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새판짜기 성공할 것인가?
스크롤 이동 상태바
한국정치 새판짜기 성공할 것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쟁의 필연적 요소를 즐기는 요령

'해는 동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자연법칙이요 진리다. 마찬가지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사람은 때가 이르면 사라진다', '영고성쇠는 마련된 것이다'라는 사실도 그것에 다름 아니다.

'정치'가 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거기에 일정한 존재법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Beingness)의 생노병사와 한가지로 정치에도 그런 법칙이 있다. 그 속에 끊임없이 자정(自淨)을 위한 소용돌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저러한 자연의 법칙에 견주어 불가분의 당위라 해서 나쁠 것이 없다. 그것은 차라리 항다반사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자기변화의 패러다임을 우리는 정쟁(政爭)이라 부른다. 정쟁!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정치판의 당위적 이벤트다. '쇼(Show)'인 것이다. 그것은 정치 절차의 궤를 이끌어 온 불가피한 역사적 부산물이다.

동서고금 어느 정치무대치고, 정쟁이 전무했던 적이 있는가? 눈을 씻고 현미경을 대보라! 100퍼센트의 찬성을 생태적으로 갖춘 무단 독재를 제외하고, 그리고 전제왕권 정치를 빼놓고서 어느 정치사에 정쟁을 마다한 유례를 찾아볼 수 있는가를.

한국정치의 정쟁

그것은 한국정치 50년사에서도 혁혁한 그림으로 펄펄펄 그려 왔다. 그것은 각기 다른 개성의 충돌이 부른 필연이었다. 다양성의 공존, 그것이 지역주의, 학맥주의 그리고 남녀노소를 망라한 세대주의간의 충돌이든, 아니든 존재의 의미를 표방함에 있어 소쿨저 온 것이다.

정쟁은 그래서 정치의 생명이나 진배가 없이 정치교과서에서 활개쳐 왔다 할 수밖에 없다.우리는 지금, 그러한 정쟁의 역사적 천착을 운위코자 나서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정치의 대들보인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정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말하고자 함에 있다.

민주당 신,구주류는 4일을 기점으로 그동안의 정쟁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서 불거진 상호불신이 부른 정쟁을 봉합치 못한 결과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천우신조, 대권을 장악하고서도 그것을 가능케 한 민주당은 양 갈래에서 주장만을 되풀이 하면서 정쟁의 불씨를 지펴 온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그가 제공한 정쟁의 도구를 놓고 자유자재를 구사코자 했으나 유야무야되고 만 것이다.

시간은 문제를 기댜려 주지 않았다. '김원기, 박상천을 필두로 한 쌍두마차는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결별수순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그것을 시킨 민주당의 불행을 이제 어쩔 수 없다. 정대철 대표더러 그것을 조정하라 했으나 이미 그의 역량은 '굿모닝' 하다 '굿바이'하는 만신창이를 잉태하고 만 것이다.

정치판의 감초인 정쟁을 부추기는 데 그들이 일조한 것말고는 달리 평가할 무엇을 찾기에 결코 쉽지가 않음을 애석해 한다. 한나라당이라 해서 크게 다름이 없다. 뒤질세라 세대갈등의 면목을 비로소 국민 앞에 내보이기 시작했다. 정쟁의 묘미를 바야흐로 클로즈업 시키기에 이르고 있다. 대권쟁탈에서 밀린 한풀이가 이제서야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불과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 정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연출하기로 작정하고 나선 것이다. 386은 그들대로, 5060은 다시 그들대로 세력을 규합해 내가고 있다. 승자승 원칙의 선점을 위한 강공 조절에 다름 아니다.

그것을 통해 그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새판 짜기'다. 꿈을 가진 정치인이 그리는 피라미드 3각꼭지를 누가 장악하느냐에 한판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절실한 현실의 정치적 입지마저 내팽개칠 수 있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

투명성을 유지함으로써 정치헌금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궁색을 호도하며 줄줄이 꿰들어 가지 않는 묘수찾기 정략전술인 것이다. 정쟁은 구경거리다. 그것이 없을 것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다. '양두구육'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정쟁의 전술적 측면이다.

힘이 정의라는 사실을 정치는 웅변해 오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적 새판짜기 과연 성공할 것인가. 최틀러가 해낼 것인가? 아니면 홍사덕인가? 천동치의 정쟁의 요리사로서 즐겁고 행복한 꿈을 한국정치사에 작동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민주당의 박상천, 김원기, 정대철 의원은 그것을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개혁이라 이름하는 재야 정치꾼에게도 기회는 올 것인가? 미초의 포켓에 1억, 2억은 아니더라도 2만불 시대의 '슈가 보이스'를 실현해 보일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의 한국 정쟁은 그것을 제시해야 한다. 이 험난한 솔루션이 새판을 그리고 있는 한국적 영웅에겐 절호의 기회에 다름 아니리라! 환경을 지배해 온 것은 환경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도때도 없이 '인물대망론'을 그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국민적 꿈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자부를 가지고 있다. 꼭지점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어느 쪽이든 대통령의 지위를 존중하지 않을 현실적 이유가 없다. 데땅뜨의 호기를 접목시킬 이 절호의 기회를 활용하기만 한다면 '대한민국의 꿈'의 조기 정착도 어렵다고 할 수만은 없다 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