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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홍남순 인권변호사^^^ | ||
암울했던 시절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홍 변호사와 함께 했던 박석무(64) 단국대 이사장은 홍 변호사의 타계 소식에 비통함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박석무 이사장은 한 언론사와의 가진 인터뷰에서 "홍 변호사님이 1948년 조선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1957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하는 등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었지만 시국사범 변론과 민주화운동에 여생을 바치는 등 기득권층이 쉽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셨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또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들이 과격한 행동을 하려고 할 때면 홍 변호사님은 그때 그때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다잡아 주곤 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고 떠올렸다.
박 이사장은 "홍 변호사님이 민주화투쟁의 선봉에 선 것이 60세 이후부터였고 5.18민주화운동 당시가 백발이 무성한 69세였지만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서슬퍼런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가 청년들 못지 않았다"며 "나 같으면 인생을 조용히 마무리할 시기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고 홍 변호사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박 이사장은 "광주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어느 지역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은 곳인데 홍 변호사님이 없었다면 그때마다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변호사님이 함께 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 후배들의 투쟁은 매우 왜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홍남순 변호사님이 칠순이던 1983년 광주YMCA에서 가진 홍남순 변호사 고희 논총집 발간회를 떠올렸다.
"당시 무자비한 국가폭력이 난무했던 전두환 정권때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모임을 가질 수 없었는데 그날 행사가 아마 5.18민주화운동 이후 최초의 공식 대중적 집회였다"면서 "재야인사와 야당정치인, 민주화운동가 수백명이 모이는 등 홍 변호사님으로 인해 민주화 세력이 결집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이어 "홍 변호사님은 이후 1984년 5.18구속자협의회장과 이듬해인 85년 5.18기념사업회장을 맡아주시는 등 후배들에게 버팀목과 울타리가 돼 주었다"고 강조했다.
홍 변호사에 대한 훈장을 청와대에 제의했다는 박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민주화가 이룩되고 경제적으로도 성장하는 등 과거보다 좋은 여건이지만 통일이나 사회적 통합 문제는 아직 갈길이 멀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홍 변호사님과 같은 나라의 어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한국 민주화의 대표적 주자였던 한 어른을 떠나보내니 비통하고 안타깝기 그지 없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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