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한국은행이 조사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통신비가 외식비를 초과했다.
말하는 즐거움보다 먹는 즐거움이 컸었다. 그래서 ‘수염이 댓 자라도 먹어야 산다.’는 말이 있었다. ‘열흘 굶으면 도적질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제 먹는 즐거움보다는 말하는 즐거움이 큰 세상으로 변했다.
지난 12일 한국은행이 조사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금년 상반기 가계의 최종소비지출가운데 통신비 지출이 13조268억 원으로, 음식. 숙박비 지출액 12조9,630억 원을 초과하여 지출되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제 먹는 즐거움보다는 말하는 즐거움에 빠져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과 휴대전화 이용에 파묻혀 산다. 그래서 통신비 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했었지만, 실제로 그런 통계가 나와서 매우 놀랍다.
하루에 세끼 식사를 먹지 못해서 허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보릿고개’로 나이가 많은 세대들이 겪었다. 묵은 곡식이 떨어졌지만 보리가 아직 여물지 않아서, 농가의 식생활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음력 4-5월경을 이르던 말이다.
다른 말로 춘궁기라고도 했던 이 말은 대부분의 농민들이 추수 때 걷은 농작물로, 소작료와 사채이자를 탕감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서, 초여름 보리수확 때까지 견뎌야 했다. 식량이 모자라서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유랑민처럼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근래에 와서 경제성장과 함께 농민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생활환경도 나아짐에 따라서 보릿고개라는 말이 없어졌다.
보릿고개가 있었다는 말이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보릿고개 때문에 농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나이가 든 사람들은 지금도 보릿고개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친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까맣게 잊었다. 풍요로움 속에서 윌빙(well-being) 음식을 찾아서 먹는다. 이제 그것도 특이할 것이 없어서 사람들은 말하는 즐거움에 빠져있다. 먹는 것보다는 말하는 것이 더 좋아서다. 인터넷에 매달려 살고,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통신비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 어디 오고 있니, 그래 나중에 만나자, 밥은 먹었니?” 모두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사용한다. 심심하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휴대전화기를 애인보다 더 사랑하며 산다. 그래서 어쩌다가 집에 휴대폰을 놔두고 나오면 숨이 막히는 세상으로 변했다. 무엇인지 허전하고 답답함을 느껴서다.
하지만 우리는 휴대폰이 없어도 잘 살았다. 그게 없다고 죽지도 않지만 모두가 휴대전화기에 매달려 산다. 그래서 한때 휴대폰을 거부한 적이 있었지만 나도 별수가 없어서 지금은 가지고 다니다. 하지만 내던지고 싶은 생각이 늘 내 머릿속에 있다.
휴대폰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간편한 옷을 입을 때는 더욱 그렇다. 신통치 못한 귀 때문에 책가방에 넣는 방법도 안 통한다. 목에 걸거나 옆에 차는 것도 개목거리처럼 보여서 싫다. 젊은 사람들은 무슨 상징처럼 목에 달고 다니지만 늙은 사람들은 그 반대로 보인다. 그 유용성도 그렇다. 화급하게 전화를 걸 일도 특별히 없다. 다소 불편하지만 학교, 사무실, 집에 고정 전화기가 있다.
초등학생들도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 유치원생들까지도 엄마에게 사달라고 조른다. 산간오지에서 채소밭을 매는 아주머니도 손에 들고서 무슨 이야기인지 한다. 매스컴에서는 노인이 외국에 나가있는 아들과 통화하는 휴대폰 선전광고도 한다. 학교를 가고, 밭을 매면서 무엇이 그렇게 화급한지는 모르지만 좀 사치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내 주장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쓸데가 있으니 들고 다니는 것이고, 내가 참견할 일도 아니다. 그 유용성을 따지자면 내가 이길 자신도 없다. 사람이기 때문에 편하게 살고, 어디서나 수시로 연락할 수 있는 정보전달 기능성 측면에서 보면,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그렇지만 통신비용이 외식비를 초과했다는 통계자료를 인정하고 보면 내 말이 그러게 틀린 말도 아니다. 보릿고개를 겪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바보 같은 말일지 모르지만 통신비를 줄이고, 내 손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는 것이 더 유익해 보인다.
