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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출마를 선언한 정몽준(鄭夢準.무소속) 의원은 화려한 인생항로를 밟아왔다.
현대그룹이라는 '명가'의 후광에다 일찍부터 시작된 '제왕학 학습',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학벌, 경제인.체육인.정치인으로서 다양한 경험 등을 거치며 지도자의 수업을 쌓아왔다.
이러한 그의 대선 입지는 여타 정치인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치에만 매달려 따낸 것이라기 보다는, 최근까지 기업인과 축구인으로서 활동 결과가 토대가 되고 있어 일반 정치인의 궤적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죽음과 마찬가지로 공직이라는 것이 신상에 덮쳐오면 도망갈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처음부터 대통령직을 겨냥, 행보를 축적해온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정 의원의 의식의 심연에는 오래전부터 대통령의 꿈을 키워온 일관된 흐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작고한 부친 정주영(鄭周永)씨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14대 대선에 출마, 고배를 마셨던 정주영씨의 실패를 후대에 실현해야 한다는 부담과 의무가 늘 정 의원 주변을 배회했다고 한다.
정 의원은 아버지를 검소하고 낙천적인 사람으로 기억한다. 엄하다는 일반적인 평과는 달리 외국에 나갈 때마다 엽서를 보내는 '자상한 아버지'였다는 게 정 의원의 회고. 주변에선 정주영씨도 정 의원에게 각별한 사랑을 보였다고 전한다. 정주영씨는 일찌감치 '머리 좋은' 정 의원을 자신의 '정치 후계자'로 삼아 제왕학 학습을 시켜왔다. '정주영 집안'의 정-경(政-經) 양축 가운데 정치 대들보로 정 의원을 지목한 것이다.
정 의원은 지난 88년 37세의 나이로 '현대 왕국'인 울산 동구에 무소속 출마, 등원에 성공한 뒤 내리 4선을 지내며 중진 의원으로 입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원내에선 특정 정당에 입당하는 대신 내내 무소속의 자리를 지키며, 정쟁에 개입될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왔다.
여당에 입당하라는 몇차례 권유를 뿌리치고 무소속을 고수한 것은 현대라는 기업경영이 정치권의 외풍을 받을 것을 우려한 때문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진작부터 현재 정 의원이 내세우는 '초당적' 이미지 관리를 해온 셈이다. 4선의원이면서도 '참신성'이 얘기되는 것도 무소속으로서 이같이 여야의 정쟁에서 비켜서 있었던 덕분이다.
정 의원은 92년말 정주영씨의 대선 실패에 이어 김영삼(金泳三) 정권 당시 '현대 초토화' 작업이 한창이던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축구에서 활로를 찾았다. 그는 93년 대한축구협회장에 피선, 월드컵대회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재기를 도모했고,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과 2002년 월드컵대회 조직위원장 등을 맡아 국제적 지명도 제고와 함께 국내 여론의 중심권에 서는 데 성공했다.
이에 앞서 정 후보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도미, 미국 MIT대와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데 이어 곧바로 82년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취임, 재계 경험을 축적했다. 중앙중.고등학교 때의 정 후보는 '리더십있는 모범생'으로 동창들에 의해 기억된다. 중앙고 1학년때는 490명중 84등에 그쳤던 것이, 문과를 선택한 2, 3학년 때는 160명중 5등과 9등을 하는 등 성적이 급상승했다.
교사 지도사항에는 '노력형', '온순하고 성적이 우수하다'로 돼 있다. 중앙중학교에 입학하던 지난 64년 받은 지능검사(IQ)에선 '131'로 적혀 있다. 중.고교때는 뼈가 다섯번이나 골절될 정도로 장난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선지 당시 별명도 '몽준이'라는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멍청이'였다고 한다.
대학때는 1학년 학기말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돼 유급당하는 바람에 1년을 더 다니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대학때 정신적으로 풀려 절도 있는 생활을 못했다'고 솔직히 시인하고 있다.
정 의원은 스스로를 '뼈대는 경제인이고 피는 정치인이며 팔.다리는 체육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축구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3대축이라는 인식에서다. 특히 월드컵 덕분에 정 후보와 축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월드컵 4강 신화가 부각되면서 여론 지지도가 급상승, 대선 출마의 든든한 기반이 됐다는 평이다.
