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사회에서 왕따 당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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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사회에서 왕따 당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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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있는 사람에게는 오기가 있을 수 없다

^^^▲ 지만원 박사^^^
필자는 어릴 때나 군에서 야전생활 및 합참 등 고급사령부에 근무할 때에는 늘 윗분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았고, 주위와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학문의 길에 들어서서 왕따를 당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군대 생활에서는 주위로부터 인기 있던 사람이 어째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모인 소규모 사회에서는 왕따를 당할까?

당시 필자는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문의 세계에 들어 선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특성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첫째 질투심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고, 둘째 일반적으로 속이 매우 좁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자기보다 잘 난 사람을 질투하고, 이해와 관용이라는 것이 별로 없고, 남의 잘못은 크게 보는 반면 자기 잘못은 보지 못하는 옹졸한 사람들이 대개 학문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을 체험으로 느낀 것이다.

1974년 여름의 대위 시절, 필자는 미해군대학원에서 육군 및 해군 장교들과 공부를 했다. 인원은 많아도 과정이 서로 달라 대개 주말이라야 회동을 했다. 그 중에 해군 후배 한 사람이 육군 선배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왕따를 당하고 있던 해군 장교 후배는 필자를 매우 따랐다. 필자가 그를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대했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다가 필자 역시 사관학교 선배들로부터 경고를 받는 등 왕 따를 당했다.

필자 역시 무슨 선배들이 저렇게 속이 좁고, 야비하냐는 생각이 들어 선배들을 만나지 않았다. 필자도 그들을 왕따 시킨 것이다. 필자는 오직 공부에만 전념했다. 분기 말에는 게시판에 소위 Dean's List라는 게 붙었다, 우등 성적을 기록한 사람들의 명단인 것이다.

거기에는 빠짐없이 필자의 이름이 올랐다. 필자는 선배들과 가까이 지내는 길보다 그들을 무시하고 학업에 전념하는 길을 선택했다. 자기가 정한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의 마음에 상처만 주지 않는다면 세상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미해군대학원에서 문과계통인 경영학 석사를 하다가 기업감사에 통계적 접근이 필요하게 됐고, 그를 위해 필자는 응용수학 과목을 몇 개 정해서 공부를 다. 거기에서 배운 작은 지식으로 기업의 재고를 예측하는 수학공식을 만들어 논문 지도교수를 감동시키게 됐다. 지도교수는 필자를 시스템공학과에 입학시키기 위해 정치활동을 했다. 학교 창설 이래 최초로 문과석사를 이과 박사과정에 입학시킨 것이다.

학교당국은 한국 국방장관에 편지를 보냈다. “이 학생에 시간을 하락해 주시기 바란다”는 취지의 편지였다. 이 때 한국 국빙부에서는 소위 “체게분석실”을 만들어 미국과 한국 과학원에서 석사를 공부한 사람들을 집합시켜 놓고 있었다. “체계분석실장”은 육사 12기, 육사에서 교관을 했던 대령이었고, 그 다음의 선임자는 미해군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졸업하고 돌아간 해병 중령이었다.

학교 당국에서 국방장관 앞으로 보낸 편지가 바로 이 체계분석실장에게 이첩됐다. 당시 실장은 해병중령을 위해 박사과정 1명에 대한 예산을 확보해 놓고 있었다. 이들에게 미해군대학원에서 보낸 편지는 청천벽력이었다. 바로 이 때 체계분석실에서는 반-지만원 정서가 형성됐다. “누구는 입학허가서를 받지 못해 여기에 와 있나? 다 차례가 있는 거지” 이런 정서로 인해 필자는 귀국도 하기 전에 체계분석실에서 이미 왕따가 돼 있었다.

국방장관으로부터 소식이 없자 필자는 그대로 귀국을 했다. 귀국을 해니 자동적으로 체계분석실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 출근하자마자 10여명에 이르는 모든 실원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이 집중됐다. 말을 잘 하려 하지 않고 멀리하려는 자세들이 역력했다. 필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동안 이렇게 불편한 환경에서 근무를 했다. 몇 달 후에야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 그 후 필자는 제대를 결심했다. 매일 매일 묵묵히 공부를 하면서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이 필자를 쓰겠다며 어려운 인사절차를 극복하면서 필자를 데려갔다. 그 곳에서 일한 지 불과 1주일, 체계분석실장에서 전화가 왔다. “박사과정에 가게”

모든 걸 체념했던 필자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아닙니다. 저 한사람 좋자고 국방과학연구소장님의 노고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 안갑니다” 실장은 연구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만원을 설득시켜 박사과정에 보내달라고 사정했다. 이유는 “누구는 입학허가서 딸 줄 몰라 안 따나” 이렇게 필자를 욕했던 해병 중령이 미국에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아무데서도 그에게 허가서를 주지 않았다.

확보한 예산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 실장이 요구하는 예산을 획득할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실장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필자를 보내려 했던 것이다. 연구소장 역시 필자를 설득했다. 그리고 필자는 곧바로 미해군대학원으로 날아가게 된 것이다.

필자는 체계분석실에서 18개월간 따돌림을 당한 상태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사무실에서는 미 국방부의 경영관리 제도를 연구했고, 밤이면 한국식 회계학을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극복하면서 살았다. 필자는 그야말로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입을 닫고 기계처럼 사무실을 다녔다. 따가운 눈초리도 무시해 버렸다.

그 후 필자는 대한민국을 살릴 엄두를 낼 만큼 내면적인 성장을 했지만, 그들은 지금도 옛날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듯 하다. 인생의 길은 꼬불거려야 멋이 있다. 가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즉시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간다.

필자가 그들과 공개적으로 싸우기를 시작했다면 필자의 인생은 벌써 허물어 졌을 것이다. 자기 길이 있는 사람에게는 오기가 있을 수 없다. 성대의 김명호 교수의 케이스를 보면서 다 같이 생각해 보자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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