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和平'시험대 오른 中 '堀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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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平'시험대 오른 中 '堀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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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갈등이 화평굴기의 최종 관문될 듯

지금 중국사회는 속편 '대국굴기(大國堀起)'를 보는 듯하다. 지난 2006년 말 찬반 논쟁으로 중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중국 중앙TV(CCTV)의 다큐멘터리 '대국은 어떻게 일어났나(大國堀起)'에 대한 이슈가 여전히 미완 형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중국은 현실 속에서 그 완결편을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굴기의 테마는 다름 아닌 경제와 외교이다.

중국의 대국굴기는 예상된 것이라기보다 예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굴기가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일어났다는 데 주목해 보아야 한다. 대략 '굴기' 현상을 정리해 보자. 먼저 중국은 개방화로 축적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90년대 중반부터는 당면한 경제문제에 대해 대수술을 감행한다. 외국자본이면 무조건 댕큐를 외치며 '힘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을 수정, '필요한 곳에 손을 대는' 유소작위(有所作爲)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사실 상 달러 자본은 2007년 이후부터는 중국에서 더 이상 날개를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과감한 선회는 당시 여전히 해외 자본의 유입을 필요로 하던 중국에게는 다소간 현실적 손실을 입혔으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 핫머니를 위시한 달러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중국을 방어하는 헤지 효과를 확실히 보게 한 것이다. 헤지 자본으로부터의 헤지에 성공한 중국은 산업 공동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뒤로 하고 더욱 강하게 외국기업들의 노사문제나 대출, 법리문제에 대해 강경한 노선을 견지한다.

거대시장의 매력에 이미 빠져든 외자기업들로서는 커브 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순간에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엑셀을 밟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 엑셀이란 다름 아니라 더욱 밀착된 현지화와 눈앞의 무한경쟁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제대로 판단한 논리가 실물경제에 투영된 성공사례이다.

미국 부동산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분명한 조짐을 보인 2007년 초부터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까지가 사실상 중국의 경제와 정치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방향 전환기였다. 물론 2008년 8월에 열린 베이징 올림픽이 하나의 정점이 되기도 했으나 그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중국에게는 화평굴기(和平堀起)의 단초가 되었다.

건재함을 과시한 중국은 마침 미국의 서브 프라임 사태가 발발하고 온 세계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던 무렵 오히려 내적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과 부동산, 물가를 단속하면서 약 1년 반 간의 숨고르기를 한다. 2009년도로 대별되는 그 기간은 미국과 그 주요 영향권인 한국, 일본, 동남아, 유럽 정상국들의 위기사태를 지켜보면서 그 여파와 후유증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시기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2009년 11월 오바마 미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을 정점으로 미중 양국의 화합무드는 급격히 냉각되고 2010년 벽두부터 터져 나온 구글 해킹사건과 대만에 대한 미국의 첨단무기 판매를 발화점으로 양국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한다. 마침내 달라이 라마의 미국방문에 이르기까지 양국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공격 일변도로 내달았다. 한편 중국은 내부적으로는 이른 감이 있는 경제위기 출구전략을 서두르면서 경제에 이어 외교에서도 대국굴기를 완성했다.

이 과정을 놓고 볼 때 우리는 일부 중국 전문가들조차 쉽게 놓쳐버린 몇 가지 포인트에 대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제대로 빗나간 분석은 그간 중국이 순수하게 외자를 통해 축적한 경제력이어서 외국기업들을 포함한 국제자본과의 줄다리기 게임에서 낙오할 만큼 허약한 기초체력을 가졌을 거라는 예상이었다. 2009년 초부터 중국 금융당국이 달러 자본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면서 실질적으로는 추가 유입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갖가지 예상이 난무했으나 중국의 자본시장은 끄떡없이 버티어냈다. 여전히 중국의 부동산과 주식, 금융시장, 심지어 내수시장까지도 매력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핫머니의 영향도 심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는 화교자본의 요소와 의외로 왕성한 중국인들의 소비심리가 고려되지 않았다. 따라서 예상했던 '경제 공동화'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다만 그와는 사뭇 다른 현상인 ‘거품론’이 미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또 이제 갓 국제화 무드에 발을 맞추어 가는 중국의 부족한 글로벌 감각과 내부 정치력에 대한 불신이 그동안 중국 전문가들의 생각을 너무 집요하게 억압했었다. 현실은 달랐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중국 지도자층에는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유학한 엘리트 공무원들과 화교 기반의 지식 인프라 자원이 널려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유주의 진영의 전문가들을 착오에 빠뜨린 것은 다름 아니라 중국의 내부적 정치문제가 우리들의 그것과 본질적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관점의 문제였다.

