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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3일 열리는 조선통신사 행렬재현으로서 한·일 양국에서 참여한 16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중구 용두산 공원에서 광복로 입구까지의 1.5 km구간에서 펼쳐지며 금년 행렬재현에는 사상 처음으로 여성인 김은숙 부산 중구청장이 조선통신사 정사를 맡기로 했다.
평화의 행렬 관람 포인트는 역사의 타임머신인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고, 우정의 하모니로서 한. 일 예능행렬로서 부산의 대표적 문화재인 수영야류, 동래야류와 일본 요사코이오도리, 아와오도리, 기온야마가시등 한. 일 양국간 평화교류메시지를 전하고, 평화의 북소리는 부산의 일반시민 208명이 참가하는 뜻 깊은 행렬이다.
이외에도 조선통신사의 밤, 동래부사가 통신사 3사를 맞이하는 세레모니인 접영식이 용두산 공원 특설무대에서 펼쳐지고, 일본으로 떠나는 통신사들을 위로하는 전별연과 조선통신사 역사 체험존으로는 특히 일본 야마가사 신에게 바치는 장식수레를 용두산 공원 광장에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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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통신사행렬도 1^^^ | ||
1607년(선조 40) 일본측의 화의를 받아들여 여우길(呂祐吉)을 정사로 하는 400여 명의 사절을 보냈는데 이때 사신의 명칭을 통신사라 하지 않고 <회답 겸 쇄환사(回答兼刷還使) >라 했다.
조선의 후기통신사는 1607년 에도막부의 요청으로 국교가 다시 이루어지자 통신사라는 명칭을 다시 사용하였으며 1811년(순조 11) 마지막 통신사가 파견될 때까지 12회에 걸쳐 파견되었으며 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이후 수신사(修信使)로 개칭되었다.
일행의 구성은 정사·부사와 수행원으로 이루어지며 많을 때는 400∼500명에 이르렀다.
통신사 일행이 통과하는 객사에서는 한 시문·학술의 필담창화라고 하는 문화상의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학술·사상·기술·예술 등을 전하기도 하였다.
한편 통신사들은 국내로 돌아와 일본에서 겪은 견문록을 남겼는데 이 기록들은 《조선통신사행렬도》와 함께 당시 대일문물관계를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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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통신사행렬도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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