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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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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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힘들어하고 여려워하는 요즘 인터넷사이트에서 떠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남자의 일생이야기"

1816년에 가족 파산,
1818년에 어머니 사망,
1831년에 사업을 하였으나 파산,
1832년에 주의회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
1833년에 친구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하였으나 파산,
1834년에 약혼자 사망,
1836년에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 입원,
1838년에 주의회 대변인에 출마하였으나 낙선,
1840년에 정부통령 선거위원에 출마하였으나 낙선,
1843년애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
1848년에 하원의원 재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
1849년에 고향 국유지관리를 희망하였으나 거절,
1854년에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
1858년에 상원의원 재선거와 부통령지명후보에 출마하였으나 낙선

그러나 1860년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 워싱턴 D.C에 있는 링컨기념관의 링컨 기념상
ⓒ Photodisc 에서 ^^^
생전에 그는,

"내가 걷는 길은 험하고 미끄러웠다.그래서 나는 자꾸만 미끄러져 길바닥위에 넘어지곤 했다. 그러나 나는 곧 기운을 차리고 내 자신에게 말했다. 괜찮아. 길이 약간 미끄럽기는 해도 낭떠러지는 아니야!"라고 말하며 위안을 가졌다고 합니다.

'파산,사망,낙선,거절,입원과 같은 절망의 말과 현실'에서도 그는 굳굳하게 다시 일어서고자 했던 것이고 마침내 미합중국 대통령이 된것 입니다.

그가 바로 아이브라함 링컨(1809년 2월12일-1865년 4월15일) 입니다.

절망을 강조하면서도 마지막에 강조하는것은 바로 이것 입니다.

"You Can Do it!"

그렇습니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할수 있습니다.지금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나는 할수 있고 해낼수 있다.'는 굳은 마음과 신념 하나로 앞을 향해 전진할때 우리는 이룰수 있습니다.

카드빚에,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오라는곳은 없고,일가족이 자살을 하고,일거리는 없고,손님이 없어 개점휴업상태이고...모든것이 우울한 소식뿐입니다.이러한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상기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있는 것 입니다.

일부러 시리즈화 하려고 그렇다고도 볼수 있지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주저 앉아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 희망과 꿈을 가지고 달려 보지 않으시렵니까?'
"우리는 할수 있습니다'

상기에서 처럼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을 지낸(1861-1865) 링컨(Lincoln, Abraham)에 대하여 요즘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경제가 나빠져 실패하신 분들,절망의 날을 보내는 분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숨은 뜻이 있는듯 합니다.

링컨 대통령은 누구인가?

링컨(Lincoln, Abraham)은 미국 켄터키주(州) 호젠빌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노동을 하였기 때문에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지만, 독학하여 1837년 변호사가 되어 스프링필드에서 개업하였다고 합니다.1860년부터의 행적은 이렇습니다.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것은 노예제도에 대한 그의 견해가 과히 급진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선거에서는 민주당 쪽에서 노예제 유지의 브리켄리지와 인민주권의 더글러스의 두 명의 후보로 분열되었기 때문에 링컨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당선과 함께 남부에 있는 제주(諸州)는 잇달아 합중국을 이탈하여 남부연합국을 결성합니다. 링컨은 이미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는 남부에 있는 제주의 노예를 즉시 무조건 해방시킬 생각은 없었으나, 앞으로 만들어질 준주(準州)나 주(州)는 자유주의로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1861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하자 링컨은 “나의 최고의 목적은 연방을 유지하여 이를 구제하는 것이지, 노예제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하였으나, 4월 섬터 요새에 대한 남군의 공격으로 마침내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남북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남북전쟁 중 그는 의회에 대하여 대통령의 권한 강화를 요청하고, 독재적 권한을 행사하여 인신보호영장의 정지, 언론집회의 자유의 제한을 강행, 반대당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여러 세력을 조정하여, 북부의 강경론자들을 누르면서 노예해방을 점진적으로 단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황은 처음에는 북군에게 불리하였으나, 1862년 9월 남군이 수세로 몰린 때를 노려 노예제도의 폐지를 예고하고 외국의 남부연합국 승인을 저지함으로써, 북부와 해외여론을 자기편으로 유도하여 전황을 일거에 유리하게 전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국립묘지 설립 기념식 연설에서 유명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불멸의 말을 남겼습니다.

전쟁 중인 1864년의 대통령선거에서는, 재선 전망이 불투명하였으나, U.S.그랜트가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승리가 계속된 것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서 재선에 성공하였습니다.

1865년 4월 9일 남군사령관 R.E.리가 애포매턱스에서 그랜트에게 항복함으로써 남북전쟁은 종막을 고하였습니다. 전쟁이 종막에 가까워짐에 따라 관대한 조치를 베풀어 남부의 조기 연방 복귀를 바랐으나, 남군 항복 2일 후인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연극관람 중 남부인 배우 J.부스에게 피격당하여 이튿날 아침 사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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