정 의원으로선 92년 대선 실패 경험도 든든한 자산이 되고 있다. 통일국민당의 핵심으로 대선 속성을 속속들이 체험한 데다, 이른바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초원복집사건 폭로 등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체험했다. 또 당시 정주영씨가 재력으로 선거운동을 벌이다 좌절을 맛본 점을 감안한듯 그는 현대 지원설에 선을 그으면서 자원봉사자 중심으로 대선운동을 하고 법정선거비용을 준수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 의원은 한때 FIFA 회장직을 노린 적이 있다. 'FIFA 회장에 도전하든, 대통령 에 도전하든 둘중 하나는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가 결국 대선쪽으로 키를 잡았다. 그로선 일생일대의 사활을 건 미증유의 도전인 셈이다.
하지만 그의 대선 가도에는 험난한 역정이 예고돼 있다. 권력과 금력을 함께 쥐는 데 대한 뿌리깊은 사회적 반감과 모친의 신상, 병력(病歷)을 비롯한 주변문제에 대한 검증, 정치력 및 자질 한계론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측근들은 '그만의 노하우가 있다'며 극복을 자신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황정욱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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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준 인물탐구 > ① 인간 정몽준
(서울=연합뉴스) 황정욱기자 = 정몽준(鄭夢準) 의원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늘 정상가도를 달려온 인생역정 만큼이나 지적이고 세련됐다는 평이 있지만 '현대 집안' 특유의 저돌성과 냉혹함도 그의 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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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북이마라톤대회에 참석,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좌로부터 정몽준 의원, 장명수 한국일보사 사장, 장정자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 ||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도미, MIT와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학력에,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2002년 월드컵 조직위원장, 현대중공업 고문, 4선 의원 등의 화려한 경력을 갖추고 있다.
그의 부지런함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게 측근들의 설명. 그의 스케줄을 20년 가까이 하루 10-20개의 빼곡한 일정으로 채워져 왔다. 타고난 머리와 세습된 부(富), 습성화된 근면정신이 정 후보의 한 측면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이면에도 갖가지 얘기와 억측들이 적지않다. 부잣집 아들 특유의 오기와 고집, 복잡한 가계로 인한 미묘한 심리구조, 친절함과 냉정이 공존하는 양면적 성격 등이 다면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선 부친인 고(故) 정주영씨의 '그늘'이 그의 인생 전반에 깊이 투영돼있다고 말한다. 정주영이라는 거목(巨木)을 수범으로 인생수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정 의원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좌절감도 대부분 부친과 연결돼 있다.
'선친이 돌아가시고 집안에 여러 어려운 일들이 벌어졌다. 선친이 워낙 낙관적이어서 사후 문제에 대해 너무 낙관적으로 보셨다'. 형제간 재산분쟁인 '왕자의 난'을 두고 한 말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많은 번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어릴 때 한방을 쓴 두살터울 형인 몽헌씨와의 대립이 그로선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대학때 낙제를 해서 1년 더 다니게 됐다. 그때 선친이 한숨을 푹 쉬시면서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또 요즘 나오는 어머니 관련 이야기도 나로선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듯 그는 체질적으로 신중함이 배어 있다. 단정적 단어 보다 추상적이고 비유적 단어로 일관하는 그의 어법도 이런 내면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라는 주변의 말에 이렇게 반박한다. '배고파본 적이 있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고생은 육체적인 것 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있다. 정신적인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그가 겪었던 심적 고통을 반영한 대목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중앙중학교 생활기록부 1, 2학년 담임의견에는 '침착치 못하고 작란이 심하며 생활주변의 정리가 되어있지 않음'이라고 기재돼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그는 '정서적 안정감'을 중요시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는 사람이 가장 부럽고, 젊은 의원들이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할 때는 부럽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정 의원을 만나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화술이 다소 어눌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계속 얘기하다보면 논리적이고 감칠 맛이 있다는 느낌도 갖게 된다. 그가 토론을 좋아하는 것도 단시간 내에는 설득이 쉽지 않지만 시간을 두고 하게 되면 상대의 인정을 받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학교 진학때 당대의 명문이던 경기중학교에 지원했다 떨어진 경험을 갖고 있다. '첫날 3문제만 틀려서 집안에선 1등 입학이라고 들떴다. 그런데 다음날 쇠꼬챙이에 찔려 크게 다쳤다. 체력장에서 슬슬하다 떨어졌다'는 게 정 의원의 설명. 중앙 중.고교 동기들은 정 후보가 리더십이 있고 끈질겼던 것으로 회고한다.
