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9일 한국과 멕시코의 월드컵 조별 예선전이 벌어지던 날, 월드컵 한국 경기를 보면서 참 갑갑함을 넘어 분노까지 치올랐다. 고질적인 백패스만 남발하는 경기, 투지도 열정도 보이지 않는, 고교 축구보다 못한 대표팀 경기에 기어이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월드컵 한국 국가대표전을 관람하다가 채널을 돌리는 일은 평생 처음이었다.
대표팀 감독은 홍명보, 홍명보는 10여 전에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에 참전했다가 말아먹은 경력이 있었다. 국민은 그때 홍명보를 알아 보았지만, 축구협회는 홍명보의 능력을 믿었던 모양이다. 선수를 잘했다고 해서 감독까지 잘하란 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선수진은 화려했다. 외국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우글거리고, 유럽리그 득점왕에 최우수 수비수상을 받은 선수까지, 게다가 조별리그 편성은 역대급으로 만만해 보였다. 대충만 해도 32강 진출은 따놓은 당상이고 비기기만 해도 32강 진출이 확정될 것이었다.
그라운드에서 홍명보의 마법은 화려했다. 유럽리그 득점왕은 후보선수로 쓰고, 최약체 팀을 상대로 슛 다운 슛은 한 번도 못 했다. 홍명보의 마법은 그냥 승리를 상납하는 것을 넘어서서 K-축구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게 했다. 세계에서 K-마크가 붙으면 최상품으로 쳐주는 데 축구에 붙은 K는 세계 앞에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기호였다. 그게 홍명보의 능력이자 마법이었다.
지구 반대편의 월드컵 경기장에서 수많은 세계 시민을 불러 놓고 그 앞에서 K-죽을 쑤는 홍명보 감독을 보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오버랩되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홍명보 감독의 마법 능력치는 누가 더 높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마법 능력치 또한 K-마법이라 할만 했으니, 세계의 시민들이 우러러볼만 했다.
윤석열은 대통령이었고 이재명은 감옥에 갈 운명이었다. 윤석열은 대한민국에서 온갖 권력을 손아귀에 쥔 궁극의 권력자였다. 그러나 윤석열도 홍명보처럼 검사를 잘한다고 해서 대통령까지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어느 날 심심했던지 윤석열은 화려한 마법진을 시전했다.
윤석열은 청와대 옥좌에 앉아 이재명이 있다는 민주당사 위에 빨간 망토를 덮었다. 흡사 장미꽃을 비둘기로 바꾸려는 마법사처럼. 마법의 보자기가 민주당사 위에 덮였다가 걷어내면 민주당사는 감옥으로 바뀌던가 지옥으로 변할 터였다. 짠~하고 보자기를 걷는 순간 민주당사는 감옥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 대단한 윤석열의 마법이었다.
그러나 현실을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감옥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 감옥 안에는 이재명이 아니라 윤석열이 갇혀 있었다. 감옥에 있어야 할 이재명은 청와대 옥좌에 앉아 있었다. 마법사도 가끔 실수를 해서 비둘기 대신 코끼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건 마법사의 최대 능력치가 발휘된 궁극의 마법이던가 아니면 최대의 실수였다.
한국 사람은 변화를 기피하고 도전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10여 년 전에 패배가 검증된 인물을 감독으로 쓴다. 새 인물을 뽑으려니 절차도 복잡하고, 귀찮고, 내 말을 잘 안 들을 수도 있다. 집안의 후보를 써야 하지만 낙선할 수도 있고 후보를 주어오면 정권을 안 뺏길 수도 있고 내 맘대로 부려먹을 수도 있다. 그래서 구관이 명관이다.
모든 문제는 고여 있는 것에서 출발했다. 실패해도 아무 문제 없고, 패배해도 다음에 또 나갈 수 있고, 햄버거집에서 쿠데타를 준비하며 뻘짓을 해도 우리 편이기에 비판도 비난도 하지 않고 넘어갔기에, 흐르는 물은 고이고, 고인 물은 썩는 것이다. 홍명보 팬이라서, 윤석열 지지자라서, 이런 이유로 날 선 비판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세상은 쉬지않고 우리를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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