지난 12일 한국은행이 조사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금년 상반기 가계의 최종소비지출가운데 통신비 지출이 13조268억 원으로, 음식. 숙박비 지출액 12조9,630억 원을 초과하여 지출되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제 먹는 즐거움보다는 말하는 즐거움에 빠져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과 휴대전화 이용에 파묻혀 산다. 그래서 통신비 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했었지만, 실제로 그런 통계가 나와서 매우 놀랍다.
하루에 세끼 식사를 먹지 못해서 허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보릿고개’로 나이가 많은 세대들이 겪었다. 묵은 곡식이 떨어졌지만 보리가 아직 여물지 않아서, 농가의 식생활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음력 4-5월경을 이르던 말이다.
다른 말로 춘궁기라고도 했던 이 말은 대부분의 농민들이 추수 때 걷은 농작물로, 소작료와 사채이자를 탕감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서, 초여름 보리수확 때까지 견뎌야 했다. 식량이 모자라서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유랑민처럼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근래에 와서 경제성장과 함께 농민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생활환경도 나아짐에 따라서 보릿고개라는 말이 없어졌다.
보릿고개가 있었다는 말이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보릿고개 때문에 농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나이가 든 사람들은 지금도 보릿고개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친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까맣게 잊었다. 풍요로움 속에서 윌빙(well-being) 음식을 찾아서 먹는다. 이제 그것도 특이할 것이 없어서 사람들은 말하는 즐거움에 빠져있다. 먹는 것보다는 말하는 것이 더 좋아서다. 인터넷에 매달려 살고,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통신비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 어디 오고 있니, 그래 나중에 만나자, 밥은 먹었니?” 모두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사용한다. 심심하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휴대전화기를 애인보다 더 사랑하며 산다. 그래서 어쩌다가 집에 휴대폰을 놔두고 나오면 숨이 막히는 세상으로 변했다. 무엇인지 허전하고 답답함을 느껴서다.
하지만 우리는 휴대폰이 없어도 잘 살았다. 그게 없다고 죽지도 않지만 모두가 휴대전화기에 매달려 산다. 그래서 한때 휴대폰을 거부한 적이 있었지만 나도 별수가 없어서 지금은 가지고 다니다. 하지만 내던지고 싶은 생각이 늘 내 머릿속에 있다.
휴대폰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간편한 옷을 입을 때는 더욱 그렇다. 신통치 못한 귀 때문에 책가방에 넣는 방법도 안 통한다. 목에 걸거나 옆에 차는 것도 개목거리처럼 보여서 싫다. 젊은 사람들은 무슨 상징처럼 목에 달고 다니지만 늙은 사람들은 그 반대로 보인다. 그 유용성도 그렇다. 화급하게 전화를 걸 일도 특별히 없다. 다소 불편하지만 학교, 사무실, 집에 고정 전화기가 있다.
초등학생들도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 유치원생들까지도 엄마에게 사달라고 조른다. 산간오지에서 채소밭을 매는 아주머니도 손에 들고서 무슨 이야기인지 한다. 매스컴에서는 노인이 외국에 나가있는 아들과 통화하는 휴대폰 선전광고도 한다. 학교를 가고, 밭을 매면서 무엇이 그렇게 화급한지는 모르지만 좀 사치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내 주장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쓸데가 있으니 들고 다니는 것이고, 내가 참견할 일도 아니다. 그 유용성을 따지자면 내가 이길 자신도 없다. 사람이기 때문에 편하게 살고, 어디서나 수시로 연락할 수 있는 정보전달 기능성 측면에서 보면,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그렇지만 통신비용이 외식비를 초과했다는 통계자료를 인정하고 보면 내 말이 그러게 틀린 말도 아니다. 보릿고개를 겪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바보 같은 말일지 모르지만 통신비를 줄이고, 내 손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는 것이 더 유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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