월드컵을 유치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특유의 추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1주일에 한번꼴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드나드는 강행군을 하며 '전방위 로비력'을 선보였다. 물론 그의 주머니에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의 독주 스타일 때문에 잡음이 빚어졌다는게 주변의 설명. 축구협회 관계자들은 뒷전으로 물러나는 엄한 상명하복 체제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남의 말을 듣거나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는 성장환경탓에 '정 후보가 존경하는 사람은 부친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그는 재벌 2세라는 말에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지인들은 그를 '짠돌이'라고 평가하며, 그 스스로도 '내가 인색하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죠'라고 물을 정도다. 한 측근은 '정 후보는 돈에 관한한 진퇴양난이다. 돈을 많이 쓰면 '돈질'을 한다고 하고, 돈을 안쓰면 짜다고 욕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자신이 구축해온 영역에 대해 스스로의 능력과 자질, 노력에 무게를 많이 두는 편이다.
그의 대선 출마의 변은 세네카의 공직자론에 압축돼 있다. '일부러 좋아해서 죽음을 불러들이는 사람은 없겠지만 누구라도 죽음에서 피할 수 없다. 공직이라는 것도 신상에 덮쳐오면 도망갈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와 함께 그의 정치관은 'Public Service'(공적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사익을 배제하고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가치관이다.
울산 동구에서 내리 4선을 하면서 무소속으로 일관, 정쟁의 틈바구니에 피해 있으면서 절치부심한 '공직'을 앞에둔 그의 의지는 단호하다. '승리의 여신은 나이든 사람보다 젊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이를 믿는다'는 확고한 믿음이다. 이번 대선은 그에게는 부친이 못다 이룬 '대망(大望)'을 성취해 보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hjw@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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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북이마라톤대회에 참석,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좌로부터 정몽준 의원, 장명수 한국일보사 사장, 장정자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 ||
< 정몽준 인물탐구 > ② 정치철학
(서울=연합뉴스) 추승호 기자 = 정몽준(鄭夢準) 의원은 국가와 여야 정당을 곧잘 '부모'와 '형제'에 비유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여러 아들이 각자 개성과 소질을 키워가며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싸우는 것은 바라지 않듯이 정당들도 국가란 틀 안에서 경쟁자란 인식을 가져야지, 적이란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싸우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여야 정당이 '파트너십'을 갖고 모든 문제를 대화와 타협, 조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 의원은 '정치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는 여러 집단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라며 '결국 정치는 싸움을 말리는 것인데, 지금 우리 정치는 자신들의 싸움에 침몰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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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7월 10일 제175회 국회 통일, 외교, 안보 분야 대정부질문^^^ | ||
정 의원은 또 '우리나라가 큰 나라도 아니고 냉전시대도 지나간 만큼 여야 정당, 후보간에 정책이 서로 다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며 '특히 남북관계와 경제발전, 부정부패 척결, 지역감정 해소에 있어서는 여야 모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책에 큰 차이가 날 수 없는 상황에서 여러 정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로 '국가의 안정을 위해 건전하고 믿을만한 집권 대체세력이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형태로 '국민통합 정치'와 '초당적 정치'를 들었다. 국민통합은 물론 71년 대선이후 고질화된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다.
초당적 정치는 미국의 예를 들었는데 미국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이유는 바로 대통령이 자신이 소속된 정당에 얽매이지 않고 초당적으로 정치를 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정 의원은 '초당적 대통령이라고 해서 대통령 보고 탈당하라는 것은 아니다'며 '책임정치 구현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대통령이 초당적이면 결국 소속 정당의 지지도도 올라가 정권 재창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정 의원은 이와함께 '정치의 다운사이징(Down Sizing)'도 내세우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그는 자신이 준비중인 독자신당의 중앙당 규모를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없애는 내용의 '원내정당' 구상을 밝힌데 이어 14일에는 한달에 몇천만원씩 운영비가 들어가는 지구당 조직도 간소화해 '협의체' 형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ch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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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7월 10일 제175회 국회 통일, 외교, 안보 분야 대정부질문^^^ | ||
< 정몽준 인물탐구 > ③ 국정역량
(서울=연합뉴스) 황정욱기자 = 정몽준 의원의 국정 역량은 아직 미검증 상태다. 그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사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행정부 경험이 전무한 데다 4선의 중진의원이지만 줄곧 무소속으로 재직, 당직이나 국회직을 맡은 적이 없어 국정 역량에 관한한 미지수라는 물음표가 따라 다닌다.
