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최후의 교두보 낙동강 전선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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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최후의 교두보 낙동강 전선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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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는 위험에 처한 대구에서 부산으로 후퇴

^^^▲ 반격하고 있는 한국군^^^
육본, 부산으로 후퇴

후퇴와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에 최후의 교두보를 구축하고 치열한 전투를 벌리며 대치하고 있는 동안 유엔군의 후속 지상부대는 속속 부산으로 상륙하였다.

낙동강 방어에 배치된 부대는 마산에서 왜관에 이르는 서부방어선이 마산지구로 시작하여 미 제25사단, 제2사단, 영 제27여단 등 유엔군 3부대가 담당하고, 중부를 국군 6, 8사단과 동부를 수도사단과 3사단이 담당하였다.

낙동강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철통같은 방어진이 확립되었다. 초조한 적군은 8월 15일에 대구를 점령하고 한숨에 부산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8월 초부터 병력을 대구에 총집결시켰다. 그리고 대구방면으로의 방어선 돌파를 꾀하는 동시에 포항지구와 마산지구에도 압력을 가해왔다.

특히 마산방면으로부터의 압력은 부산 교두보에서의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지구의 유엔군은 8월 10일부터 10일에 걸쳐 나흘동안에 적을 25여 킬로 퇴각시켰다. 여기서 적은 개전이래 최초의 퇴각을 맛보았으며, 부산 측면 공격은 좌절당하고 말았다.

포항지구에서는 인민군 제5사단이 강습을 시도해왔다. 포항, 안강방면에서 치열한 공격을 감행한 적은 까딱하면 낙동강 방어선의 한쪽을 무너뜨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 유엔군은 국군 정면의 적의 압력을 약화시키고 장래에 있을 총공세에 대비해 기동적인 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국군 제1사단 정면의 적을 미군 제1기갑사단으로 대치시키고 제1사단의 병력으로 제6사단의 방어구역을 분담 방어시켰다.

이렇게 팽팽히 서로 대치하고 있던 중 9월 2일 밤 안강 방면의 공산군은 국군 수도사단 18연대의 정면을 맹공격하여 이를 돌파하고 경주를 위협하여 들어오고 따라서 적의 15사단은 영천을 향하여 침투하였다.

또한 영천을 돌파한 적의 주력이 포항을 공격함에 따라 이곳의 국군 제3사단도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항 비행장의 전 자재도 이동시켰다. 9월 6일, 이 지구의 전선은 가장 위험한 고비에 이르렀다. 최후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같이 보였다.

국군 제8사단 전면의 적 역시 강력한 공격을 감행하여 국군은 일부 후퇴하였고 7사단이 영천으로 증원되었다. 수도사단 정면을 돌파한 적은 경주 서북방 8킬로 지점까지 진출한 공산군은 영천-경주가도를 위협하여 대구가 위험하게 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9월 5일 대구에서 부산으로 후퇴하였다.

<10회-대구 방어 작전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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