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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농업식량안보와 자주국방을 위해 노력하신 박정희 대통령우리나라의 국정운영원리(原理)는 「수출 · 고용 · 소득증대」이다. 우리나라와 경쟁관계에 있는 나라보다 품질이나 가격면에서 경쟁력이 강해야 수출이 증가하고 그래야만 고용이 늘어난다. 수출품 중에서도 부가가치가 큰 물건을 만들어야 국민소득이 늘어난다. ⓒ 뉴스타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 ||
들어가는 말 - 우리나라의 미래상
제5장에서는 "엔지니어링 어프로치"에 대해서 설명했다.「수출, 고용 및 소득증대」는 우리나라 국정 운영의 원리(原理)이다. 이 원리를 구체화 한 것이 이미지(Image)인데 수량적으로 표시 되어야 한다.
본 기획특집의 『제1편 한국의 산업혁명 / 제3장 산업국가 건설 계획의 <도표 3-12>』를 보면 산업혁명은 4단계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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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농업식량안보와 자주국방을 위해 노력하신 박정희 대통령우리나라의 국정운영원리(原理)는 「수출 · 고용 · 소득증대」이다. 우리나라와 경쟁관계에 있는 나라보다 품질이나 가격면에서 경쟁력이 강해야 수출이 증가하고 그래야만 고용이 늘어난다. 수출품 중에서도 부가가치가 큰 물건을 만들어야 국민소득이 늘어난다. ⓒ 뉴스타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 ||
▶ 제1단계가 1964년부터 1967년까지의 기간으로 수출액이 1억∼3억 달러,
▶ 제2단계는 1970년까지로 수출이 10억 달러,
▶ 제3단계는 1977년까지로 수출이 100억 달러,
▶ 그리고 제4단계에서 수출 1,000억 달러를 돌파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가 된다.
이상이 산업혁명의 각 단계인데, 이때의 단계 하나 하나에는 단계적인 목표가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제4단계의 목표를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달성함으로써 대망의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4단계를 돌파한 후에 우리나라의 이미지 즉 "미래상"은 어떤 양상일까?
(1) 중화학공업 대 경공업 비율이 2 대 1이 돼서 호프만계수는 0.5 이하의 선진공업국
(2) 수출 1,000억 달러 이상. 세계 10위권(내외의) 무역 대국
(3) 국민소득 1인당 1만 달러. 이때쯤이면 우리나라 인구는 약 5,000만명. 따라서 총국민소득은 5,000억 달러가 된다.
(4) 이때 총GNP의 3%를 국방비로 사용한다면 연간 150억 달러를 국방비로 사용할 수 있다. 5,000만명의 인구와 이만한 군사비를 사용할 수 있다면 안보문제는 안심할 수 있다. 이런 상태가 되면 평화적인 통일도 가능해 진다.
(5)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이룩하고 우리민족이 선진국 못지 않게 부강한 복지국가를 건설한다면 이것이 바로 "민족중흥"이라는 역사적 과업인 것이다.
이러한 기적을 일으킨 공은 마땅히 우리나라의 산업전사(産業戰士)에게 돌아가야 한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빛나는 공이 군인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도표 3-12>를 보면 산업혁명의 각 단계마다 산업전사들의 주역(主役)이 달라진다.
▶ 제1단계 ― 여자단순기능공이 산업전사의 주역이다. 이들이 1964년에 1억 달러의 수출을 함으로써 수출의 물고를 텄고 ―우리나라 수출의 한계점이라고 하던― 3억 달러를 1967년에 달성함으로써 「수출제일주의·공업입국」이라는 국가전략을 뒷받침했다.
▶ 제2단계 ― 남자단순기능공도 합세를 했다. 월남에 진출, 육체노동을 함으로써 수출 10억 달러의 고지 점령을 가능케 했다.
▶ 제3단계 ― 중화학공업건설 시기로 기능사가 주역으로 등장한다. 1977에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00 달러 달성, 우리나라는 중진공업국에 진입하게 된다.
▶ 제4단계 ― 기술개발, 연구발전의 시기이다. 기술자·연구가의 역할이 중요시되며 이들의 성과가 선진국이 되느냐 못되느냐를 결정짓게 된다.
▲ 우리나라의 국정운영원리(原理)는 「수출 · 고용 · 소득증대」이다. 우리나라와 경쟁관계에 있는 나라보다 품질이나 가격면에서 경쟁력이 강해야 수출이 증가하고 그래야만 고용이 늘어난다. 수출품 중에서도 부가가치가 큰 물건을 만들어야 국민소득이 늘어난다.
