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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두 딸에게 보내는 편지> 황남대총

 
   
  ^^^▲ 북분은 여자, 남분은 남자로 밝혀진 황남대총
ⓒ 경상북도 ^^^
 
 

"이종선 시립대박물관장이 황남대총을 내물왕릉이라고 주장했다면서요?"

"그렇찮아도 말이 많니더. 이 관장은 4∼6세기 때의 고분과 유물을 비교해가꼬 황남대총 남분이 5세기 초에 조성된 왕릉이라고 하니더. 그라고 그 시기에 서거한 왕이 내물왕(402년)이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거니더."

"그렇다면 북분은 내물왕의 부인인 보반부인의 묘가 되지 않습니까?"

"그 말이 맞다면 그렇다고 봐야 하니더."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아빠는 지금 천마총 동쪽 편에 드러누워 금방이라도 옥동자 하나를 쑤욱 낳을 것만 같은 황남대총(사적 제40호) 앞에 서 있어. 황남동 고분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그 무덤 말이야. 근데 얄궂게도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어. 이를 어쩌지? 하지만 아빠가 누구야. 평소에도 비 맞는 것을 몹시 좋아하잖아?

근데 조금 전부터 우선 비부터 피하고 보자며 애기처럼 보채던 신 선생의 얼굴이 점점 험악한 표정으로 구겨지기 시작했어. 신 선생은 아마 비를 그리 좋아하지 않나 봐. 아니, 그보다도 막걸리 생각이 더 간절했겠지. 평소에도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워낙 막걸리를 즐기는 분이니까.

 

 
   
  ^^^▲ 북분에서 출토된 황남대총 금관, 국보 제191호
ⓒ 국립경주박물관 ^^^
 
 

"찌그러진 냄비가 따로 없구먼. 먼저 나가셔서 그 막걸리집에서 기다리십시오. 저는 마저 둘러보고 갈 테니까요."

"기왕 같이 나선 김에 매를 맞아도 같이 맞고, 비를 맞아도 같이 맞아야지. 그래 놓고 나중에 또 무슨 소리 할라꼬?"

"그냥 먼저 가 계세요. 귀하신 몸에 감기 들라."

그래. 앉은 자리에 풀도 나지 않는다는 최씨만 고집이 센 게 아닌 것 같아. 신씨와 이가(李家)들도 무척 고집이 센가 봐. 아빠가 아무리 먼저 가라고 해도 신 선생은 끝까지 가지 않고, 비 맞은 새앙쥐처럼 그렇게 서 있어. 아빠 또한 끝까지 다 둘러보고 가겠다며 막무가내로 뻗대고 있고.

이야기가 잠시 빗나갔네. 각설하고, 이 관장이 부부묘인 황남대총을 내물왕릉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이 관장은 황남대총의 남분을, 내물왕이 서거한 402년 경에 내물왕의 부인이었던 보반부인이 신하들을 시켜 만들었다는 거야. 또 북분은 보반부인이 죽은 뒤, 그의 아들인 눌지왕이 417년 경에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 끝없이 이어지는 고분들에 대한 의문들
ⓒ 이종찬^^^
 
 

하지만 이러한 이 관장의 주장에 허를 찌르는 게 있어. 그게 뭐냐고? 왕비릉으로 보이는 북분에서 금관이 나왔거든. 근데 왕릉으로 보이는 남분에서는 금관보다 다소 떨어지는 금동관이 나왔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 관장의 주장에 허점이 생긴 거지. 만약 이 관장의 주장대로라면 남분에서 금관이, 북분에서 금동관이 나와야 했거든.

하지만 이 관장은 그에 대해 이렇게 주장해. 어떻게? 내물왕이 미추왕의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또한 내물왕의 가문이 왕비였던 보반부인에 비해서 서열이나 세력에서 다소 떨어진대. 그래서 내물왕의 왕비였던 보반부인의 무덤에만 금관을 묻었던 거래.