중국 지도부는 아주 어려운 사안을 쉽게 풀어버리는 수완을 발휘했던 것이다. 문제를 단순화하여 인식하고 아주 단순한 해법을 구사하는 것이 과연 정치 안에서 가능한가에 대해 아직도 우리는 의문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적 현실은 우리 인식과는 다르다. 단순논리 뒤에 남겨질 몇 가지 문제에 대해 그들은 또 다른 포괄적인 접근을 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중화주의이자, 대국굴기라는 테마 전략이다. 현재 중국인들은 다양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애국적이며 희망적이라는 점에 더 관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

혹자들은 현재 미중 갈등을 보면서 미국이 수비전략에 몰두하고 있다고 분석하지만 그 점에 견해를 좀 달리한다. 우리는 중국이 구사하는 ‘용어’에도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굴기’ 앞에 붙은 ‘화평(和平)’이라는 어휘다. 다소 밋밋해 보이는 이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국인들은 말에 대해 특별한 주의력을 가진다. 굴기 앞에 이 수사를 달기 위해 고민했을 중국 지도자들의 뜻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근자의 중국이 대단히 공세적이고 도발적인 외교 수사를 구사하는 모습에서 상대적으로 미국이 수세에 있다고 볼 지도 모르나 실은 그 반대이다. 화평은 말 그대로 화평이다.

양국의 설전이 오가고 공격의 고삐를 죄어가는 와중에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 건 중국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춘지에를 지나면서 구글과의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고 나섰고 그 이전에 미국 핵 항공모함 니미츠호의 홍콩 입항을 승인한 바도 있다. 미국에서 최신 무기를 사 오겠다는 대만에 대해 이례적으로 설날 인사를 건넨 것은 후진타오였다.

경제와 외교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이 같은 자세는 이미 굴기한 대국으로서의 자세이며 최근의 외교갈등이 우발적인 사태이며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되었다. 과연 앞으로는 싸우고 뒤로는 악수를 청하는 양수(兩手)전략이 현 사태 해결의 방법론으로 먹힐 지는 의문이나 신흥 강대국이 안정적인 외교 포지션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자, 적절치 않으나 복잡함을 덜기 위하여 한 편의 영화에 비유해 보자. 글로벌 무대에서 현재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이라는 젊은 배우와 아직 은퇴하기는 이르나 체력에 한계를 느끼는 미국이라는 노배우가 다음 신의 촬영을 기다리고 있다. 역시 노배우는 연기의 달인답게 신예 스타를 대접하면서 한 편의 새 드라마를 꾸며 보려던 차에 주연과 조연이 바뀌는 듯한 장면에 이르러서는 각본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몰두한다.

어느 배우의 생각이 맞는 것인지, 그것은 몇 컷의 신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두 배우 모두가 대본을 까먹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각자의 순발력과 개성에 의지하여 전개될 애드립에 의해 당분간 영화는 난맥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대국으로 일어서서 험로에 들어선 중국으로서는 굴기 앞에 놓인 화평보다는 굴기 뒤에 다시 화평의 의미가 따라옴으로써 진정한 대국으로 다시 설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미래의 대국은 CCTV가 방영한 그 대국과는 아주 다른 그 무엇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중국은 이미 ‘화평’이라는 두 글자 안에 담아 두었으나 굴기 다음에 온 것은 다름 아닌 갈등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대국굴기에 남겨진 숙제는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이다. 중국의 굴기 앞에 놓인 화평은 절대명제인가, 아니면 단지 희망사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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