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나이 40대 후반쯤 되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고 지나가는 게 갱년기다. 한데 이 시기를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넘어갈 것인지,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답답한 중년 여성들의 얘기.
서울 한복판에서 대형 음식점을 하는 H 씨. 올해 마흔 여섯인 그녀는 요즘 부쩍 거울을 들여다보게 된다. 4~5년 전부터 이마 양편에 짙은 기미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부터 워낙 피부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던 터라 얼굴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던 그녀였다.
“이마의 기미는 왜 생기는 거죠? 그리고 요즘 신경이 예민해져서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그래서 술을 입에 대게 되면 곯아 떨어지도록 마셔요. 그리고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은 현기증도 자주 느껴요.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기도 하구요. 대체 제가 왜 이렇죠?”
그녀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봤지만 별 도움이 안 됐다고 나를 찾아왔다.
결혼 후 계속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마흔 여덟 살 L 씨. 체형이 좀 뚱뚱한 편인데 요사이 지방간과 고혈압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얼굴 빨개지면서 열이 나기도 한다.
“가끔 얼굴 왼쪽이 일그러지면 쑤시는 증상이 있어요. 예전에는 왼쪽 신경이 마비된 적도 있어요. 생리량도 줄더니 두 달 전부터는 생리를 하지 않아요. 혹시 갱년기인가요?”
올해 마흔 일곱인 주부 K 씨.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는데다 골다공증이 심해져 찾아왔다.
“병원에서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주더라구요. 그 약을 복용하는 와중에 성기에서 분비물이 많아져 산부인과에 가봤더니 자궁암일 수도 있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호르몬제를 끊었더니 다시 골다공증이 심해져 고통스러워요. 왜 그럴까요?”
그녀들 말대로 ‘대체 왜 그럴까?’.
이유는 한 가지. 바로 폐경이 가까워지면서 나타나는 갱년기장애 증후군이다.
이 증후군의 여성들은 대개 질 건조감, 성교통, 현기증, 요실금, 피부 건조증, 골다공증, 오십견, 퇴행성 관절질환 등의 질환을 겪는다. 불면증, 수면 부족, 긴장감, 기역력 감퇴 등으로 인해 우을증이 생기고 그에 따라 자신감을 잃어 의욕상실에 빠지기 쉽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열감(熱感). 갑자기 얼굴, 머리, 목이 달아오르며 뜨거운 기운을 느끼다가 그 열감이 가라앉으면서 등골이 오싹해지고 추운 기운을 느끼며 식은 땀이 온 몸을 적신다.
“왜 나만 그럴까?”
이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여성의 생리상 그런 과정은 어쩌면 자연스럽기까지 한 단계이므로. 갱년기에 접어든 여성들 중 75% 정도는 이런 증상을 겪는다. 그리고 이들 중 25% 정도는 치료를 해야할 만큼 증세가 심각하다.
오랜 옛날부터 한의학에서는 갱년기에 관해 언급해왔다. 왜 이런 일들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지 원리부터 알아보자.
“여자 나이 35세가 되면 양명맥(陽明脈: 소화 및 흡수를 관장하는 기능)이 쇠약해지고 얼굴이 초췌하며 머리털이 빠지기 시작한다.
여자 나이 42세가 되면 삼양맥(三陽脈: 소양삼초맥. 순환 및 호흡 기능을 관장하는 상초, 소화 및 대사 기능을 관장하는 중초, 배설 및 생식 기능을 관장하는 하초)이 노쇠하기 시작하여 얼굴이 완전히 노쇠현상을 나타내고 머리털이 희기 시작한다.
여자 나이 49세가 되면 임맥(任脈)이 허해지고 태충맥(太衝脈)이 쇠퇴하며, 천계(天癸)가 고갈하여 지도(地道)가 불통함으로 형체가 무너지고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여성의 몸이 갖는 최대의 전성기는 21세부터 28세까지. 그 이후로 여성의 몸은 35세를 기점으로 서서히 노쇠하게 된다.
경락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봤을 때 소화 흡수를 관장하는 양명맥은 얼굴에서 시작한다. 곧 이 맥이 쇠퇴해서 체내의 영양 상태가 불량하면 우선 얼굴에 기미부터 낀다. 그래서 중년 이후의 여성들의 얼굴에 기미가 잘 생기는 것이다.
사실은 마흔 두 살 때부터 몸의 여러 가지 기능이 쇠퇴하게 되므로 이미 갱년기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부터 난소와 성기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배란이 불규칙하게 되고 생리불순이 이어지다가 49세 전후가 되면 폐경(閉經)을 맞게 되는 것이다.
‘지도(地道)가 불통(不通)한다’.
여기서 지도는 ‘성기의 기능’을 말한다. 성기, 즉 자궁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에 생식 능력도 없어지고 월경이 멈추게 된다. 서양 의학적으로 얘기한다면, 폐경을 맞아 난포호르몬이 갑자기 감소하면서 갖가지 질환들을 겪게되는데 이런 것을 통틀어 ‘갱년기 장애’라고 하는 것이다.
한방에서는 갱년기 장애의 원인을 주로 신음허(腎陰虛: 신장의 기운과 음기가 허함)와 화왕(火旺:열이 왕성함. 몸에 음기가 모자라 생기는 허열)으로 본다. 즉, 비뇨생식기 계통의 기능이 쇠퇴하면서 음기가 모자라 생기는 열이 몸 속의 진액을 말리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생기는 것이다.
싱싱하던 나무도 나이를 먹으면 물이 말라 고목으로 변해간다. 사람의 몸도 이런 자연과 세월의 변화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병이 덜 생기는데,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을 원망하고 자책하다 보니 심한 우울증까지 생기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쯤 되면 자녀들이 독립을 해 나가기 때문에 더욱 공허감과 상실감이 증폭된다.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한의학적인 치료는 신장의 음기를 보충해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몸 안의 마른 진액을 보충해주고 허열을 내려주는 약을 쓴다. 증상이 심한 경우는 침과 약침으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
간혹 호르몬제로 갱년기 증상을 치료하는 경우도 있는데, 조금 위험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적당량의 에스트로겐이 몸 안에 들어가면 화끈 달아오르는 열감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히 유방암이 있는 여성들에게 이런 방법은 위험하다. 에스트로겐이 유방암 세포를 자극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연을 거슬러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몸 속에 주사할 경우 나중에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기미 때문에 고민인 H 씨의 경우 자궁에 어혈이 있거나 소화기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많다. 임신 중이거나, 난소나 자궁에 병이 있을 때도 얼굴에 기미가 생긴다.
이럴 때는 소화기 장애부터 고치고, 자궁의 어혈을 풀어주어 내장기관의 순환을 도와주면 몸 전체적인 건강 상태가 좋아지면서 기미도 저절로 사라진다.
나는 갱년기 장애로 찾아온 환자들에게 주로 신음(腎陰: 신장의 기운과 음기)을 보(補)해 주고 화(火)를 내려주는 정원고나 공진단 등 약을 처방하고, 침 치료를 병행한다.
그리고 치료 과정에서 내가 반드시 당부하는 얘기는 마음가짐에 대한 것.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므로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이 고비를 넘기면 다시 소녀 시절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생명 탄생의 열쇠를 쥐고 있다 어느 순간 놓아 버렸을 때의 허탈감, 그와 함께 몰려오는 갱년기 질환들. 미리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면 훨씬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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