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성품은 악하다. 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부터 이득을 좋아한다. 그런 까닭에 다툼이 일어나고 양보가 사라지는 것이다.
(人之性惡 其善者爲也 今人之性 生而有好利焉 順是 故爭奪生而辭讓亡焉)
- 순자집해 성악편(荀子集解 性惡篇) 중에서 -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荀子)는 생몰년도가 불명하나, 그의 학설만큼은 분명했다. 임금이 덕치를 베풀면 하늘이 감응하여 저절로 풍년이 든다는 식의 애매한 구석을 그에게서 찾아볼 수없다. 나라가 노력하는 것만큼 부강하고, 사회가 예절을 지키는 것만큼 질서가 선다고 주장했다. 순자는 비슷한 시기 맹자(孟子 372-289 BC)의 성선설을 조목조목 비판할 수 있었던 유학자였다.
12세기 주자(朱子)는 맹자가 유가(儒家)의 적통을 잇는 것으로 추대했지만, 실제는 순자가 펼친 세계가 대륙을 주도했다. 순자가 말한 위(爲, 有爲)는 무위(無爲)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써 “만든다(人爲)”라는 적극적인 뜻이 들어있다. 춘추전국시대는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법가(法家)에 의하여 진(秦 221-206 BC) 제국으로 통일되었고, 오늘날 중국의 골격을 짰던 것이다.
아무튼 공자(孔子 551-479 BC)는 성선설과 성악설을 함께 품을 만큼 품이 넓었다. 그의 유림은 이처럼 이원론(二元論)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선과 악을 대하는 태도는 대등하지 않았다. 즉 선이 악보다 우세하도록 조치를 취했는데, 이때 선과 악의 구별은 예(禮)에 따랐다. 어진 사람이란 좋아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을 구별한다(惟仁者 能好人 能惡人, 논어 里仁편).
노자(老子)는 현묘(玄妙)한 인물이다. 그의 생몰은 가려져 있으나, 생존했다면 대략 공자와 비슷한 연배로 보고 있다. 노자 학설의 특징은 크게 봤을 때 유가와 상보적이다. 즉 노자는 공자가 버렸던 무위와 악을 소중하게 주워 담아 대응하는 유위와 선에 못지않게 가치를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자가 유위와 선을 무시하지 않는다. 서로 도와서 온전해짐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전자공학 시스템은 거의 예외 없이 증폭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증폭기는 음 되먹임 제어(negative feedback control)가 장치되어 있고, 이것으로 시스템은 제 스스로 적정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은 국회에서 여당이 제안한 정책을 야당이 비판함으로써 정치가 살아있는 기능을 하는 것과 같다. 또 음 되먹임은 자연생태에서 하나의 기제로서 작동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은 노자철학의 키워드이다. 즉 유위가 하나의 증폭기라면 무위의 역할은 음 되먹임의 고리(loop)가 되며, 이때 자연은 제어하는 과정을 담당하는 격이다. 이렇게 볼 때 유위-무위 고리 쌍은 안팎을 뒤집어 이어놓은 뫼비우스 띠와 같은 구조가 된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온 다른 이름이며, 놀랍다고 할뿐이다(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도덕경 제1장).
석가(釋迦 566-486 BC)가 반야심경처럼 한자로 설법했다고 일단 가정한다면, 그는 노자가 본 유무(有無)의 쌍으로 된 세계를 색(色)으로 지칭했다. 색은 관찰자의 눈(eye)을 경계로 안-밖(in-out)으로 나뉜다. 안에는 언어로 색깔이 기록되고, 밖에는 언어로 이름 붙은 사물이 보인다. 따라서 색의 본질은 언어이다. 낱말은 이분법으로 조작된 무량(無量)의 퍼즐조각이 된다.
안이란 마음이다. 말은 먼저 마음에서 일어나서 마음에서 조작된 건축물만큼 밖의 사물이 보인다. 소리도, 말뜻도 그만큼 보인다(觀, 看). 딱 그만큼뿐이다. 그러면 구조물을 크게 세우면 될까? 아니다, 다른 쪽으로 오히려 그만큼 시야를 가리고 만다. 이래저래 고통만 쌓인다. 왜냐? 허상이기 때문이다. 나고 죽고 이것조차 아니다(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반야심경).
공자, 노자, 석가는 일관되게 사람이 왜 짐승과 다른지를 보여주고 있다.
1. 군자(君子) - 선을 높이고 악을 낮춘다. ( either X or -X )
2. 성인(聖人) - 선도 악도 선처럼 대한다. ( both X and -X )
3. 부처(佛陀) - 사실은 선도 악도 없었다. ( neither X nor -X )
군자는 선을 높이고 악을 낮출 때 역설을 극복한다. 성인은 선도 악도 선처럼 대할 때 역설을 초탈한다. 부처는 선도 악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역설을 초월한다. 셋 모두 기쁨은 같지만 기쁨의 차원은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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