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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인희 전봉화군수 주민설득에 나선 모습 ⓒ 이화자^^^ | ||
또 청년시절부터 한나라당 전신인 공화당 청년당원으로서 초지일관 황소처럼 한번도 한나라당적을 이탈한적이 없는 분이다.
며칠전 봉화에서 택시를 탄적이 있는데, 그기사 양반의 말에 의하면 경북도의회 도의원시절부터 봉화 발전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경북도의 예산관계자들과 담판을 짓는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유명한 일화내용엔 오지봉화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까지 뚝심으로 밀어붙인 류전군수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있어 아주 인상깊게 들은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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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인희 전봉화군수 집무실에서 ⓒ 이화자^^^ | ||
상대가 작은잔으로 술을 마실 때 류전군수는 큰사발로 술을 마셔가면서 봉화의 필요한 예산이 확보될때까지 인간적 신뢰와 큰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애교까지 섞어가면서 실무자들을 항복시켰다는 유명한 일화는 아직도 경북도에서 실국장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또 기사의 말에 의하면 전봉화군수들은 인사나 승진때 일부설에 의하면 약간의 금품이 오갔다는 확인할수 없는 말들이 있었으나
류전군수는 퇴임후 거의 1년여가 지났으나 아직까지 인사및 승진과 관련한 뒷거래 만큼은 깨끗했다는 공직자들의 평을 받고 있으며, 재직시 부정에 연루된 사실 또한 없다는 것은 지역주민들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단 재선을 위하여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과정에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공천발표전날까지 공천이 확정되었다는 말만 믿었던 류전군수는 그다음날 애초 약속과 다른 공천으로 인하여
인간적인 배신과 고뇌 끝에 불출마선언과 동시에 평생을 몸담아왔던 한나라당을 탈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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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바이어와 봉화사과생산자와의 상담을 주선할때 ⓒ 이화자^^^ | ||
류전군수는 오지 봉화군출신 도의원으로서 유일하게 경북도의회 의장까지 역임하였으며, 경북도의회에 몸담고 있는 10여년동안 봉화발전을 위해 예산확보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노력해왔다는 것은 주민들이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본기자는 몇 년전 봉화군에서 생산되는 ‘봉화’사과를 대만으로 수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동행취재한바 있다.
류전군수는 대만지인을 통하여 사전 대만을 방문하였으며, 그해 11월 대만바이어가 봉화를 찾아왔을때 사과생산 농민들과 대만바이어들과의 상담시 대만바이어와 봉화 사과생산자들과의 거래가 성사되기까지의 진통과정을 옆에서 낱낱이 지켜본적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만의 과일상 바이어들은 상품을 보는 눈과 시장성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앞세워 가격결정에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봉화사과 생산자들은 그들 나름의 가격선을 제시하여
자칫 봉화사과 수출상담이 결렬될 위기에 놓였을때 류전군수는 봉화사과생산자와 대만바이어간의 조정을 훌륭하게 이끌어 ‘봉화라는 이름표’를 달고 봉화사과가 대만으로 수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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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군수 기차역까지 관광객을 마중나가서 '봉화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내는 모습 ⓒ 이화자^^^ | ||
그뿐만 아니라 ‘춘양목’을 이용하여 ‘파인토피아 봉화’라는 신활력사업으로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파인토피아 봉화’는 전국적인 최고급 이미지 상품으로 봉화의 양대축제 [은어,송이축제]의 명성을 드높혀
축제를 통한 지역경제 를 활성화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기자는 류전봉화군수와 개인적 인연이 있어서 류전군수의 평소 성품을 익히 알고 잇는바, 청년시절 그 아련한 추억을 잊을수 없다.
해병대 출신으로 그당시 해병대는 그야말로 귀신잡는 해병이라고 할만큼 훈련의 강도가 전군에서 가장 강했다.
군제대후 늘 꼬멩이 우리에게 다리를 밟아주면 얼마주겠다고 하면서 밟아주라고 해서 다리를 몇 번 밟고 나면 유별나게 장난기가 많았던 분이 꼬멩이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도망을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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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화를 찾아온 관광객에게 봉화에 대한 설명을 열정적으로 하는 류전군수 ⓒ 이화자^^^ | ||
가다가 보면 아이스케키집앞이다. 거기서 다리밟아준 품삯을 듬뿍받는다. 더운 여름날 팥이 송송박힌 아이스케키를 먹으면서 즐거운 여름날을 보낸 기억들을 지금도 친구들이 만나면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그만큼 유년시절의 즐거운 추억 거리를 만들어 준것도 있지만 류전군수의 사심없는 심성을 잘나타내기도 한것이 아니었겠는가? 혹 그런 평가를 본기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해서 여론을 들어본 결과 대부분의 주민들은 본기자와 같은 평가를 하고 있었다.
유년시절의 정서가 평생을 간다는데, 류전군수야 말로 봉화를 사심없이 발전시킬수 있는 분이라고 감히 말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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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인희 전봉화군수 ⓒ 이화자^^^ | ||
본기자는 한때 상당한 어려움에 처한적이 있었다. 그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때도 외면하지 않고 언제든 류전군수의 너그러움에 늘 돌아서서 눈시울을 붉힌적이 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는 인간이고 말고 했다’라는 말을 자주한다.
그만큼 절망으로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삶의 희망을 가질수 있도록 무언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주민을 내몸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자치단체장이라면 지역주민의 참봉사자로서의 자격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란 숫자일뿐이고 오히려 경험과 연륜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계층간의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어 갈수 있는 강점으로 주민편에서서 사심없이 지역발전을 시킬수 있는 적임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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