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칸트리 제4의 중국 싱가포르(Singap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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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칸트리 제4의 중국 싱가포르(Singap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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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저 정돈된 도시국가(26)

^^^▲ 싱가폴 지도
ⓒ 뉴스타운^^^

계절마저 정돈된 도시국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싱가포르는 이글이글 타는 듯 한 무더위 천국이다. 바닷가에 면한 서늘하고 깨끗한 분위기하며 고목나무와 온갖 열대수들이 맑고 서늘하게 하느작거리고 있는 정경을 두리번거리노라면 마치 초가을 들국화나 코스모스가 자지러지게 핀 한국의 시원한 들판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땅으로 내려서는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상상이었던 것인가를 싱가포르의 기후는 무참스레 증명하기 시작한다. 숨 막힐 듯 한 더위와 후덥지근한 바람, 소금기를 머금은 습기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공항을 벗어나 시가지에 들어서면 문득 탄성이라도 지르고 싶을 만큼 깨끗하며 균형 잡힌 도시의 몸매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하는데 오호라, 계절마저 싸안고 질서를 이룬 도시국가의 진면목이 가슴을 두들기는 것이다.

방콕의 플로팅마켓, 방글라데시의 혼합스런 전후적 무드, 거지생활에 가까운 인도농촌과 시민들의 생활, 이런 것들을 보고 돌아다니다가 싱가포르의 잘 정돈된 시가지를 보게 되자마자, 지저분한 시장바닥으로만 돌아들다 우아한 민가들이 들어 선 도회지를 방문한 으쓱거리는 느낌 같은 것이 짙게 베여들게 마련이다.

실상 외국여행을 어느 정도라도 다녀 본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기후가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우선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 년 내내 평균 섭씨 20도 정도의 따스한 날씨가 계속되는 남태평양의 피지 섬을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지역은 일 년 동안 무더운 여름만 계속되거나 일 년 내내, 아니 지구가 존재하는 동안 지겨운 겨울만이 계속되는 지역도 얼마든지 많은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 속에서 네 계절이 스스로 지닌 아름다움을 즐기고 네 계절의 생성과 변화를 통해 우리는 변화 있는 자연처럼 변화된 삶의 양식을 터득하며 살아가는 하늘의 혜택을 받은 것이다.

싱가포르는 북위 1도여서 적도에 근접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스리비자야 왕자가 폭풍우를 피해 이 섬에 상륙했을 때 괴상한 동물을 보고 사자로 오인한 결과 섬 이름을 싱가푸라(Singapura-사자의 도시)로 부르게 된 데서 유래한다.

싱가포르의 근대사는 영국의 스텐포드 래폴즈(Stanford Raffles)경이 새로운 상업기지를 찾기 위해 이 섬에 착륙한 1819년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곳의 막강한 상업적 잠재력을 인식하고 같은 해 2월6일 말레이시아의 지방왕족인 술탄과 영국 무역기지의 설립에 합의하고 다음 해 싱가포르의 자유항을 선언해 영국의 동양무역 거점으로 동인도회사를 설립, 이 섬을 관장하게 됐다.

20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군사기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의 점령통치하에 쇼오난섬, 쇼오난시로 불렸다. 전후 1959년, 영국연방내의 자치령이 됐으며 1963년 말레이시아연방 라만(Tunku Addul Rahmen)수상의 제창에 따라서 인도네시아의 반대를 무릅쓰고 말레이시아연방 11개주와 사바, 사라와크와 더불어 새로운 말레이시아연방이 탄생됐다.

그러나 인종적, 경제적 대립으로 1965년8월9일 말레이시아연방에서 탈퇴하여 완전주권공화국이 됐고 117번째로 UN 가맹국이 됐다. 이로써 싱가포르는 1819~1959년까지 약 140년 동안 계속된 영국의 식민지 통치로부터 완전 독립하게 된 것이다.

^^^▲ 싱가포르의 상징 해룡분수
ⓒ 뉴스타운^^^
정치에 무관심한 나라

동남아의 도시는 대체로 타이페이를 빼고 고층건물이 적다. 방콕도 사이공도 인도의 대도시도 모두 그렇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 서울만한 대도시의 면모를 가진 도시란 찾아보기 힘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홍콩과 싱가포르는 비교적 고층건물이 많다.

