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는 부실 위장계열사에 수천 억 원대의 부당지원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화 김승연 회장에게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였다. 또 경영권 유지를 위해 사기성 기업어음(CP)으로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던 LIG 구자원 회장에게도 집행유예를 선고 하였다. 특정경제범죄처벌법에 해당되기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까지 되었던 구 회장에게 재판부는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형량을 바꾼 것이다.
특히 한화 김승연 회장의 사건의 경우는 대법원이 파기환심 한 사건 인데도 형량이 양형기준보다 낮아서 논란이 되고 있다. 보통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심 한 사건은 대법원 판결문의 취지에 따라 판결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김승연 회장 측의 수천 억 원대의 부당지원이 한화그룹을 위한 일이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감형을 준 것이다.
대법원에서는 단순히 이전 심리에서의 손해액수 계산이 잘못 되었고, 일부 행위의 유무죄를 다시 판단하라고 했으나 서울고법 형사5부는 “우리나라 경제 건설에 이바지한 공로 및 현재의 건강 상태를 참작했다”는 진부한 문구로 감형이유를 설명하였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대기업 총수들은 경제 건설을 이끌어 왔다는 이유로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으로 형벌이 결정되어왔던 것인가? 게다가 배임액수를 이전보다 212억원 줄어 1,585억원으로 인정했다. 그래도 300억 이상은 같은 양형기준이 적용되는데도 집행유예 선고를 한 것이다. 봐주기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구정연휴, 2월초에는 대기업 총수들의 재판 결과를 예상할 때 누구도 이와 같은 감형을 예상하지 못했었다. 원래 선고 공판도 2월 6일로 잡혀있어서 여러 언론에서는 대기업들이 떨고 있다고 표현하며 ‘운명의 2월’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막상 결과가 나오니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정도이다.
2월이 재계에게 잔인한 달이 될 것이라고 본 이유는 삼성가의 유산상속을 둘러싼 소송(6일)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SK 그룹 최태원 회장, 이재현 CJ 그룹 회장의 재판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만 제외하고는 전부 범법행위로 재판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출발신호격인 한화와 LIG에 대한 결과가 재계의 손을 들어준 꼴인 것이다. 다른 그룹 총수들도 지금쯤 이번 결과를 보고 자신들의 형량을 예측하고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동안 ‘청계천의 저주’라는 말이 주목을 받았었다. 청계천을 따라 위치한 회사들에게 악재가 생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마치 IMF 당시 여의도 중앙로 주변 회사들이 부도를 겪던 것을 칭하던 여의도의 저주만큼이나 재계에서 회자 되었다. 실제로 청계천변에 자리 잡은 기업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각종 사건들로 구설에 오르고 경영상황이 악화되었다.
대우조선해양은 납품비리 사건으로, 동양그룹은 사기성 CP로 대중들의 지탄을 받았다. SK와 한화는 그룹의 수장들이 비리사건에 연루되어있고, 아모레퍼시픽은 남양유업과 함께 갑의 횡포문제로 구설수에 올랐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청계천에 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소리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기본적인 도덕성을 지키지 못해 휘청거리고 존경받지 못하는 상황을 그만큼 많이 만들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금도 대기업들의 부끄러운 행동은 이어지고 있다. 재벌 계열사들이 하청업체에게 ‘단가 후려치기’를 공정한 경제 활동을 방해하였다. 전형적인 갑의 횡포이다. SK C&C는 이전과 동일 조건인데도 하청업체에게 무조건적인 단가를 내리라고 해 그렇지 못한 측을 일방적인 계약취소를 하였다. 또 신세계 I&C는 경쟁 입찰을 해놓고도 막판에 추가협상을 통해 단가를 깎았다. 더 괘씸한 상황은 한화 S&C와 아시아나 IDT는 일을 실컷 시켜놓고도 대금 지급을 지연하면서 이에 대한 이자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이들 기업은 뒤늦게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부랴부랴 이자를 하청업체에게 지급하였다. 이런 사실들은 공정위가 조사하면서 밝혀진 것이다. 이런 업계상황은 비단 시스템 통합‧구축(SI)업계만 발생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사회 도처에 이런 횡포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집행유예제도는 범죄자의 개과천선을 도모하고자 만든 제도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집행유예제도는 유예기간이 지나면 유죄판결 그 자체를 무효로 만드는 제도이다. 일종의 주홍글씨를 없애주는 셈인데 유독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집행유예만 선고 되는지 의문이다. 오늘도(12일) 거액을 탈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씨와 처남 이창석씨가 모두 집행유예선고를 받았다. 툭하면 집행유예에 사회봉사명령을 하는 것을 국민들이 좋게 볼 사람은 없다. 죄를 지어도 감옥에 가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는 것인가?
근래에 재벌 총수에게도 유전무죄의 관행을 끊고 처벌하던 사법부가, 전 대통령들의 재산을 압류하던 모습이 한때의 추억이 되지 않으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처벌을 내려야 한다. 재벌 총수들이 갑자기 무슨 경제민주화로 인한 인민재판으로 형벌을 무겁게 받아온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동안 행해왔던, 자신들의 말로는 한국 경제 혹은 기업을 위해서 해왔다는 비양심적인 행동에 대해 정당한 심판을 받는 것이다. 기업인들이라는 이유로 형을 무겁게 하는 것도 정의가 아니지만, 국민들의 눈앞에서 자꾸 봐주기식 선고를 내리는 것도 정의가 아니다.
미래경영연구소 연구원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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