다만 현대중공업 운영과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으로 월드컵을 유치한 성과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의 역량을 비교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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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9월 25일 상암 월드컵 주경기장 상량식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 ||
주변 사람들은 그의 장점으로 저돌성과 추진력을 꼽고 있다. 뒤늦게 월드컵 유치전에 뛰어들어 한.일 공동개최권을 따낸 것이 대표적 사례로 지목된다. 다만 업무처리의 스타일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또 그가 재벌 2세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는 점에서 사회 주류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다소 보수적인 그의 대북정책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확고한 안보태세와 국민적 합의.지지 속에 대화와 협력을 추구하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대해서는 적극적이다.
FIFA 부회장으로서 폭넓은 국제경험을 축적한 그로선 외교분야가 강점이 될 수 있다. 그는 미국 유학파 출신답게 전통적인 한미 신뢰관계를 중시하면서 국익 우선의 실리외교론을 내놓고 있다.
일본에 대해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구축을 피력하고 있으나 역사교과서 왜곡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 교과서 왜곡 파동당시 통외통위원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이를 질타한 바 있다.
재벌출신 답게 그는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대한 지지가 확고하다. 기업규제의 최소화, 투명한 경제정책, 국제적 수준의 경제규범.제도 마련, 고부가가치 산업 적극 육성, 벤처산업 지원 확대 등이 경제관의 핵심이다. 복지 분야에선 근로자의 자발적 근로 참여를 통한 복지참여론을 펴고 있고, 환경은 그가 특히 중시하는 분야로 환경보존을 위한 다각도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환경 중심 시각을 갖고 있다.
정치분야에선 그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새 정치를 위해 원내정당 체제로의 전환을 통한 고비용 저효율 정치 타파와 의회중심 정치, 초당적 국정운영, 국민통합 등을 내놓고 있다. 이와함께 책임총리제 실시 등을 통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극복과 권력기관 중립화 등도 그의 정치공약이라 할 수 있다. hjw@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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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9월 25일 상암 월드컵 주경기장 상량식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 ||
< 정몽준 인물탐구 > ④ 인맥
(서울=연합뉴스) 황정욱기자 = 사회 곳곳에 포진한 '정몽준(鄭夢準) 사단'의 규모는 어림잡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정.재계와 체육계를 비롯, 개인적인 연을 맺고 있는 인사들로 넘쳐난다. 다만 이들 인맥이 조직화 단계로는 정비돼 있지 않아 대선전에서 실제 가동될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다.
정 의원은 사석에서 '대학교수들을 포함, 각계 전문가 600여명이 자발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한다'면서 '그분들이 또 다른 분들을 소개해주고 있어 그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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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2월 19일(火) 강남구 역삼동 선릉빌딩에 마련된 鄭氏전국연합회 사무실 현판식에서^^^ | ||
정 의원의 주변인사들 중 우선 '현대 인맥'과 축구를 통해 결집된 인물들이 실질적인 지원그룹화활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정(鄭)씨 종친회와 구 통일국민당 인사, 후원회 멤버, 중앙고 및 ROTC 출신, 정 의원 지지모임인 '정사랑' 등이 뒤를 받치고 있다.
후원회장 이홍구(李洪九) 전 총리와 이수성(李壽成) 유창순(劉彰順) 박태준(朴泰俊) 전 총리, 한승주(韓昇洲) 전 외교장관, 김동길(金東吉) 전 연대교수, 소설가 박경리씨, 연기자 최불암 강부자씨 등 평소 친분있는 각 분야 지도급 인사들도 정 의원의 잠재적 우군이다.
재야 인사 일부도 정 의원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전문이며,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와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 이들중 일부는 지난해 정 의원의 신당 창당설이 나돌았을 때부터 참여 멤버로 거론됐다.
중앙고 인맥도 만만찮은 세를 형성하고 있다. 채문식(蔡汶植) 전 국회의장과 김각중(金珏中) 전경련 회장, 김찬국(金燦國) 전 상지대 총장, 정진석(鄭鎭奭) 대주교, 남궁진(南宮鎭)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 정계, 학계, 재계 등에 상당수 인맥이 포진해 있다.
정씨 종친회에선 중앙종친회장인 정호용(鄭鎬溶) 전 의원과 정호선(鄭鎬宣) 전 의원 등이 맹렬히 뛰고 있다. 종친회는 시내 강남에 사무실을 마련, '정몽준 대통령만들기'에 전력하고 있다.
환경운동가 최 열씨와 강신옥 변호사도 정치조언 그룹이고, 강 변호사 사위인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출신 홍윤오씨는 정 의원 캠프에 이미 합류했다. 정 의원 진영엔 정치부 기자 등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 상당수 포진, 대언론관계 등을 맡고 있다.
