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9일 오후3시- 나주 예비군대대 무기고가 피습되고 1600여정의 총기가 탈취되던 날!
서울지사 오 부장이다 "김 차장 빨리 대피하시오. 서울에서 접한 소식은 광주지역 방송국 은 물론 신문사도 피습되어 불에 타고 있다는 거요. 지사 간판도 내리고 피신하시오"응답도 못한체 전화가 끊긴다.
사무실 기둥에 걸린 간판을 떼려고 현관 문을 나서는 찰라에 요란스런 함성과 굉음소리에 놀라 재빨리 창문을 닫았다.
신의주1호선인도로에는 삽시간에 각목과 쇠 파이프 그리고 칼빈총으로 무장한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한 후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장발족의 청장년들이 차창 밖으로 몸을 내민체 요란한 함성을 지르고 목포 와 영암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박경장과 유리창에 새겨진 신문사 제호를 떼다 말고 황급히 창문을 닫았다. 박 경장이 200미터 전방에 있는 금성동파출소 옆 예비군 무기고를 걱정한다.그곳은 나주읍내에서 예비군 무기가 가장많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경비전화는 불통이고 일반 전화로 금 파를 불렀으나 응답이 없없다. 아마 파출소 경찰들도 이미 철수를 한 모양이다. 제발 총기나 은닉하고 철수 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이 때 광주 아시아자동차(방위산업체)에서 생산한 군용트럭이 사무실 앞을 질주하며 파출소 쪽을 향해 소음을 내며 달린다.
파출소 방향으로 질주하던 군용트럭은 갑자기 무기고 부럭담장을 향해 돌진, 무기고를 박살 내고 있다. 19일 오후 3시, 곧바로 요란한 총성이 들려온다.
이 때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여니 겁에 질린 보안대 주재관 0 준위가 사무실 문턱에서 자신의 허리춤을 만지며 권총을 찾는다.
내 권총! 내 권총!" 빈 허리춤을 더듬으며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오른손을 흔든다. "이 사람 정신차려"어깨를 감싸주며 진정을 시켰다.
박경장이 건네준 냉수 한 컵을 단숨에 들이마신 그는 "김대중의 내란 폭동이야"외치며 정신없이 도망쳐온 경위를 설명했다.
이준위가 나주군청 군수실을 찾아가 유군수를 금성산 5포대로 피신토록 한 후 군청 정문을 나서는데 몽둥이와 각목을 든 20여명의 청장년들이 군청 앞 에 몰려 있고 그 중 낯익은 30대 후반의 대장 격인 듯 한자가 지휘를 하는데 그는 나주 사람도 아닌 함평 사람으로 유일한 김대중의 지지자로 재야 활동을 한 사람이며,
고향에서도 유관기관을 떠돌며 활부 책장사를 하며 평소 자신과 호형 호제하던 사이인데도 이날 따라 몽둥이를 든 체 "어이! 보안대장 어디 가는가?" 라며 정색을 하자 이에 놀라 500미터 거리인 이곳까지 2키로나 골목길을 헤매며 줄달음쳐와 사무실 앞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까지 된 것이다.
이준위에게 금 파 무기고가 조금전에 피습된 경위를 알려줬다. 그는 예비군 대대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들려온 소식은 충격과 함께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피습 당한 무기고에는 M1, 칼 빈 소총 1600정. 중화기인 M60기관총과 수류탄이 든 상자 등이 보관 되 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세 사람은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고 발만 구르고 있다.
정확히 무기고가 피습된 시간은 5.19일 오후 3시다. 사무실에 묶인 우리 세 사람은 긴장된 상태에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 체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이때 전화 벨소리에 재빨리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서울지사 오 부장이다. "김 차장 긴급 상황이요 지금 광주 본사가 불타고 있고 본사 식구들도 이미 철수했으니 김 차장도 빨리 대피하시오" 청천 벽력같은 소식에 우리 세 사람은 기겁했다.
우선 함평이 고향인 이준위가 함평지역 무기고를 수습하기위해 출발을 서둘며 나주 역으로 전화를 했다.
김동문 님께서 작성하신 기사 "무기고 탈취 현장에 세운 민중항쟁 사적비 1호?"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기사 중에서 님께서 쓰신 다음의 명제를 입증하는 증거를 보다 상세히 알고 싶습니다.
"소총1600여정 M60기관총을 비롯 다량의 수류탄이 탈취된 시간은 5월19일 오후1시-3시 사이며..."
