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이혼율 그래프는 명절 직후에 급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만큼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괴로운 명절을 보냈던 것이
우리 시대 명절의 민낯이었다.
떠나가는 추석 명절에게 손을 흔들자
반도 땅의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프랑스 인권선언이나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가 아니라, 공자님 말씀이었다. 부모를 공경하고 돌아가신 후에도 조상을 예(禮)로써 모시는 효(孝)를 강조하고 관혼상제를 중시하는 성리학이 우리를 지배하는 사상이자 진리였다.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는 제사와 명절은 그 사상의 핵심이었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승객이 100만 명을 돌파할 예정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추석 명절의 시스템이 바뀌고 있다.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등의 딱딱하고 엄격한 외형적 절차의 가례(家禮)에서 벗어나 식구들끼리 오붓이 외식하거나 여행을 즐기는 약간은 이질적이고 내실적인 추석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추석 명절은 원래 제례를 올리는 명절이 아니었다. 농경사회에서 수확과 풍년에 감사를 올리는 일종의 추수감사절 같은 고유의 명절이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 성리학이 우리를 지배하면서 조상에 예를 올리는 제례로 변질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추석 명절이 간소화되고 외식이나 여행으로 대체되는 것은 제 자리를 찾아간다는 느낌이다.
반도 땅에 남자로 태어났다면 군대를 가야 했고, 그다음에는 조상의 제사 명절 벌초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이 3대 의무가 역사의 장막 저쪽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매장 대신에 화장이 대세가 되었기에 조상 묘소에 벌초하는 것도 머지않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제사 문화도 합제나 당일제로 간소화의 길을 걷고 있고, 기도를 올리는 종교식 제사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남송 시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가가례(朱子家禮)’에서는 부모부터 고조부모까지 4대의 조상 제사를 모시는 사대봉사(四代奉祀)를 강조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나라를 다스리던 종합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신분에 따라 제사에 차등을 두었다. 6품 이상은 3대, 7품 이하는 2대, 평민은 부모 1대만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신분제에 따르는 차등 제사는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너나없이 사대봉사 제사 쪽으로 옮겨갔다. 제사를 많이 지낼수록 신분이 높은 양반이라는 허례 의식이 깔려 있었다. 임대 주택에 살면서 외제 차를 모는 허례의 현대인처럼, 조선시대 서민들도 사대봉사 쪽으로 제사에 나섰다. 그들은 허황과 위선으로 가득 찬 제사를 조상에게 올렸고, 우리는 그런 제사를 상속받았다.
대한민국의 현대인에게는 ‘명절 후유증’이란 것이 있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나면 근육통과 두통, 피로와 스트레스, 소화불량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게다가 이혼율 그래프는 명절 직후에 급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만큼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괴로운 명절, 싫어도 어쩔 수 없는 명절을 보냈던 것이 우리 시대 명절의 민낯이었다.
스트레스 받던 추석에서 가족들끼리 여행가는 즐거운 추석으로 바뀌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제 저 역사의 장막 뒤로 떠나가는 제례식 추석을 미워하지는 말자. 더러에게는 힘들었겠지만, 우리 시대의 애환과 즐거움, 그리움이 묻어있는 추석임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부모 제사에서 사대봉사로 바뀌었던 것처럼, 제례 추석에서 여행 추석으로 바뀌는 것에도 애석해하지 말자. 다만 떠나가는 것들에게는 애정 어린 눈으로 손을 흔들어 이별을 고하자.
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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