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원주 남한강 쪽에 홀로 살면서 서책을 대하고, 또 홀로 남한강을 찾는 것을 가장 큰 취미요, 행복으로 삼는다.
그 서책 속에서 중국 포송령(蒲松齡)이 저술한 요재지이(聊霽志異)와 구우(瞿佑)가 저술한 전등신화(剪燈新話), 진나라 사람이 적은 수신기(搜神記), 당나라 사람이 적은 유괴록(幽怪錄), 베트남의 영남척괴열전(嶺南?怪列傳), 조선의 천재 김시습이 적은 금오신화(金鰲新話) 등을 즐겨 읽는다. 나는 앞서의 서책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는다. 독서삼매에 빠지다가 서책을 덮고 홀로 남한강가에 앉아 어둠속에 있을 때면 천녀유혼(?女幽魂)에서 등장하는 여귀가 막걸리병을 들고 와 인사를 할것같은 환상이 들 때도 있다. 언제인가 찾아올까?
나는 앞서 열거한 책중의 이야기는 귀신의 이야기가 주종이어서 황당한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비(神秘), 괴기(怪奇)한 이야기 기운데는 언제나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주제(主題)가 있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고해대중을 이해하고 교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송령은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산동지방의 문사이다.
향촌에서는 포송령의 글에는 향내가 나고, 붓끝에는 신기(神氣)가 어린다는 천재적인 문장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당시 향시(鄕試) 등에 시험에는 충중한 실력으로 합격을 했지만, 벼슬길에 나가는 최종 시험인 진사시험을 황제가 보는 북경에서 시험을 치면 매번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굶주린 배를 안고 낙향해야 했다.
훗날 포송령은 자신이 매번 최종 시험에서 낙방하는 원인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을 받 챙기고 시험의 당락을 조작하는 부패한 시험관들의 농간이 있고, 거액의 매관매직이 있는 탓에 자신에게는 최종 사험에 합격할 수 없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가난한 문사인 포송령은 과거 시험에서 소망했던 벼슬길에 나가는 꿈을 접고, 부모형제가 성공해서 금의환향 하기를 학수고대하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오랜 세월 타향에서 노숙자처럼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내가 보기에는 포송령은 천부적인 문장가의 재주가 있었지만, 시험운이 없는 것같은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막상 시험장에만 앉으면 갑자기 졸음이 걷잡을 수 없이 쏱아져 혼몽속에 빠지고, 소스라쳐 깨어나면 시험의 마감을 알리는 경험을 한 고시공부를 수다히 하고도 희망을 접은 늙은 수재들의 한탄성을 나는 많이 보아온 것이다. 포송령은 시험장에서 부패한 시험관들이 남몰래 돈으로 합격과 불합격으로 농간을 부리는 것도 없지 않겠지만, 포송령 자신이 전생의 업장으로 인해 번번히 시험에 낙방하는 불운에 처할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걸객처럼 유랑생활을 하던 포송령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큰 지방의 수령노릇을 하던 관직 은퇴자가 포송령의 박학다식하고 출중한 문장력을 인정하여 자신의 정원에 건물 하나를 배정해주고 관직 은퇴자의 자제 등의 개인 훈장으로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포송령은 자신만이 연구할 수 있는 서재(書齋)를 갖을 수 있었고, 얼마간의 월급도 받아 저축할 수 있었다.
포송령은 가종교사 같은 훈장 노릇을 하면서 취미삼아 색다른 이야기를 수집하여 책으로 만들어 갔는 데 그것이 훗날 중국의 명작인 요재지이(聊霽志異)이다.
포송령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고을은 물론 좀 떨어진 고을의 장날에 찾아가 장터에 멍석을 깔아놓고, 대나무에 광고판을 내걸었다. 신비한 귀신 이야기나 여자로 둔갑한 여우 이야기 등을 들려주는 사람에게는 “차와 담배를 답례로 주겠다.”는 광고를 했다. 장터에 온 남녀들은 자신이 겪은 신비하고, 괴이한 귀신의 이야기나 여우 이야기 등을 들려주고 차와 담배를 얻어갔다. 포송령은 신비한 이야기를 간단히 적었다가 자신의 서재로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신비한 이야기를 적어 뫃아 책을 만들었다. 마침내 포송령이 만든 신비한 이야기 즉 요재지이는 많은 독자들을 만들었고,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포송령이 지은 요재지이는 어느결에 중국문화에서 찬사받는 책이 되었고, 훗날 요재지이는 중국 괴기영화의 원전이 되어 많은 영화화가 되어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포송령 원전의 신비하고 괴기한 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황폐화 된 고사(古寺)에서 귀신을 만나는 어느 가난한 선비의 이야기인 섭소천(攝小?) 있고, 섭소천은 천녀유혼(?女幽魂)으로 영화화 되어 인기를 누렸다. 섭소천은 여자 여자 귀신인데, 중국미인인 왕조현(王祖賢)이 주연배우가 되어 더욱 인기의 박수를 받았다.
포송령은 과거 시험에는 낙방거사로 관직의 희망을 접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신비한 귀신과 여우 이야기의 괴기 소설을 만들어 중국 역사에 길이 빛나는 문학의 업적을 남겼다.
앞서 언급했듯이, 포송령, 구우, 김시습 등 출중한 문장가들은 하나같이 소원했던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는 통한으로 불우한 인생을 처해졌지만, 재빨리 생각을 바꾸어 신비, 괴기,몽중사(夢中事)의 소설로 전업을 해 중국 역사와 조선역사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인생을 살다간 그들에 대해 나는 경의를 표해 마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작품을 읽고 상상하면서 만약 그들이 현존하는 인물이었다면, 광대한 중국 대륙의 어느 곳이던 찾아가 예를 갖추고, 신비한 유음(幽陰)의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포송령 등은 어디로 갔을까? 매미가 껍질을 벗고 탈각하여 본체가 떠나듯 지구에 다시 환생하여 인생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또다른 태양계의 지구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행성의 지구가 아닌 영원히 시간이 흐르지 않는 광대무변한 우주의 어느 한 곳 항성으로 떠난 것인가? 원각경에서는 부처님은 이렇게 가르친다.
"진여열반 유여작몽(眞如涅槃, 猶如昨夢, 진여와 열반도 어젯밤 꿈이다.)"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천만번 훈계하신 부처님이 원각경의 끝장에서는 "어젯 밤 꿈일 뿐이라고 하는데, 이 무슨 화두인고?"
나는 서책속에 고인들을 만나기도 하다가 서책을 덮고 혼자 남한강 강가의 바위에 앉아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나는 아직도 천녀유혼(?女幽魂)에 나옴직한 여귀가 막걸리 병을 들고 찾아오는 현실은 없다. 나는 여귀마저 찾지 않는 신세를 자탄하다가도 이 세상에 고통받는 중생에게 거짓말로 환상을 심고 결론은 돈을 빼앗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희망을 주는 스승은 몇이나 될까? 생각해본다. 나는 남한강 강가에서 홀로 앉아 유음(幽陰)의 세계에 명상할 때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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