이 명제 사실임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를 확인하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만, 그 증거라는 것이 무엇인지 기사는 분명히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5월 19일 나주 금성동 무기고가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피탈당하였으며 피탈된 화기, 탄약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밝혀 주는 사료를 확보하고 계시면 공개하여 주실 수 있을까 묻습니다.
시민 저항권에 입각하여 무장 항거의 정당성 천명한 1980년 5월 25일 광주 성명서 79학번 07/10/15 [19:22]
5월 18일 00:01시 전국 계엄령 발령과 함께 전북대학교 학생회관에서 개시된 계엄군의 양민 살상 (이세종 군 등), 부터 5월 19일 광주고 앞 발포 (김영찬 19세 등), 5월 20일 광주 역 광장에서의 조직적 발포 등으로 살상당한 시민들 (김재화 26세, 김만두 45세, 이북일 28세 등)의 유린당한 생존권은 자연히 시민자위권을 발동시키는 것으로 아래의 성명에서 이를 드러내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나?」 성명 전문
먼저 이 고장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우다 숨진 시민, 학생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그 대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너무도 무자비한 만행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너도 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18일 아침, 각 학교에 공수대를 투입하고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에게 대검을 꽂아 ‘돌격 앞으로’를 감행하였고, 이에 우리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 당국의 불법처사를 규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계엄 당국은 18일 오후부터 공수대를 대량 투입하여 시내 곳곳에서 학생과 청년들에게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였으니!
아! 설마, 설마 했던 일들이 벌어졌으니! 우리 부모 형제들이 무참히 대검에 찔리고, 차에 깔리고, 연약한 아녀자들이 젖가슴을 짤리우고,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무자비하고도 잔인한 만행이 저질러졌습니다.
또한 나중에 알고 보니 군당국은 계획적으로 경상도 출신 제7 공수병들을 보내 지역감정을 충동질했으며, 도구나 공수대를 3일씩이나 굶기고, 더더구나 술과 흥분제를 복용시켰다 합니다.
시민 여러분! 너무도 경악스런 또 하나의 사실은 20일 밤부터 계엄당국은 공식적으로 발포명령을 내려 무차별 발포를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고장을 지키고자 이 자리에 모이신 민주시민 여러분!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당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장을 지키고 우리 부모형제들을 지키고자 손에 손에 총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에서는 계속 불순배, 폭도로 몰고 있습니다.
여러분! 잔인무도한 만행을 일삼았던 계엄군이 폭돕니까, 이 고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우리 시민군이 폭돕니까!
시민 여러분! 우리 시민군은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안전을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또한 협상이 올바르게 진행되면 우리는 즉각 총을 놓겠습니다.
민주시민 여러분! 우리 시민군을 절대적으로 밀어주시고 적극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주장은 성문법인 대한민국 헌법이 419저항에 의한 민주주의 공화국 성립의 대원칙을 천명하고 있음은 물론, 불문법인 자연법적 전통에 따라서 역시 근대 시민사회의 대표적인 국가시민의 권리라는 원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계엄군이 전군 사령관 회의에서 이희성의 발의와 전두환 당시 "각하"의 특명에 의해 발동을 종용받은 소위 군 초병의 자위권 역시 별 나라의 근거 전무한 조항이 아닌 바로 시민의 저항권이라는 대 원칙에 입각한 것인 즉, 먼저 총격 도발 없이 총격을 가하는 것은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아닌 선제 공격으로서 가해자의 범죄가 성립합니다.
내신 기자가 전하는 5월 20일 계엄군 발포 사태 79학번 07/10/15 [18:39]
광주 역 쪽에서 20일 수백 발 총성, 하늘을 가르는 무수한 붉은 빛
5월 20일, 22시 55분
*광주 역 쪽에서 군인들이 수백 발 발포하고 있음. 취재접근 어려움. 중요서류, 직원들이 도청으로 옮김. 총 쏘고 시민 함성소리...... 무법천지 공포의 도시. 유난피해 우려. 도청에서 서 기자 탈출. 사진기자 이영배씨 지사 쪽에 있는 듯. 발포피해 상황 아직 모름. (#조선일보 취재일지)
*본사에 기사를 송고하고 있을 때 광주 역 쪽에서 이날 처음으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수백 발의 총성이 계속 났다. 밖에 뛰쳐나가 보니 그것은 공포탄이 분명했다. 빨간 불덩이가 쉴새없이 서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불길한 징조였다. (#조선일보 취재일지)
5월 20일 23:00 시
*M16 100여 발의 총성. 927명이 연행됨. 금남로에서 50여 대의 차량이 파괴 또는 전소됨. 시청이 일부 파괴됨. 이날 밤, 10,000여 명이 공용터미널에서 철야.