일본은 지진의 위협 때문에, 그리고 다른 도시는 경제적 문화적 여건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서울의 고층화현상이 문화적으로 좋은 것도 아니고 경제성장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도 아니기 하지만....
그런데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그들 주민이었지만 세 번째 방문할 90년대 중반 그 무렵에 고르바죠프의 개방정책에만은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천안문사태의 중국에 대해서도, 그것을 어디서나 실감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 주민의 75,3%(126만9천명)가 중국인이고, 나머지가 말레이시아, 인도, 파키스탄, 유럽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싱가포르를 '제4의 중국'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싱가포르의 번화가는 국제무역 중개도시답게 별의별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형형색색의 괴상한 광경들을 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나그네를 질리게 하는 것은, 홍콩이 일본제품의 독점판매장 같은 인상을 주는데 반해 싱가포르는 구라파나 중국 상품이 더 판을 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싱가포르가 자랑하는 것은 3 C(Clean)에 있다. 정치가 맑고 깨끗하고, 공무원이 그렇고, 거리가 또한 그렇다는 것은 옥스퍼드가 낳은 수재 이광요 전 수상의 집념의 소산으로 굳게 터 잡고 있다.

그의 부친이 손수 구둣방을 경영하면서 어디까지나 수상은 수상이고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일화를 듣게 되는 것도 싱가포르가 가진 정치의 맛깔스런 단명 인양하여 싱그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처럼 소리 내 부패방지를 외치거나 투명운동을 벌리지 않아도 제도적으로 그렇게 정착됐다. 싱가포르가 서울보다도 작은 도시국이면서 하나의 신흥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고 분쟁도 많았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조호르(Johore)라고 하는 폭 1 킬로 정도의 수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1946년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된 이래 세계 제1의 고무시장으로 유명하게 됐다. 그리하여 싱가포르는 극동과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인도 및 말레이반도 전역을 연결하는 무역의 주요거점도시인 동시에 동남아 조약기구(SEATO)의 중요기지로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주목받는다고는 해도, 총인구는 2백만 정도에 불과하고 총면적은 581평방 킬로에 그치며 그래서 서울보다 작은(서울613.40평방 킬로)데다, 연평균 기온이 섭씨 27도로 상하(常夏)인 반면, 강우량이 연간 2천4백밀 리여서 매일같이 스콜이 있는 전형적인 적도 우림기후다.

우리나라의 기후에 생활습성이 굳어진 사람이라면 금시발복의 운이 트인다하더라도 견뎌내지 못하고 되돌아 오려할 것이 틀림없는 일이리라.

짧은 역사의 현장 센토사

싱가포르 시가지에서 0.5킬로 남쪽이 떠 있는 섬, 녹음방초를 이고 서늘함을 손짓하는 낙원이다. 일러 세토사(Sentosa). 말레이어로 프라칸마티라 불러 '죽음을 등진 섬'이라 했다. 이 이름은 영국식민지 시대에서 1968년까지 계속됐다. 그렇게 이름은 불길하더라도 관광입국을 선언한 정부가 자원을 방치해 둘 까닭이 없다.

실상 시가지로부터 가깝고 더구나 천연 그대로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코발트블루에 빛나는 바다가 둘러싸인 700여 에이커의 땅덩어리는 레저 랜드에 가장 적합하게 돼 있다. 1968년부터 막대한 자본투하가 이뤄졌다. 싱가포르 본섬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마운트 페버에서 센토사까지 길이 1.8킬로 해상 68미터 높이의 공중 케이블카를 설치해 놓고 있다.

청명한 날이면 공중에서 바라다 보이는 저 멀리 수마트라의 그림자가 그윽한 정취를 불러 세운다. 거울 같은 해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사이 어느덧 눈 아래 센토사 전경이 들어오고 꽃과 녹음 태양 빛이 어우러진 별천지에 유리 상자는 빨려든다.

섬 서단부에 '시로스' 성채가 있다. 본래 영국군 포병대우ㅏ 요새이며 부근의 탄약고도 그때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군의 침공은 배후의 '조홀'을 기점으로 했으며 대포의 머리는 모두 남지나해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회전시키는데 사흘이 걸리는 바람에 패전하고 말았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시로스 성채도 흡사 옛 이름 그대로 '죽음을 등진 섬'인양 당시를 말해주고 있다. 중, 장년의 사람들에겐 젊은 시절의 추억, 젊은이들에겐 역사의 한 페이지를 더듬어 일깨워 준다. 일본군 항복조인식풍경이 납인형으로 재현돼 있는데 일본 장성 '하야시'가 영국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Yes냐? No냐? 그것만 말해라'를 이어 그 사흘 뒤 일본이 패하자 영국군에 의해 같은 질문이 되풀이 되는 모양이 압권이다.

전쟁자료관 안에 해수욕장, 산호관, 해양박물관, 롤러스케이트장, 미술센터, 캠프장, 식물원, 골프장이 있으며 런던에서 운반되어 온 2층 버스로 나무숲 사이를 뚫고 즐기고 싶은 놀이터를 찾을 수 있다.

센타사는 평화와 고요의 상징이다. 이름만큼이나 싱싱하고 가슴 뿌듯한 이곳에서 아시아의 네 마리용 중 그 한 마리가 승천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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