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간교한 전술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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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간교한 전술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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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 사진=네타냐후 홈페이지 캡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제사법재판소로부터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그는 자신의 통치 기간을 늘리기 위해 전쟁이라는 도구를 이용,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이른바 ’집단학살’(Genocide. 제노사이드)의 주범으로 이(李)j 있다.

무슨 행위를 하든 뒷배경이 되어주는 미국의 막강한 힘을 이용,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평화전도사(Peacemaker)로서의 역할 선호를 십분 이용, 자신의 권력 유지에 힘을 쏟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중재로 일단 가자지구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이슬람 정파(政派) 하마스(HAMAS)와 휴전하기로 했다.

이른바 가자 휴전은 진정한 ‘적대감의 종식’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과 지속적인 파괴 캠페인의 전략적이고 냉소적인 변화에 불과하다.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이 발표되자마자 무차별 공격은 일단 삼가면서도 지난 10월 10일부터는 전술을 교묘하게 바꿨다.

무차별 공습에서 가자지구 주택들과 중요한 인프라에 대한 치밀하게 계산되고 조작된 철거 작업으로 모습을 바꿨다. 겉으로 보기엔 공습(air strikes)은 사라졌으나, 휴전 상태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위성 이미지를 통해 시간 단위로 외부 세계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게 가자지구 내부에서 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철거 작업이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전투부대는 외곽으로 빼고, 마치 재건 부대인 것처럼 이스라엘 병사들로 구성된 선봉대가 이른바 옐로 라인(Yellow Line) 동쪽 지역으로 진격,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이후에도 남아 있는 생명체들을 뿌리째 해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의 네타냐후의 속셈은 팔레스타인자치구 가자지구를 완전 점령, 이스라엘의 영토로 만들겠다는 위장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10월 10일부터 11월 2일까지 이스라엘은 특수 군사 공병부대를 가자에 투입, 1500채의 건물을 철거 작업을 수행했다.

휴전 협정은 가자지구를 두 개로 나눴다. 하나는 이스라엘 집단학살의 생존자들이 갇혀 있는 옐로 라인 서쪽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군대가 적극적인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처벌 없이 계속 작전을 수행하는 곳으로 라인 동쪽이다.

이스라엘이 합의된 2단계 휴전 이후 진정으로 이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를 하겠다는 진정성이 있다면, 이미 황폐화된 이 지역을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파괴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까지 이스라엘의 이 같은 교활한 전술 변경은 가자지구를 영원히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할 수 없게 초토화를 완성하겠다는 네타냐후의 야욕이 드리워져 있다.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인프라를 표준화하고 있으며, 나아가 남부의 칸유니스와 라파를 끊임없이 표적으로 삼아 지속적인 공습과 해군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있어 휴전은 ”종이 위에 적힌 글씨“에 불과하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휴전이 시작된 이후 26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됐고, 632명이 부상을 입었다. 전투는 휴전 이후에도 형태를 달리해 계속되고 있다.

‘눈 감고 아옹’하는 식의 휴전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 휴전은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휴전이며,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군의 활동은 종횡무진(縱橫無盡)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사실상 가자지구는 국제법 밖에 놓여 있다. 네타냐후의 위장술과 미국의 끊임없는 적극적인 지지가 비극의 연속을 지탱해 주고 있다. 가자지구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폭력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948년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유적지 위에는 평화가 유지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등장으로 이곳은 군사적 계산법으로 국경선이 그어지면서 평화는 사라졌다. 가자지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로 항상 더 넓은 지리적 사회경제적 공간에서 원활하게 통합되었으나, 이스라엘의 존재로 산산조각이 났다.

영국이 가자지구(1920~1948년)로 이름을 짓기 전, 오스만 제국은 이곳을 이스라엘의 더 큰 무타사리페이트(Mutasarrifate)인 예루살렘 독립지구 내의 하위 지구(Gaza)로 간주했다. 하지만 가자지구에 대한 이같은 영국의 지정조차도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과 분리되지는 않았었다. 새로운 지구의 경계가 북쪽 알마즈달(Al-Majdal, 오늘날의 아쉬켈론-Ashkelon), 동쪽의 비르알사바(Bir-al-Saba, 오늘날의 비어세바-Beersheba), 이집트 국경의 라파 라인(Rafah Line)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1949년 휴전 협정에 따라, 나크바 이후(Post-Nakba)의 경계를 성문화한 후 가자지구의 축소 경계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자지구의 집단적 고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광활한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전체 면적의 1.3%에 불과한 매우 좁은 땅으로 축소됐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 77년이라는 긴 세월 살아온 20만 명 이상의 절망적인 난민들이 있다.

1967년 6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영구적으로 점령했을 때,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및 아랍 지역의 나머지 지역과 분리하는 경계선은 지금의 가자지구를 만들어 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Gaza Strip)를 점령한 후,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더욱 제한하고, 가자지구를 다시 여러 지역으로 쪼갰다. 이러한 내부 전선의 규모와 위치가 만들어진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팔레스타인 사회의 정복을 보장하기 위해 분열시키는 일이었고, 이스라엘 군사 수용소와 정착지 주변에 군사적 완충 지대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1967년부터 가자지구에서 분쟁을 벌이면서 21개의 불법 정착지와 군사 회랑, 검문소를 건설해 사실상 이곳을 양분(兩分)하고, 구통의 약 40%를 몰수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 북부와 동부 국경을 가로지르는 강력한 완충 지대(Buffer Zone)라는 또 다른 내부 국경을 만들었다. 이른바 ‘죽음의 지대’(Kill Zone)로 불리게 됐다. 이곳에 접근하려는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됐다.

여러 세대에 걸쳐 감금과 분열과 싸워온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번 새로운 휴전은 그들의 오랜 다세대에 걸친 억압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비호(庇護) 속 네타냐후에게 국제사법재판소의 체포영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며, 집단학살과 폭력, 인종청소는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세계인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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