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이 있다면, 제발, 나를 보내줘요” 울부짖는 맹인 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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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이 있다면, 제발, 나를 보내줘요” 울부짖는 맹인 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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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에 사는 사람들은 유토피아, 즉 지상낙원을 오매불망(寤寐不忘) 추구한다

60년대 말 해인사에 오르는 길 중턱인 비구니 암자인 약수암(藥水庵)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맹인 거지 두 명이 의좋게 해인사로 오가는 행인에게 큰소리로 “적선 하이소!”를 하던 때가 있었다.

한 명은 60대 후반의 선량해 보이는 남자 맹인 노인이 해금을 슬프게 연주하며 행인의 적선을 구하고 있었고, 40대 중반의 역시 소경 걸인인 팔봉(八峰)이 큰 깡통을 내밀며 슬픈 음색으로 구걸의 말을 했었다.

그들은 기막히게 발자욱 소리를 듣고 깡통을 내밀며 “적선 하이소”를 외치는 데, 해인사 승려들은 돈 대신 “나무아미타불” 이나 “나무관세음보살” 만 하면 팔봉은 어색하게 웃으며 화답하듯 “나무관세음보살”을 해주었다. 팔봉은 구걸하여 저축한 돈이 많다는 소문이었고, “말년에는 구걸을 멈추고 맘씨 좋은 아내를 만나 편히 살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당시 해인사는 이성철(李性徹) 스님이 총림(종합수도원)의 가장 높은 승직(僧職)인 방장(方丈)으로 주석하며 “산은 산, 물은 물”의 법문으로 세간에 화제를 일으켰다. 이성철 스님은 보름마다 해인사 큰 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의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면서 주장자(?杖)를 들어 법상을 치며 대중의 미몽을 깨웠다. 해인사 밑의 거리에는 깡통을 든 두 명의 소경 거지와 이성철 스님은 묘(妙)한 대조가 아닐 수 없다.

팔봉의 모습을 묘사해보자. 그는 땅딸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뼈마디가 굵은 사지와 탁한 음성, 사부 정도의 덮수룩한 머리칼 이마가 좁고 주먹코, 무지스러워 보이나 순박해 보이는 얼굴에 사시사철 때가 절은 검은 색 낡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는 약수암 입구 쪽의 고목 밑에 앉아 있다가 동업자인 소경 거지의 슬픈 가락의 해금 소리가 들려오면 화들짝 일어나 슬픈 음색으로 “적선 하이소!”를 반복해 외쳐대었다.

해인사 큰 법당에서는 이성철 스님의 깨달음을 위한 법문이 있었지만, 해인사 밑 거리에는 두 명의 맹인 거지는 불경의 심오한 깨달음의 진리 보다는 깡통속에 가득차는 동전과 지폐를 갈망할 뿐이었다. 맹인들의 뇌리에는 호구지책(糊口之策)인 구걸의 경제학이 제일이었다. 불문의 선거(禪家)의 천칠백공안(千七百公案)과 역대조사의 선법문(禪法門)은 업고에 고통받는 걸인의 민중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공리공론(空理空論)이었다.

나는 70년대 초 어느 명산에 은자(隱者)같은 깨달은 고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써 이 산 저산을 돌아다녔고, 깨달은 은자를 찾아 법을 듣고자 무진 애를 썼었다. 결론은 어떤가? 모두 음양합덕(陰陽合德)을 이루는 승려뿐이고, 풍부한 경제를 염원하여 고뇌하는 승려들 뿐이었다. 먹고사는 경제에 대부분 무당들과 동맹을 맺듯 상부상조(相扶相助)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기이하게도 영리하고 능력있는 무당을 만나는 인연이 없었다.

수년 후 내가 해인사를 찾으니 해금을 타는 늙은 소경거지는 죽고 없었고, 팔봉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 소문에 의하면, 팔봉에게는 전생의 인연인지 젊은 여자가 나타나 팔봉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매일 따뜻한 식사를 차려주고, 그동안 팔봉이 구걸하여 모은 돈(제법 많은)을 관리한다는 후일담(後日譚)이 전해올 뿐이었다.

나는 두 명의 걸인이 사라진 텅 빈 거리를 망연히 바라보면서 내생이 있다면 행복하게 태어나기를 기원하고 팔봉의 행운에 기뻤다. 검은 외투를 벗고 아내의 시중을 받는 팔봉의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어느 해 겨울 해인사를 찾으니 이성철 스님은 해인사 비석전에 큰 비석에 이름이 각인 되어 후세에 전하고 있었다. 죽음은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과, 깨달은 사람이나 깨닫지 못하고 구걸하는 사람이나 평등하게 찾아 온다는 것을 나는 절감하였다. 죽기 전에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중요하였다.

해인사에 내리는 눈 속을 걸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눈속에 검은 외투를 입은 사내가 나에게 불쑥 나타나 손바닥을 내밀며 “적선 하이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늙은 팔봉은 터미널 쪽에서 구걸행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반갑고 궁금하여 천원 짜리 두장을 주고 물었다.

“아미타불… 아니 어찌된거요. 예쁘고 착한 아내를 맞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문이던데, 다시 적선 깡통이 뭐요? ” 팔봉은 부끄러운 안색으로 원망스레 말했다. “ 착한 아내요? 그년은 제가 구걸해 모은 돈을 몽땅 들고 도망갔지요. ” 팔봉은 눈속에 서서 흐느끼며 내게 간청해왔다.

"스님, 극락세계가 정말 있어요? 나좀 제빌 그곳에 데려다 줘요. 사는 게 괴로워 죽겠어요." 나는 늙은 거지 팔봉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위로가 될 지 몰라 어쩔줄 몰라 하는 가운데 기다리는 버스가 눈속에 다가왔다.

끝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총알같은 속도로 태양계를 끝없이 윤회하고 있다. 부처님은 지구를 고해(苦海)라고 정의하였다. 고해속에 삶을 사는 사람들은 빈부귀천(貧富貴賤), 수명의 요수장단(夭壽長短)이 태어나면서 정해진다.

고해에 사는 사람들은 유토피아, 즉 지상낙원을 오매불망(寤寐不忘) 추구한다. 고달픈 인생이 죽어서는 영원한 수명과 행복을 누리며 사는 천국과 극락세게에 태어나기를 소원하고 기도한다. 그러나 천국과 극락세계는 고달픈 중생에게 위안의 말일 뿐, 진짜 천국과 극락세계는 있을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갈 수 있는가?

죽어 영혼으로 간다는 것인가? 광대무변한 우주의 어딘가에 항성(恒星)의 천국과 극락세계가 있다는 것인가? 나는 눈속에 헤인사를 떠나는 버스의 좌석에 앉아 차창에 내리는 눈을 응시하며 슬프게 해금을 타면서 적선을 구하던 맹인 노인, 구걸한 돈을 여자에 빼앗기고 다시 구걸에 나선 맹인 팔봉이 남은 생 행복하고, 극락세계에 갈 수 있기를 막연히 기도 하며, 그들을 직접 구원할 신통력이 없는 것을 자탄하고 자책할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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