*중심지(금남로)에서 데모주력 시민들이 강제진압(군인들이 페퍼포그 쏘아)으로 흩어짐. 중심지 옥상에서 사진기자 이영배씨와 같이 있음. 광주시청 앞에서 11시에 사격개시. 1백여발 유탄 50여발은 공중으로 날아가고 나머지는 안보여. 공포위협 사격인 듯. (#조선일보 취재일지)
1980년 5월 19일 오후3시- 나주 예비군대대 무기고가 피습되고 1600여정의 총기가 탈취되던 날!
서울지사 오 부장이다 "김 차장 빨리 대피하시오. 서울에서 접한 소식은 광주지역 방송국 은 물론 신문사도 피습되어 불에 타고 있다는 거요. 지사 간판도 내리고 피신하시오"응답도 못한체 전화가 끊긴다.
사무실 기둥에 걸린 간판을 떼려고 현관 문을 나서는 찰라에 요란스런 함성과 굉음소리에 놀라 재빨리 창문을 닫았다.
신의주1호선인도로에는 삽시간에 각목과 쇠 파이프 그리고 칼빈총으로 무장한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한 후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장발족의 청장년들이 차창 밖으로 몸을 내민체 요란한 함성을 지르고 목포 와 영암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박경장과 유리창에 새겨진 신문사 제호를 떼다 말고 황급히 창문을 닫았다. 박 경장이 200미터 전방에 있는 금성동파출소 옆 예비군 무기고를 걱정한다.그곳은 나주읍내에서 예비군 무기가 가장많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경비전화는 불통이고 일반 전화로 금 파를 불렀으나 응답이 없없다. 아마 파출소 경찰들도 이미 철수를 한 모양이다. 제발 총기나 은닉하고 철수 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이 때 광주 아시아자동차(방위산업체)에서 생산한 군용트럭이 사무실 앞을 질주하며 파출소 쪽을 향해 소음을 내며 달린다.
파출소 방향으로 질주하던 군용트럭은 갑자기 무기고 부럭담장을 향해 돌진, 무기고를 박살 내고 있다. 19일 오후 3시, 곧바로 요란한 총성이 들려온다.
이 때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여니 겁에 질린 보안대 주재관 0 준위가 사무실 문턱에서 자신의 허리춤을 만지며 권총을 찾는다.
내 권총! 내 권총!" 빈 허리춤을 더듬으며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오른손을 흔든다. "이 사람 정신차려"어깨를 감싸주며 진정을 시켰다.
박경장이 건네준 냉수 한 컵을 단숨에 들이마신 그는 "김대중의 내란 폭동이야"외치며 정신없이 도망쳐온 경위를 설명했다.
이준위가 나주군청 군수실을 찾아가 유군수를 금성산 5포대로 피신토록 한 후 군청 정문을 나서는데 몽둥이와 각목을 든 20여명의 청장년들이 군청 앞 에 몰려 있고 그 중 낯익은 30대 후반의 대장 격인 듯 한자가 지휘를 하는데 그는 나주 사람도 아닌 함평 사람으로 유일한 김대중의 지지자로 재야 활동을 한 사람이며,
고향에서도 유관기관을 떠돌며 활부 책장사를 하며 평소 자신과 호형 호제하던 사이인데도 이날 따라 몽둥이를 든 체 "어이! 보안대장 어디 가는가?" 라며 정색을 하자 이에 놀라 500미터 거리인 이곳까지 2키로나 골목길을 헤매며 줄달음쳐와 사무실 앞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까지 된 것이다.
이준위에게 금 파 무기고가 조금전에 피습된 경위를 알려줬다. 그는 예비군 대대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들려온 소식은 충격과 함께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피습 당한 무기고에는 M1, 칼 빈 소총 1600정. 중화기인 M60기관총과 수류탄이 든 상자 등이 보관 되 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세 사람은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고 발만 구르고 있다.
정확히 무기고가 피습된 시간은 5.19일 오후 3시다. 사무실에 묶인 우리 세 사람은 긴장된 상태에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 체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이때 전화 벨소리에 재빨리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서울지사 오 부장이다. "김 차장 긴급 상황이요 지금 광주 본사가 불타고 있고 본사 식구들도 이미 철수했으니 김 차장도 빨리 대피하시오" 청천 벽력같은 소식에 우리 세 사람은 기겁했다.
우선 함평이 고향인 이준위가 함평지역 무기고를 수습하기위해 출발을 서둘며 나주 역으로 전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