그래. 만약, 이 관장의 주장이 맞다면 지금 계림 안에 있는 내물왕릉 또한 주인 없는 무덤으로 바뀌겠지? 하지만 아직 속단하기는 일러. 왜냐하면 황남대총에서 내물왕릉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거든. 그리고 내물왕이 아무리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올랐다 하더라도, 어떻게 왕의 무덤이 왕비의 무덤보다 격이 낮을 수가 있느냐는 거야.

 

 
   
  ^^^▲ 부인(夫人)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은제 허리띠
ⓒ 국립경주박물관^^^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아빠가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경주는 가는 곳마다 '?'의 연속이야. 지금 아빠가 신 선생과 함께 이슬비를 맞으며 바라보고 있는 이 황남대총(제98호분)도 마찬가지야. 조금 전에도 아빠가 말했듯이 황남대총은 부부묘야. 그래서 무덤 모양이 마치 낙타 등처럼 구부러져 있어. 학자들은 무덤이 마치 표주박처럼 생겼다 해서 표형분(瓢形墳)이라고 부르고 있긴 하지만.

자료에 보면 남분은 높이가 23m이고, 북분은 22m라고 나와 있어. 그리고 긴 지름은 120m이고, 짧은 지름은 80m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지? 그래서 학자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는 거야. 황남대총은 이곳 대능원뿐만 아니라 신라의 모든 고분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분이라고.

황남대총은 1973년 7월과 1975년 10월에 문화재 관리국 조사단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대. 그리고 한동안 천마총처럼 무덤 내부를 공개하다가 다시 복원시켰대. 왜? 황남대총보다 천마총에서 더 뛰어난 유물들이 많이 나왔거든. 하지만 황남대총에서도 금관을 비롯해서, 부인(夫人)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은제 허리띠까지 나왔대.

 

 
   
  ^^^▲ 대능원 주변에 있는 고분들 일부는 가묘라는 설도
ⓒ 이종찬^^^
 
 

"남분에는 60세 전후로 보이는 남자의 유골이 들어 있었다면서요? 그리고 금동관, 금허리띠, 금 장식과 칼 등이 유골에 착용된 그대로 출토되었다던데."

"나도 직접 보지는 못했니더. 그런데 황남대총은 그런 유물보다도 더 중요한 기 있는데…."

"더 중요한 거, 그게 뭡니까?"

"나중에 막걸리 한 병 더 사 줄랑교? 그라모 알려줄끼고."

"아, 그까짓 막걸리 한 병이 뭐라고…."

하여튼 신 선생은 입만 벙긋했다 하면 막걸리 타령이야. 하긴 이슬비까지 제법 촉촉히 맞고 있으니 절로 막걸리 생각이 나시겠지. 후후후. 아빠는 신 선생을 막걸리로 꼬시고, 신 선생은 '?'로 나를 꼬시고 있다니. 하지만 신 선생은 기껏해야 막걸리 두 병에 눈빛이 풀리고 어깨를 거들먹거리는 그런 분이야.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신 선생의 말에 의하면, 아니 신 선생이 학자들에게서 주워들은 말에 의하면, 황남대총의 남분에는 순장(殉葬)된 것으로 보이는 20대 여자의 유골도 발견되었대. 순장이 뭐냐고? 순장은 고대 국가의 매장 방식이야. 그러니까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그 신하나 노비 등을 함께 묻는 것을 말하는 거야.

 

 
   
  ^^^▲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 국보 제192호
ⓒ 국립경주박물관 ^^^
 
 

그럼 살아있는 사람을 그렇게 묻었어? 그럼. 말 그대로 생매장을 한 거지. 너무 가혹하지? 근데 왜냐구? 그 당시만 하더라도 왕이나 귀족은 절대권력자였거든. 그러니까 신하나 노비 등은 사람 취급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거겠지. 자기가 부리는 사람조차도 마치 자기가 좋아했던 물건이나 애완동물 쯤으로 여겼다는 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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