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兩會스타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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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兩會스타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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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성공한 親韓 정치인

 
   
  ▲ 보시라이, 중국 충칭시 당서기  
 

지난 3일 개막된 중국 양회(兩會)에서 내외신 언론의 눈길이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에게 집중되었다. 심지어 취재경쟁으로 기자들이 밟히기도 하고 인민대회당 내에 소란이 빚어질 정도에 이르러 보안원이 장내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보(薄) 서기에 대한 중국 내외의 뜨거운 관심은 바로 그가 진행 중인 충칭시 범죄조직과의 정면 승부에서 시작되었다. 2007년 충칭시 서기로 부임하여 작년까지 무려 3,348명의 조직폭력배를 구속하고 이 중 조폭 두목만 63명에 달하였다.

최근 중국 네티즌 여론조사에서 95%가 그의 범죄소탕 활동을 지지한다고 대답했고 중국 정치인 중 인기 순위는 단연 1위였다. 이날 보 서기는 충칭 변방에서 전쟁에서 이기고 베이징에 입성한 개선장군과 같은 환대를 받았다.

보 서기는 영화배우 뺨치는 아주 미남에다 영어와 정치적 비즈니스를 잘 하고 대표적인 태자당 출신으로 중국의 8대 혁명원로의 한명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차남이다.

친한파(親韓派)를 넘어 애한파(愛韓破)로까지 알려진 대표적인 중국 정치인이자 한국 정치인들과도 대단한 꽌시를 맺고 있는 그는 지금 중국 인민들에겐 정의로운 정치인으로 하늘높은 줄 모르는 절정의 주가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보 서기의 언론에 대한 태도는 전과 달랐다. 아무리 교묘한 취재공세도 여유있는 유머로 받아 넘기기로 유명한 사람이 그였다. 항상 친화적이고 사교적인 표정의 보 서기도 이날 만큼은 인민대회당 앞에서 긴장하고 취재를 꺼리는 느낌이 역력했던 것이다. 그의 '전쟁'에 대한 의도를 순수하지 않게 보는 사회 일각의 눈길 때문이었다. 유명세가 정치적 역풍을 불러올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인 듯했다.

'2012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진입하기 위해 범죄와의 전쟁을 기획한 것이 아니냐'는 대만 기자의 질문에 "우리는 원자바오 총리가 발표한 정부 업무보고서를 논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즉답을 피했다고 연합뉴스측은 전했다. 보 서기의 업적을 칭송하는 노래까지 동영상으로 떠도는 마당에서 그 자신이 인기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능력과 실력, 우수한 정치적 캐릭터에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는 정치인. 서구적 정치환경이었다면 단연 대통령 후보감인 그도 중국적 환경에서는 순탄치 않은 정치역정을 걸어 왔다. 다렌(大連) 시장, 랴오닝(遼寧)성 성장을 거쳐 중앙 상무부장에 올랐던 그가 구설수에 휘말려 충칭시 당서기로 내려간 것은 좌천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과연 그의 인기가 향후 어떤 정치적 파장을 몰고올 지에 관심이 높다. 범죄와의 전쟁의 진의가 무엇이든 그의 업적의 대단함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초유의 업적임에 자명하다. 이번 범죄수사는 보 서기의 지휘 아래 충칭시 공산당 전체가 사명을 걸고 조직적으로 전개해 이루어낸 대단한 성과였다.

특히 시민들의 자발적인 수사협조에 의해 2개월 동안 범죄 제보만도 9,165건에 달했다. 사업가들은 수사에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기도 하였고 범죄조직의 반격이 예상될 때마다 수많은 격려와 후원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범죄의 온상에서 기죽어 살다가 원군을 만난 듯 기뻐했고 충칭시 전체가 보 서기를 영웅시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던 것이다.

지금 보 서기는 언론에 의해 '스타 보시라이'라는 표제어를 서슴없이 달고 나오는 최고의 인기 정치인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는 자주 두 사람의 중국 정치인에 비견되기도 한다. 대륙 중국의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와 타이완 총통에 오른 마잉주(馬英九)이다. 두 사람 모두 보 서기처럼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데 자신의 목숨을 걸었으며 그 싸움에서 성공한 인물들이었다.

많은 한국의 정치인들과 기업인들 역시 보(薄) 서기를 좋은 이미지로 각인하고 있다. 늘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하던 그는 서울을 자주 찾았고 랴오닝성 투자유치설명회에 어김없이 주대인으로 참석했었다. 기업가들이 유창한 연설이 외모가 출중하니 노래도 한 곡 하라고 짖궂게 졸라대자 그는 '투자를 하겠다면 노래도 하겠다.'고 분위기를 이끌어 결국 한 곡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그를 자본주의를 잘 이해하는 세련되고 호방한 정치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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