어난 윤 병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넓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며 부모를 졸랐다.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유난히 자립심이 강했던 아들을 위해 부모는 유학을 허락했고, 윤 병장은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1994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으로 떠난 후 윤 병장은 1995년 딱 한 번 귀국한 이후로는 2004년까지 한국에 오지 않았다. 윤 병장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오지 못하게 했다. 가족이 그리워 전화기에 대고 우는 사춘기 아들(윤 병장)에게 아버지는 “네가 한국에 오면 유학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다른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니까 오지 말라” 했고, 윤 병장은 그대로 따랐다.

뉴욕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윤 병장은 고등학교 때 클린턴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로 수재였다. 어머니 이창희씨는 “부모가 한국에서 고생하는데 보답하는 길은 공부뿐이라며, 외국에 혼자 떨어져 있어도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미국 인디애나대 국제경영학과에 입학한 윤 병장은 집안 형편을 걱정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같은 대학에서 3년 동안 함께 공부한 박철환(28)씨는 “평소 조용하고 성실한 성격에 공부는 물론 운동도 잘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윤 병장은 매주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 활동을 했으며, 교회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미국 유학 중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삭발을 하고 한달 동안 새벽 기도를 다녔다.

2003년 말 졸업을 앞두고 윤씨 부부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윤 병장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었다. 직접 부모를 자동차로 모시고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 해변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2003년 12월 대학 졸업식 때 윤 병장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차례로 학사모를 씌워주면서 ‘부모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계속 했다고 한다.

2004년 봄, 윤 병장은 켄터키주 남(南)침례 신학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는 국방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그 해 12월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통역 시험에 합격한 후 2005년 6월 통역병으로 군입대를 했고, 서울 송파구 특전사 본부에 배치됐다.

윤 병장은 제대를 9개월 앞두고 아프가니스탄행을 자원했다. 중동지역은 테러 때문에 위험하다고 가족들이 말리자 그는 “이왕 군대 생활 하는데 영어를 잘 하는 내가 통역으로 나라를 돕고 싶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고 말했다.

윤 병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생활을 하면서도 월급을 아껴 집에 보냈고, 부모는 그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해두었다. 윤 병장은 다음달 14일 귀국해 6월 제대할 예정이었다. “귀국하면 한국에서 취업해 부모를 평생 모시겠다”고 했었다.

윤 병장은 지난해 9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기지 다산 부대에 배치된 이후엔 부모와 인터넷 화상 통화를 자주 했다.

“제대하면 10년 넘게 제대로 못 본 아빠 엄마 얼굴 계속 볼 테니까 기다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으니까 한번이라도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싶어.”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이렇게 부모에게 사랑을 전한 그는 끝내 부모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진심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호박넷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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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넷 2007-03-02 23:04:27
"진심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호박넷 일동

박금녀 2007-03-02 23:07:4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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