정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울산대학교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대선 플랜'에 조언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현대 산하 각종 연구소의 '싱크 탱크화'도 가능하다. 정치권 일각에선 정치원로인 K씨가 정 의원의 대선 행보를 조언하고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와 함께 장인인 김동조(金東祚) 전 외무장관쪽 인맥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주영(鄭周永)씨 대선 출마 당시 함께했던 구(舊) 국민당 출신들도 대기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전남 여수의 구 국민당 지구당 당직자들은 정치입문을 검토하는 모 변호사에게 지구당 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는 등 이들은 벌써 '자발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공개된 조직으로는 후원회가 대표적이다. 월드컵 바람을 타면서 후원회원이 2만명에 육박하는 메머드급으로 팽창했다. 특히 축구계를 비롯한 스포츠계도 정 의원의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국민적 인기도가 높은 히딩크 감독이 '곁에만 있어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농담도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정 의원의 아침회의 멤버인 이달희 보좌관과 축구협회 김상진 부회장, 조중연 전무, 정종문 자문위원, 남광우 사무총장 등은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정몽구(鄭夢九) 현대차 회장 등 그의 형제들은 조심스럽다. 그러나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움에도 이들도 어떤 식으로든 정 의원의 대선행보와 연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hjw@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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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2월 19일(火) 강남구 역삼동 선릉빌딩에 마련된 鄭氏전국연합회 사무실 현판식에서^^^ | ||
< 정몽준 인물탐구 > ⑤ 가족관계
(서울=연합뉴스) 김범현기자 = 성공적인 월드컵대회 개최와 국민지지도 상승 등으로 입지를 다지기 이전 정몽준(鄭夢準) 의원에겐 재계의 거목이었던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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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출마 연설 직후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있는 정몽준의원 내외^^^ | ||
우리나라 실물경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현대 가(家)'의 구성원인 정 의원은 고 정주영 회장의 직계가족을 이루는 '몽(夢)'자 항렬 아들 8명 가운데 6남이며, 전체 8남1녀로 보면 7번째로 태어났다.
정 의원의 가계에 대해 세인의 입에 항상 오르내리는 화제는 '생모가 누구냐'는 것. 고 정 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가 생모가 아니라는 '소문'이 기정사실로 굳어졌으나 정 의원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선 현대측도 일절 함구해왔다.
형제 가운데 맏형인 몽필씨와 넷째 형 몽우씨는 이미 타계했으며, 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재계에 투신, 각각 현대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둘째 형인 몽구씨는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을, 셋째 형인 몽근씨는 현대백화점 회장, 바로 윗형인 몽헌씨는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아랫동생인 몽윤 및 몽일씨는 각각 현대해상화재와 현대기업금융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다.
생존해 있는 정 의원의 숙부들도 각각 전 한라그룹(정인영 명예회장), 성우그룹(정순영 명예회장), 현대산업개발(정세영 명예회장), KCC(정상영 명예회장)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을 이끌고 있다.
정 의원의 핵가족은 부인 김영명(金寧明.46)씨와 슬하에 2남2녀. 부인 김씨는 부친인 김동조(金東祚) 전 외무장관의 2남4녀 가운데 막내딸로 초등학교 3학년때 김 전 장관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뒤 17년간 외국에서 유학했다. 특히 명문 웨슬리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정 의원은 미 MIT대 경영대학원 재학시절 친척의 소개로 부인을 만났으며, 1년 정도의 연애기간을 거쳐 지난 79년 결혼에 골인한 뒤 기선(20.남), 남이(19.여), 선이(16.여), 예선(6.남) 등 네자녀를 뒀다. 기선씨와 남이씨는 각각 연세대 상경계열 2년과 인문계열 1년에 재학중이며, 장남 기선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학군단(ROTC)을 신청했고 장녀 남이씨는 180㎝인 아버지 보다도 키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 고교과정에서 유학중인 선이양은 4명의 자녀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에서 출생해 현재 이중국적 상태이며, 정 의원은 '부모인 나로서는 한국 국적을 가지라고 권유하겠으나, 최종 판단은 본인이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늦둥이인 예선군은 정 의원이 월드컵 유치를 위해 부인과 함께 잦은 해외출장을 다니던 중 생긴 '월드컵 베이비'이며, 축구인인 아버지를 닮아 차범근 축구교실에 다니고 있다. kbeom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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