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내 애인이 되어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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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내 애인이 되어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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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는 좀처럼 잠도 오질 않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이라기보다는 거실이다. 거실과 부엌이 붙어있었다. 돌아설 때도 없었다. 부엌이 좁아 놓을 때가 없어 그릇그릇 포개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음식을 그릇에 담으려면 뒤적여야했고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는 잠자는 식구들을 깨웠다.

남편도 잠에서 깨어나고 딸도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 훈이에게 전화를 했다.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행여나 어떤 여자하고 같이 있지나 않을까 확인 전화에 불과했다. 훈이의 목소리는 완전히 잠에 취해 있었다.

“깨워서 미안해.”
“웬 일이야 ?”
“잠이 오질 않아서 전화해 보았지. 사과할 겸.”
“알았어. 내일 전화하자.”

그리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언제나 전화를 끊을 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버릇처럼 해 온 훈이였는데 그 말을 하지 않아 좀 서운하기는 했지만 목소리라도 듣고 나니 졸리기 시작했다.

일찍 출근시간에 바빠서 아침을 거른 지는 오래되었다. 남편도 직장이 그쪽 방향이지만 단 한 번도 함께 가는 일이 없었다. 남편은 여러 차례 직장이 어디냐고 물었지만 반대 방향으로 가르쳐 주었다. 한번 가르쳐주면 퇴근길에 와서 기다릴 것만 같았고 감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연지는 여느 때와 같이 지하철을 타고 직장으로 출근했다. 부동산 마케이트는 호텔에 있었다. 호텔 주인이 부동산을 하고 있어서 다른 곳에 방을 얻느니 호텔 사무실을 내주며 거기서 일을 하라고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직장이 호텔이어서 출퇴근할 때 남들의 눈을 피해서 들어가고 나와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퇴근할 적에는 누가 볼까봐 동동걸음을 해야 했다. 연지는 핸드백을 자리에 놓자마자 커피 한잔을 뽑아들고 칸막이로 된 자리에 맨 끝자리에 앉았다. 중앙에 자리하면 양쪽에서 말이 들려 제일 소음이 작은 곳에 달라고 주문을 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밖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넓은 방에 마케팅을 하는 여자들이 이십 여명이나 되었다. 마치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집에 들어가는 것보다 지겨웠다. 하루 종일 전화를 해야 하는 텔레마케터 생활을 연지는 빨리 졸업하고 싶었다. 하루 빨리 그만 두는 길은 훈이의 손에 달려 있다고 연지는 생각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여자를 직장에서 오라고 할 아무 곳도 없을 것만 같아 여기에 붙어 있었다.

“김 사장님 안녕하세요?”

여기서부터 일은 시작된다.

“가평에 좋은 땅이 있는데 사두시면 한 달이 멀다하고 집값이 펄쩍펄쩍 오릅니다. 지하철도 멀지 않아 들어가게 되고요.”

연지는 쉬지 않고 열심히 말을 했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김 사장이라는 사람은 곧바로 비서에게 고함을 질렀다. 왜 전화를 하게 하느냐는 소리가 나더니 끊어버렸다. 하루 이틀 당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탓할 필요는 없지만 첫 손님부터 이렇게 되면 하루 종일 되는 일이 없었다. 전화는 하루에 백여 통을 하지만 재수가 좋으면 두 개 정도 오다가 나온다. 텔레마케팅은 능률에 따라 수당이 나왔다. 기본급 50만원이고 한 건당 수당이 뒤따른다. 지난달에는 억수로 재수가 없어 월급 50만원 밖에 받질 못했다. 일을 작게 해서 작게 받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부장이란 사람이 창피를 주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파 주먹으로 어깨를 두들기고 있는데 부장이 부른다고 여사원이 말했다.

부장은 텔레마케이터들을 오래 동안 관리해 왔다. 다른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가 스카우트 되어온 지 1년이 넘었다. 바람둥이처럼 얼굴이 곱살스러운 데다가 키도 훤칠하게 커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연지는 부장의 사생활에 대해 다른 텔레마케터들에게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연지는 문을 반쯤 밀고 얼굴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들어오시오.”

김 부장은 그 어느 때와 달리 벌떡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힘드시지요.”
“네, 오늘도 한 건 못 했어요.”

연지는 부장이 건네주는 음료수를 받아들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힘들지요. 오다가 있어야 건수를 많이 올릴 수 있는데…….”

사실 리스트만 좋으면 대여섯 건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좋은 리스트는 부장의 손에 달려 있기에 모두 잘 보이려고 애를 썼다.

“내 애인이 되어주면 좋은 리스트를 드리지요.”

부장은 눈웃음을 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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