그리고 역으로 생각하면 「고용을 증가시키고 소득을 올리는 길은 수출하는 길밖에는 없다.」이와 같이 "수출 · 고용 · 소득증대"는 3미일체(三味一體)인데 산업전사들의 기술이 향상할수록 산업은 고도화하고 나라는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도산업국가가 되는 길, 선진국이 되는 길은 ― 단순기능공에서 기능사, 기술자, 연구가 등 모든 ― 산업전사들의 기술력과 그 생산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선 제6장에서 여성근로자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註: 1) 통탄하게도 우리나라는 1997년 소위 IMF 사태를 맞고 총국민소득은 3,130억 달러로 뚝 떨어진다. 우리나라 경제는 선진국이라는 고지에 도달하자마자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2)여기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오원철 경제건설 홈페이지『경제이슈 / 1997년도의 IMF 사태에 관한 논문』에 소개한다. 그리고 상세한 설명은 본 기획특집 제16장∼제18장에서 하기로 한다.
3) 그러나 국민여러분! 좌절하지 맙시다. 용기를 잃지 맙시다. 우리민족은 제5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보잘것없는 처지에서 출발해서 "산업혁명"을 완수했고 선진국이라는 고지를 점령한 위대한 민족입니다. IMF 사태 및 그 여파를 하루속히 극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는 우리나라가 산업혁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여러번 있었던 일이고 그때마다 슬기롭게 극복을 했습니다.
이런 뜻에서 1960~70년대에 우리가 겪었던 경험을 현재의 국가위기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산업전사의 기초적인 기반은 그 나라의 인구와 교육수준이다.
우선 인구부터 알아본다. 우리나라 인구통계는 경제기획원의 한국통계연감에 의하면 1910년 것이 그 효시인데 남북한 합해서 1,312만9천명이다. 1910년이라면 우리나라가 일본식민지가 된 해이다. 이때 1,500만 동포라고 했다.
▶ 1920년 국세조사 때, 1,726만 4천명
▶ 1925년 국세조사 때, 1,902만 명
▶ 1930년에 가서야 2,43만 8천명이 된다.
▶ 그러나 1931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1,971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여하간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동포 2천만"이라는 구호가 사용됐다.
▶ 1944년의 인구는 2,512만 명인데, 이때까지가 남북한 전체의 인구통계이다.
해방 후는 1949년 5월1일에 제1회 총인구조사를 실시했는데 남한에만 2,016만7천명이라고 조사됐다. 엄청난 숫자이다. 그래서 인구밀도(인구/㎢)는 1944년도 113.7명/㎢이던 것이 5년 후인 1949년에는 204.9명/㎢라는 숫자로 늘어났다. 똑같은 면적당 인구가 80%나 늘어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징용이나 징병으로 외지로 끌려갔던 한국인이 귀국을 했고, 북한에서 피난 온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자 인구는 또다시 늘어나서 1955년에는 2,150만2천명이 됐다. 전쟁 중 사망한 사람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으로 부터의 피난민수가 더 많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남한에서는 "남한동포 2천만"이라는 구호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해인 1964년 인구는 2,795만8천명, 그래서 "대한민국 동포 3천만"이라고 했다. 1999년 현재인구는 4,685만8천명이다. 그래서 "남한동포 5천만", 남북한 합쳐서 "한국민족 7천만"시대가 된 것이다. 필자는 1928년생이다. "동포 2천만"이라고 하면서 자랐다. 그러던 것이 "한국민족 7천만" 시대에 살고 있다.
조선조시대와 일정시대의 인구
그런데 제5장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우리나라의 농민 1,500만명(1964년)은 만성적인 실업자로서 자기가족을 먹여 살릴 식량조차도 생산하지 못했다. 그래서 산업혁명을 추진하는데 있어 크나큰 암적 존재로 작용을 하게되었다.
어떠한 연유로 이런 꼴이 되었을까?
제5장에서 고종(高宗)황제가 실시한 광무개혁(光武改革)에 대해서 약술했다. 우리나라로서는 처음 시도한 "개방과 개혁"이었다. 1900년을 전후한 7, 8년 실시 하다가 1904년 러일전쟁으로 중단됐다. 1964년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꼭 60년 전이다.
