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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 연합뉴스^^^ | ||
1.
자로가 공자에게 질문했다.
"지금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께 국정을 맡기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먼저 명분(名分)을 바로 잡겠다. 명분이 바르지 안으면 이름과 사실이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말이 도리를 따라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말이 사실에 따르지 않으면 혼란이 일어나고, 아무 것도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어떤 단어를 보면 그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지 관찰하고 분석하여 개념의 의미를 명료화하라, 고 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명분이 바르지 않을수록 혼돈과 무질서가 범람할 것이니, 언어, 특히 국가의 정책을 결정짓는 지도자들의 언어는 엄밀하게 분석되어야 하며, 미사여구로 치장되어 있지만 알고 보면 진실과 동떨어진 궤변은 걷어치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햇볕정책'이라는 용어는 궤변이었다.
북한을 대하여 강경책을 쓰면서 압박하고 대립과 갈등을 고착시키는 것보다는, 인내하면서 화해와 교류와 평화를 추구한다는, 그 정신은 좋다. 그 정신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용어가 이솝우화에서 따온 '햇볕'이냔 말이다.
어느 날 햇볕과 바람이 누가 더 잘났는지 내기를 했다. 누가 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겉옷을 벗길 수 있는지 대결하자는 것이었다. 바람이 휘몰아칠 때 농부는 더욱 옷깃을 바짝 끌어당겼다. 바람은 농부의 옷을 벗기는데 실패했다. 이제 햇볕이 가장 따스한 햇살을 비췄다. 그러자, 농부는 옷을 벗었다. 햇볕이 이긴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농부가, 그 날의 변덕스러웠던 날씨는 햇볕과 바람의 게임 때문이었다는 것을 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농부가 순순히 옷을 벗었을까? 아마, 자신을 게임의 대상으로 삼은 햇볕과 바람의 농간이 불쾌하여, 농부는 "이것들이 잘난 척을 하겠다? 웃기지 마라" 하면서, 겉옷을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하면서, 햇볕과 바람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햇볕'이라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비취는 것이며, 햇볕을 받는 상대방의 겉옷을 벗겨버리겠다는 우월의식이 담긴 말이다. 북한 지도부가 이솝우화를 읽어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그 출처와 의미를 안다면, 자존심이 상할 것이며 겉옷을 벗고 싶은 기분이 나지 않을 것이다. 햇볕정책은, 국민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떠나서, 근본적으로 그 용어 때문에 오류의 가능성이 많은 정책이다. 진정으로 북한과의 화해를 원했다면, 상대방의 자존심을 조금도 상하지 않게 하는 배려가 담긴 용어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3.
분석철학자들은, 언어가 사물이나 상황을 지칭할 뿐 아니라 발언자의 심적(心的)상태-사상, 의도, 인격 등-을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매우 상식적인 생각이다.
이제, DJ정권에게 질문하고 싶다. 당신들은 어떤 심적상태였는가? 진심으로 북한과의 화해를 원했나? 아니면, DJ정권이 훌륭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이었나? 진심으로 화해를 원했다면, 용어를 잘못 선택했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될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발언들을 인해 불안감을 주었던, 노 당선자가, 햇볕정책이라는 용어를, 당분간 '포용정책' 혹은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이라고 표현하겠다고 한 것은, 명분을 좀 더 바르게 잡는 것으로 보여, 적극 환영한다.
4.
정몽준씨는 '접촉정책'이라고 거론했는데, 접촉정책 외에 교류정책, 평화정책, 유화정책, 상호존중정책 등 합리적인 용어는 얼마든지 있다.
'포용정책' 보다는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이 더 좋은 것 같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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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정책의 내용이며,
정책의 내용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의 합의를 거친 정책이냐는 것이다.
국민의 합의는, 국회에서 얻도록 되어 있는 것이
자유민주주의국가이며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원칙이며
대통령과 정부는 누구보다 원칙을 존중해야 하는 주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