그래서 "광무개혁 시기" 즉 1900년 전후의 인구는 얼마나 됐을까를 알아 보기로 한다. 다행이 경제기획원 통계연감에 1910년부터의 인구통계가 나와 있다.
▶ 1910년 말 인구 : 1,312.9만 명
▶ 1911년 말 인구 : 1,383.2만 명 -> 인구 증가율 5.35%
▶ 1912년 말 인구 : 1,457.6만 명 -> 인구 증가율 5.38%
▶ 1913년 말 인구 : 1,517.0만 명 -> 인구 증가율 4.08%
위의 표에서 누추해 본다면 1900년의 인구는 약 1,000만명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남북한 합해서이다. 당시는 농업이 주된 일자리였다. 그래서 인구의 대부분이 농촌에서 거주했다.
그런데 남북한의 경작지 면적은 거의 동일하다 그렇다면 남북한에는 각각 500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이때의 인구밀도는 평방 ㎞당 45.2명이다. 1964년 당시의 인구밀도 284.0과 비교하면 6.28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국민은 1964년보다 6.28배나 넓은 국토 공간에 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 60년전인 1900년 당시와 비교해서 ― 농토가 조금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1900년 당시의 농민은 1964년에 사는 농민보다 4, 5배에 가까운 농토를 경작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더욱이 당시에는 곡식, 소금, 해산물을 위시해서 모든 생필품을 인력으로 수송해서 판매했으니 이에 소요되는 인력도 컸을 뿐만 아니라 국가나 각 지방관서에서 시행하는 각종공사나 용역(用役)에도 막대한 인원이 동원됐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의식 속에는 실업자라는 개념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농민은 경작면적이 부족해서 절량농가가 되는식의 실업자는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1904년 광무개혁이 중단된 후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일본식「개방과 개혁」이 진행됐다. 속도는 늦으나마 근대적 산업화의 길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토목, 건축, 광산을 위시 각 산업분야에서 잡부나 단순기능공에 대한 일자리가 발생했다.
더구나 일본이 만주를 점거하고 만주국(滿洲國)을 건국한 후에는 농업개척민으로 우리동포를 만주땅에 이주시켰다(중국 동포의 발생원인). 그 후 中日전쟁, 이어서 태평양전쟁이 발생하자 우리동포는 징병, 징용으로 끌려갔다(일본 땅에 끌려간 동포 중 전후 일본에 잔류한 것이 재일동포이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우리나라에서도 인력부족 현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총독부는 "아기를 낳자! 더 많이 생산하자"라는 구호를 써가며 산아 장려책을 썼다. 이러한 여파로 인해 해방이 되고 난 후에도 인구증가는 계속돼서 1964년에는 남한 땅에만 2,796만명이 살게 됐으며 이 중 1,555만명이 농업인구가 된 것이다.
인구증가와 실업자
일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인구가 증가하면 실업자가 생긴다.
이런 이유로 인구증가분 만큼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산업발전이 안된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964년의 인구는 2,798만4천명으로 전해(1963년)에 비해 72만1천명이 증가했다(인구증가율: 2.65%). 이만한 인구에게 매해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마련해 준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인구억제정책, 즉 산아제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펴나갔다. 첫 번째 목표는 인구증가율을 2.65%에서 2%로 내리자는 것이었다. 2%가 되면 인구가 배로 늘어나는데 35년이 걸린다.
이 목표는 1971년에 달성됐다(인구증가율 1.99%). 다음목표가 1.5%였는데 ―1979년에 1.53%, 그 후 조금 주춤하다가 ― 1983년에가서 달성했다. 1.5%라면 인구가 배로 늘어나는데 47년이 소요된다. 다음 단계가 1%. 이 목표는 1997년에 달성됐는데(이 해 인구증가율은 0.979) 인구가 배로 증가하는데 70년이 소요된다.
소결론을 내린다.
광무개혁 당시의 남한인구는 약 500만명이었다. 이들이 사농공상의 모든 분야를 경영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영농법이 기계화된 현재로서는 500만명만 농사일에 종사하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1964년 당시) 농사일에 1,555만명이나 관여하고 있었으니 "보릿고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1,555만명 중 500만명을 뺀 약 1,000만명과 도시의 실업자는 제2차산업 내지는 제3차산업에서 흡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미 제5장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그리고 이 인적자원이 우리나라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다. 제6장은 보릿고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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